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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Aug 29. 2023

(D-47) A or B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창밖부터 확인한다. 혹 비가 내리면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에 빠진 사람마냥 몹시도 서글픈 얼굴을 하고 체육관으로 향한다. 트레드밀 위에서 50분이나 달리는 것은 지겹고 답답하고 어쩐지 벌을 받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눈을 뜨자마자 밖을 보았다. 당장은 아무 일 없지만 평소보다 어둑한 게 심상치 않았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확인해 보니 비 예보가 있었다. 맙소사.


한 쪽 다리에 무릎보호대를 차다 말고 고민에 빠졌다. 일단 나갈까? 6km는 뛸 건데 괜찮겠어? 3km쯤 갔을 때 비 오면 쫄딱 맞을 텐데? 그럼 체육관으로 가? 답답한데... 그럼 나가? 근데 러닝화 젖으면 어떡해? 그럼 그냥 체육관 가! 트레드밀은 지겹단 말이야. 아, 씨...


이 아까운 새벽시간에 뭐 하는 거야 지금! 스트레칭 한 동작 하는 1분도 아까워 몸도 제대로 못 풀고 출근하는 판에 답도 안 나오는 망설임에 대체 몇 분을 버리고 있는 거냐고!


일단 밖으로 나갔다. 아직 비는 오지 않았다. 체육관과 가까운 아파트 단지 둘레를 뛰었다. 한 바퀴에 1.65km. 좋아. 4바퀴 뛰면 6.6km, 아주 적당해! 중간에 비 내리면 체육관으로 바로 들어가자고. 오, 똑똑해!


왜 두 가지 달리기밖에 없다고 생각했을까. 멀리 갔다가 비 홀딱 맞고 돌아오는 것 or 트레드밀에서 지겹게 50분을 채워 달리는 것.

왜 두 가지 나라밖에 없다고 생각할까. 미국 or 북한.

왜 두 가지 성향밖에 없다고 생각할까. 진보 or 보수.

왜 두 가지 종류밖에 없다고 생각할까. 늙음 or 젊음.

왜 두 가지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할까. 여자 or 남자.

왜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할까. 돈 벌기 or 나누어 쓰기.

왜 두 가지 존재밖에 없다고 생각할까. 나 or 나머지 안 중요한 생명들.


오늘은 1.65km의 동그라미를 네 번 그리며 'or'의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했다. 몸으로 배웠으니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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