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우주 Feb 23. 2024

누가, 왜 우리 집 우물에 아기를 버렸을까?

『우물과 탄광』_책 읽는 마음



아기 우물 살인 사건.

스릴은 커녕 조그마한 긴장의 기미만 보여도 책을 덮어버리는 제가 살인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진진하게 완독하고 별점 5개 만점을 주었습니다. 앨버트家 식구들의 삶을 세심하게 그려낸 이 소설, 『우물과 탄광』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앨버트는 광부입니다. 어린 아이일 때부터 탄광의 노새를 돌보기 시작한 그는 나이가 들어 힘을 쓸 수 있게 되면서 곡괭이를 내리꽂고 화약을 터트리며 땅을 파고들어 갔습니다. 희미한 전구 불빛과 희박한 산소, 무거운 분진과 매캐한 화약냄새 안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죠. 그런 일상의 어느 날 밤, 그의 집 뒷마당에 낯선 여자가 나타나 우물 속으로 아기를 던집니다.

  앨버트의 어린 딸 테스가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하지만 앨버트는 날이 어두워 아무 것도 볼 수 없으니 내일 살펴보자고 딸을 어릅니다. 설마 하는 마음도 있었고 고된 탄광 노동을 마치고 만끽하는 유일한 휴식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리곤 다음 날, 시퍼렇게 부은 아기의 사체를 양동이에 담아 끌어올리며 후회합니다. 자신만큼 어둠에 익숙한 사람, 자기만큼 어둠 속에서 잘 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터였는데 하고 말이죠.


'누가, 왜 우리 집 우물에 아기를 버렸을까?' 식구들은 질문을 품은 채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앨버트는 정확한 시각에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아침식사를 한 뒤 좁고 낮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 땅을 파고 석탄을 캐내며 종종 질문을 떠올립니다. 앨버트의 아내 리타는 새 양동이를 사와 물을 끓여 소독하고, 찜통 더위에도 불을 피워 피클과 잼을 만들고, 빨래를 하고, 옷을 고, 구멍난 신발을 깁고, 나뭇바닥에 꿇어 엎드려 니스칠을 하며 불쌍한 아기를 생각합니다. 앨버트의 딸들인 버지와 테스는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사탕을 마음껏 사먹을 수 있는 아이와 낡은 신발조차 신지 못한 채 굳은살 박힌 손으로 목화를 따는 아이를 동시에 친구로 만나가며 성장의 경계를 건너느라 혼란스러운 중에도 동네 여자들로 용의자 리스트를 만들어 범인을 찾아봅니다. 아빠 엄마처럼 질문을 감추거나, 누나들처럼 질문을 해결하려 만한 나이가 채 되지 않은 꼬마 잭 또한 자신에게 벌어지고 자신이 벌이는 일들이 무엇인지 때로는 알지 못하면서 열심히 자랍니다. 식구들의 그런 이야기들이 손바닥 위에 영상으로 펼쳐지듯 구체적으로, 따뜻하게 그려집니다.


책을 모두 읽은 후 표지를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작가는 왜 제목을  '우물과 탄광'이라 지었을까요. 앨버트家의 사람들, 우물과 아기, 밤의 우물 등 다른 단어들의 조합도 많은데 말이죠.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에게 탄광이 생생한 것, 살아있는 것, 뜨거운 것, 정복하고 싶은 것, 기쁨과 희망이 가득찬 생의 도전이었다면 우물과 탄광 앨버트에게 탄광은 어둠과 온몸 곳곳의 새카만 자국들, 통증과 기침, 장비와 화약, 햇빛도 산소도 없는 곳에서의 생을 잇는 수단이었습니다. 조르바는 근사하게 탄광을 일궈내고 싶었던 꿈이 무너지자 탈탈 소박한 짐을 싸들고 다른 어느 땅을 향해 떠납니다. 앨버트는 뼈가 부서지고 밤마다 기침을 뱉어내고 땅 속 깊이 갇힌 곳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허리 한 번 펼 수 없어도 탄광에 남습니다. 가족의 생활을 이어야 했기 때문이죠. 그의 집엔 우물도 있었고요.   

  우물가엔 볕이 참 잘 들었습니다. 숲 언저리 그곳엔 초록 이파리들이 무성했죠. 우물 밑바닥엔 맑은 계곡물이 흘렀습니다. 앨버트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우물의 물로 어둠의 흔적들을 씻어냈습니다. 리타는 물을 길어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죠.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물로부터 만들어 준 삶의 기반을 딛고 우물가에서 뛰어놀았습니다. 테스가 '나는 그 우물을 정말 좋아했다'고 말한 바로 그 우물은 앨버트 식구들의 삶의 근육을 단단히 키우는, 그들의 생을 잇는 생명수였습니다. 


탄광과 우물 사이에서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평범한 삶들을 세심하고 생생하게 그려낸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이 소설을 권합니다. 아기 우물 살인 사건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도요. '정답이 동시에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삶의 진리'를 믿으시는 분들에게도 좋겠네요. 

  앨버타와 리타, 버즈와 테스와 잭의 10년 후를 제 마음대로 그려보며 독서후담을 마칩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