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안아보면 안 될까

《연애의 책》, 유진목

by 이우주

사람을 꼭 안아보신 적 있으신가요. 언제가 그 마지막이셨나요.

저는 며칠 전 열두 살 어린이를 꼭 안았습니다. 10초 정도 됐을까요. 그 말랑한 포옹은 길지 않았지만 덕분에 그 밤 내내 따뜻했습니다.


어른이 어른을 안는 것은 쉽지 않죠. 그래도 누군가를 안아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반가운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을 때, 좋은 일을 크게 축하해주고 싶을 때, 슬픔을 덜어주고 싶을 때, 이제 또 헤어져 한동안 보지 못할 때 품 넓게 안아주고 싶지만 쑥스럽기도 하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자신도 없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군가 좀 안아줬으면 싶을 때도 있습니다. 자꾸만 입꼬리 내려갈 때 있잖아요. 실수를 해 꾸지람 들었을 때,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보잘것없을 때, 혼자 고군분투한 하루가 끝났을 때 누군가 가만히 안아주면 다 괜찮아질 것 같죠. 하지만 다 큰 어른이 누구에게 안아달라고 하겠어요. 여간해선 일어나지 않을 일입니다.



초여름의 생기로운 볕이 반짝이던 일요일, 유진목 시인의 시 「미선나무」를 읽었습니다.

시의 화자는 한겨울, 벌거벗은 채로 미선나무 기슭에 죽어있습니다. 땅에 묻히기를 바랐지만 그조차 되지를 않았습니다. 화자는 자신이 죽어 버려졌다는 사실에 슬퍼할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너’가 울고 있습니다.


“살아 있어서 많이 힘들지.”


울고 있는 ‘너’를 안고 화자는 말하고 싶습니다. ‘너’는 그 포옹 안에서 더 크게 웁니다. 바람이 미선나무를 해치고 있습니다.


그 일요일, 바깥의 명료한 싱그러움과 시에 붙박고 있는 가엾음이 공존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다시 시를 읽고 다시 슬퍼 눈을 감았습니다.

더 이상 ‘너’를 안아줄 수 없게 되겠지만 죽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화자가 가여워서, 죽은 화자에게 안겨 더 크게 우는 ‘너’가 가여워서, 문단 내 성폭력 사건으로 긴 소송을 겪어야 했던 시인이 자꾸만 화자로도 '너'로도 읽혀서, 어쩌자고 화자도 '너'도 시인도 나인 것만 같아서 오래도록 시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10초라도 좋겠습니다. 이렇게 슬픔 깊은 날은 말없이 꼭 안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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