[책리뷰] 그곳에서 책을 읽을 때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by 이우주

햇볕 소리가 쨍― 하고 하늘을 가르는 여름입니다. 이 뜨거운 계절을 어떻게 나야 할까 싶어 “그냥... 그냥 정말 좋았어.”라며 친구가 추천해주었던 여름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를 읽었습니다.



초록 나무 표지의 이 소설은 건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화자인 ‘나’는 무라이 선생의 건축에 끌립니다. 필요 이상으로 크지 않고 쓸데없이 화려하지 않고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 건축, 머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선생의 건축은 놀라울 만큼 효율적이면서 간결하고 소담합니다. 예스러움과 모던이 공존합니다. 단단하면서 아름답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대형 종합건설회사 대신 작은 무라이 설계사무소에 들어가 새내기 건축가가 됩니다.


무라이 설계사무소는 여름이 시작되면 일거리를 모두 챙겨 화산이 있는 교외의 여름별장으로 갑니다. 텃밭에서 기른 채소와 장을 봐온 신선한 재료로 식사를 만들어 함께 먹습니다. 창이 커다란 설계실에 앉아 손으로 깎은 연필로 설계도를 그립니다. 오후엔 잠시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저녁이 되면 다시 둘러앉아 건축 이야기 나누며 식사를 한 뒤 각자의 방에서 잠이 듭니다.


화자가 처음 여름별장에 머물게 된 해엔 설계사무소 사람들 모두가 ‘국립 현대 도서관’ 설계 경합을 준비합니다. 무라이 선생은 그동안 공공건축 경합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엔 힘있게 경합을 밀고 나갑니다. 크고 화려하고 압도적인 건축을 하는 경쟁자를 의식하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선생이 도서관 설계에서 가장 우선에 놓는 것은 역시 사람입니다. 그곳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요.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181면


어느 저녁, 테라스에서 직원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무라이 선생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도서관을 묻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교정 한쪽에 있던, 나무로 지은 단층 도서관을 떠올립니다. 토요일 마지막 한 시간은 천장이 조금 낮고 삼면의 벽에 유리창이 있는 그 도서관에서 오래 쓰여 모서리가 둥글려진 커다란 나무 책상에 앉아 라이트 형제보다 먼저 글라이더 비행을 했던 남자의 전기를 읽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곳에서 책을 읽을 때면 옆에 친구가 앉아 있어도 혼자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선생은 생각에 잠겨있다 말합니다.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아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의지처가 되겠지.”


제가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고단해도, 불합리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나의 기질에 맞지 않는 일을 참고 해야 할 때에도 이제 곧 혼자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 책을 읽는 시간엔 본래의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무라이 선생이 지은 도서관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는 시간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풍미 가득한 소설입니다. 계절계절의 이파리와 하늘의 빛, 장작 타는 소리와 냄새, 피아노의 선율과 비 온 뒤의 초록향, 싱그럽고 포슬포슬한 감자와 깊고 달콤한 홍차의 맛, 산기슭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아침 안개를 모두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져본 듯한 착각을 불러올 만큼요. 그래서일까요. 갈등도 긴장도 복수도 없는 이 소설,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읽은 이 풍요로운 소설 덕에 저는 올해의 여름을 일본의 한 여름별장에서 보낸 시절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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