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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Mar 05. 2024

ESFP 와 INTP, 두 남자의 브로맨스

『그리스인 조르바』_책 읽는 마음



『그리스인 조르바』는 카잔자키스가 자신을 투영한 '나'를 화자로 삼고, 실제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조르바스를 '조르바'로 이름 바꿔 소설입니다. 오스만투르크(지금의 터키)에 빼앗긴 조국 그리스 땅과 민족을 되찾는 싸움이 벌어지던 때,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하죠.

  책에 인생의 진리가 있다고 믿는 '나'는 (물론 '조국사랑'도 책으로 학습했습니다) 민족을 구출하기 위해 싸움터로 달려 들어가는 친구와 헤어진 후 민중의 삶을 함께 살기 위해 갈탄 산업을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여행 가쇼?" "날 데려가시겠소?" 선착장 한 카페에서 출항을 기다리던 나에게 키 크고 깡마른, 비웃고 슬프고 불안한 듯하면서도 불타는 듯한 눈빛을 가진 조르바가 나타나 묻습니다. 왜 함께 해야하느냐는 질문에 조르바는 말해요. "왜? 사람들은 도대체 이유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요? 그냥 기분 따라 하면 안 되나요?" (문학과지성사, 28~29쪽)


모르긴 해도 조르바의 MBTI는 ESFP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활기찬, 현재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감정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공감력 뛰어나고 사교적이며 새로운 모험을 찾아 즉흥적으로 행동한다는 ESFP. 반먹물로 불리는 '나'는 이와 대조적인 INTP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감정보다는 객관적 근거에 따라 판단하고, 이론과 개념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작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건 어려워하는 사람.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도, 지금을 살아가는 방식도 너무나 다른 이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탄광을 세우고 수도사들을 혼쭐내러 다닙니다. 조국과 전쟁을 이야기하고, 똥 위에서 싹이 나는 꽃송이를 상상하고, 나이 든 마담을 위로해요. 어느 날은 마음 흔들리는 사람에게 대시를 해라, 싫다 의견충돌을 보이다가도 밤바다 앞에서 포도주를 나누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그렇게 각자의 인생을 뽐내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며 자유를 묻고 답합니다.


야생마 자유인과 책벌레 샌님. 이 두 남자가 어깨를 겯고 인생의 한 시절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스킬, 생을 잇는 용기, 자신을 지키는 굳셈을 읽은 것이 저만의 독서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100년 전 쓰인 소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 독자들의 손에 들려 생생히 읽히고 있으니까요.

  다만 여성을 과히 낮잡는 문장들은 읽기에 불편하다는 점을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말해두고 싶습니다. 하지만 소설이 쓰인 시대가 1920년대였다는 점(우리에게는 일제강점기였죠), 조르바가 성인지 개념은 형편없었지만 그 때 그 때의 해당(?) 여자들을 크게 사랑했다는 점 또한 덧붙이니 직접 읽으며 개탄을 하든 이해를 하든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세 번 읽었는데요, 처음엔 화자에게 공감하였고, 두 번째엔 머릿속에 조르바가 가득하였으며, 세 번째엔 인물 사이 공간을 채우는 배경들을 상상했습니다. 읽을 때마다 다른 감각과 사고가 열리는 소설, '나로서 자유롭게' 살아보라 말하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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