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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Sep 16. 2023

(D-29) 오늘은 못 뛰겠어요



대청호 마라톤 D-29


이 느낌, 이 통증을 어떻게 설명해야 근접할까? 

나의 마음사라짐병은 서너 개의 불안증과 공포증이 합쳐있는데 그중 하나가 공황장애고 이 병은 공황발작이라는 신체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은 숨을 못 쉬고 다른 누구는 죽음이 닥쳐오는 공포를 느끼고 또 다른 누구는 구역질을 하거나 오한을 느끼기도 한다. 


나의 최초 경험은 비현실감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한 차에 타고 이동하던 중 갑자기 식구들의 이야기 소리가 몇 배속으로 느리게 재생되면서 나 혼자 다른 세계로 빠져나온 듯한 묘한 경험을 했다.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찰나의 순간이었는지도. 그때는 그저 어리둥절했는데 그런 상황이 반복해 일어났고 발생 주기가 짧아졌다. 

비즈니스를 위해 나이아가라의 엄청난 폭포 코앞까지 배에 타고 들어가 쏟아지는 물의 굉음과 거센 바람 속에서 그 증상이 찾아왔을 때 거대한 공포와 무력에 넋을 놓게 된 이후로 병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청각이 몹시 예민해지기도 했다. 비현실감은 우발적으로 나타났지만 소리에 대한 민감은 몸이나 마음의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떨어졌을 때, 내가 엮이지 않았어도 누군가 화를 내거나 긴장 불안이 오가면 귓속을 칼로 긋는 고통을 느껴야 했다. 그러니까, 늘 그래야 했다는 얘기다. "귀 아파" 속으로 가장 많이 한 말.


심장이 곤두서는 통증. 이런 증상도 생겼다. 청각이 예민해지는 상황에서도 아팠고 사람 많은 곳, 차 많은 곳, 소란스러운 곳에서도 아팠지만 갑자기 훅 통증이 솟기도 했다. 바로 약을 먹으면 나아지기도 하지만 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혹은 잠이 쏟아지는 부작용이 곤란해 약을 못 먹는 상황에서는 심장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왜 회사에서 가슴을 만지고 그래" 같은, 대꾸하기도 힘겨운 질문을 받으면서. 


이후 2년 반 동안 비현실감은 차차 사라졌고 귀와 심장은 아팠다. 그 후 1년 반을 괜찮게 지냈다. 4년을 넘긴 지금, 소리 통증만 남아 이제 살만하다 했는데 일주일 전, 심장이 곤두서 깜짝 놀랐다.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골목길에서 마주친 기분이었다. 정말 놀랐다. 당황했다. 아니 왜 또. 


어젯밤 꿈에 시달리다 고통스럽게 깼다. 심장이 온통 곤두서있었다. 경계해야 할 대상 앞에서 털을 잔뜩 세운 고양이 같았다. 아팠다. 너무 아파서 헉 소리가 나왔는데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한 생각. 

'이런, 오늘은 못 달리겠네.'

그래서 오늘은 못 달렸다는 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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