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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Aug 30. 2023

(D-46) 용감한 씨앗!



대청호 마라톤 D-46


시작하려는 모든 이들은 씨앗처럼 용감해질 것.
-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92쪽, 우종영



내 옷장엔 무채색 옷들만 있다. 검은색, 회색, 남색, 남색에 가까운 하늘색, 아이보리. 양말도 그렇고 운동화도 그렇다. 가방도 그렇고 목도리도 그렇다. 핸드폰도 그렇고 필통도 그렇다. 생긴 것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다. 

러닝복이라고 다를 순 없다. 검은색과 남색. 러닝화? 물론 검은색. 


매일 새벽 5시에 집을 나선다. 해가 짧아져 날이 갈수록 더 캄캄해진다. 가로등이 없는 길을 뛸 때는 하늘과 길과 내가 시커멓게 혼연일체를 이룬다. 무서울 때도 있고 변태같이 안정감을 느낄 때도 있다. 


비까지 흩뿌려 더 어둑했던 오늘 새벽에도 위, 아래 올블랙을 걸쳐 입고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저기, 오른편에서 달려오는 또 다른 달림이! 핫핑크를 입고 쫑쫑쫑쫑 달려오는 당신은 누구?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 강변길에서 본 달림이 아저씨도 밝은 빨강 민소매를 입고 뛰었다. 평일 새벽에 종종 마주치는 청년 달림이는 형광 연두색 바지를 입고 뛴다. 저녁에 도서관 갈 때마다 보는 할머니는 노란색과 주황색이 섞인 운동화를 신고 트랙을 걷는다. 


아, 나는 그 사람들 취향이 다 엄청 발랄한 줄로만 알았지. 이유가 있었네!

나처럼 시커멓게 어둠 속을 뛰어다니는 건 나에게도, 운전자에게도,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에게도, 보행자에게도, 다른 달림이에게도, 고양이에게도 위험할 수 있겠다는 걸 오늘에서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핫핑크는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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