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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Jul 17. 2024

보이스 노트22

<다시 J>


J는 이 세상 모든 불행의 원인이 아진에게 있는 것만 같다. 자기가 호감을 느꼈던 자가 본인의 외모에 대해 섬뜩하다고 한 것, 성형의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던 자신을 비웃었던 점에서 분노가 치밀어올라 저 사람의 뒤통수를 때렸지만, 그걸로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J는 아진이의 뒤통수 때리고 급히 도망갔다. 누가 쫓아오지도 않았다. 사람은 발 디딜 틈 없이 많았으나 비명만 지르고 쳐다만 볼 뿐 누구 하나 J를 잡는다거나 신고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깝다. 시간 지나 J는 그냥 호신용으로 매일 가방 안에 들고 다니던 과도로 저 사람도 죽이고 본인도 죽을 걸 실행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저 사람이 본인을 불행하게 만든 모든 원인이었던 것처럼 그를 죽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집에 돌아온 J는 방에 들어가 한탄만 하며 살아갔다. 얼굴 볼 때마다 괴롭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매일 와서 청소, 밥, 다른 심부름을 해주시지만 그분을 만나는 것도 괴롭다. 그 아주머니 또한 호기심과 앞으로 어떻게 저 얼굴로 살까 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표정도 짜증 난다. 아빠의 보험금이라고 자주 들어오는 돈, 엄마의 교통사고 보험금으로 돈은 많이 있다. J가 죽을 때까지 쓸 수 있을 만큼 큰돈이다. 아빠는 평범한 회사원인 줄 알았는데 산재보험금이라며 어떤 분이 집에 와서 10억을 현금 가방에 넣어 주었다.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통장에 입금도 아니라 가방에 현금을 넣어 들고 온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회사 동료라던 그 사람은 아빠가 해외에서 돌아가셔서 급하게 장례식을 치렀다고 한다. 앞으로도 집에 종종 들러 회사에서 나오는 보험금을 준다고 했다. 엄마는 울지도 않고, 알았다고만 했다. J 눈에는 이상했다. 아무리 아빠가 엄마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지만 어떻게 평생 같이 살았고 자녀까지 낳았던 남편의 죽음을 저렇게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J는 엄마의 반응이 싫고 그런 엄마가 싫었다. 그 뒤로 아빠의 회사 사람은 산재보험금이라면서 상자를 들고 왔다. 왜 저 회사는 보험금을 상자에 넣어주는지 어린 J는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아빠와 좋은 기억은 거의 안 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빠가 돌아가셨다. J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몇 시간이고 울곤 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상자 안에서 현금을 꺼내 사용하곤 했다. 상자는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고 항상 J에게 당부하던 방에 넣었다. 엄마는 열쇠공을 불러 몇 중으로 잠금장치를 한 후 항상 그 방문을 잠가놓았다. 아라는 당시 엄마보다 집안일 봐주는 아주머니가 엄마처럼 포근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고민을 아주머니에게 하곤 했다.

돈은 많았지만, J와 엄마는 외로웠다. 집안의 소파나 침대, 가전과 같은 물건은 모두 최고급으로 현금으로 샀다. 사람들은 현금 부자인 J와 엄마를 벼락부자로 여겼다. 성형 수술할 때도 엄마에게 수술하겠다고 하니 상자에서 돈 한 뭉치를 꺼내주었다. 5천만 원이었다. J는 돈을 달라는 대로 줬다. 알아보고 간 성형외과에서 아무리 비싼 수술을 권해도 다 허락했다. 돈은 문제 될 것이 없었고 예뻐지기만 하면 J는 자신감을 얻고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 성형외과에서 입원실까지 운영해서 최고급 대우를 받으며 지냈다.
J와 엄마에게 모든 사람이 잘해주었지만, 마음으로 다가와 준 이는 없었다. 아무리 최고의 음식을 먹고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있어도 마음이 불편했다. J는 가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아빠에 대해서 질문하면 엄마는 그냥 보통의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입을 닫았다. 엄마에게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어떤 일을 하다 돌아가셨기에 산재보험금이 저렇게 많이 나오냐고 물어도 모른다고만 말했다. 남편의 직업을 모르는 부인이 있을까? J는 엄마가 알고도 거짓말을 하거나, 두 사람의 사이가 안 좋아서 말하고 싶지 않나 보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엄마의 교통사고의 보험금이 2억 정도가 나왔다. J는 엄마가 돌아가셔서 슬픈 감정보다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이 더 크게 느껴진다. 점점 불행하다는 생각에 우울하다.
엄마가 교통사고 난 날 아침 엄마는 무슨 예감이 들었던 것일까? 엄마는 갑자기 현금을 두는 비밀의 방 열쇠의 위치를 알려주고 그 안에 현금 든 상자가 4개 정도가 보일 거라 했다. 절대 누구에게도 알려주면 안 되고 그 돈 잘 사용해야 한다고 당부 또 당부했다. 돈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J는 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J야 그 돈은 전부 네 거니까 누구에게도 주지 마. 꼭 필요한 곳에 잘 사용해야 해. “
현금에 관심이 없던 J는 왜 엄마가 갑자기 그런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비밀의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만 수시로 당부했던 엄마가 왜 갑자기 비밀의 방을 오픈한 것인지 궁금했지만, 묻진 않았다. 엄마와 대화가 없어진 지는 오래되었다. 그날 엄마는 교통사고가 났다.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었다. J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남겨진 자에게는 돌아가신 분의 물건, 사람 관계, 재산 등을 정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뒤 두세 달에 한 번씩 억 단위 돈을 들고 아빠 회사직원이 와서 주고 갔다. 대체 무슨 이상한 회사이길래 산재 보험금이 이렇게 많이 나올 수가 있을까? 이해되지 않는다. 인터넷에 검색해 봐도 이 정도 돈을 산재보험금으로 받았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 10억을 엄마가 현금으로 받은 이후 꾸준하게 아빠 회사 직원이라는 사람이 상자, 가방 등에 현금을 넣고 들고 왔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그 직원에게 물어도 답변해 주지 않으니 알 방법은 없었다.
J는 사람과의 교류 없이 방에만 틀어박혔다. 아주머니가 문 앞에 음식 등을 끼니마다 갖다 주어도 J는 먹지 않았다. 나중에는 아주머니도 지쳐서 뭔가 먹고 싶으면 휴대전화 문자나 전화하라고 했다. 청소나 설거지 등 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아주머니도 상대하기에 귀찮고 싫다. 아주머니를 안 와도 된다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물건을 사야 하거나 택배를 받는 것, 세금 등 밖에 나가야만 할 여러 일들이 있어 아줌마가 꼭 필요했다. 고민하다 아주머니에게 통보했다.
“아줌마. 지금까지 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나 이제 잘린 겨?”
“아니요. 그게 아니라. 지금 드리는 것처럼 돈은 그대로 드릴게요. 하지만 저 혼자 있고 싶어서요. 제가 청소나 다른 일이 있어 아줌마 필요할 때만 전날이나 당일 연락해도 될까요? 그런 날만 와주셔서 저 도와주시면 됩니다.”
“아이고 그래도 어떻게 일 가끔 하고 돈 그대로 받을 수 있어? 나한테 미안한 거면 미안해하지 말고 그냥 나 그만둘게.”
“아줌마, 오해하지 마세요. 저 진짜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요. 아주머니 우리 집에 몇 년 오셔서 아시잖아요. 사람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것을요. 물론 아주머니는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 혼자 있고 싶어요. 아주머니, 이해해 주세요. 네? 당연히 월급은 정해진 날짜에 똑같이 드릴 거예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요.”
매일 오던 아줌마가 일주일에 2번 정도 오게 되고 J는 마음이 안정되어 갔다. 거울을 볼 때마다 힘들었는데, J는 재 수술하기로 마음먹었다. 재수술이 잘 되면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지 않겠느냔 희망도 품었다. 힘들게 올라간 서울역이다. 바로 그 서울역에서 본인의 성형을 비아냥거리고 무시하던 남자의 뒤통수를 세게 쳤다. 비명을 지른 남자가 따라올까 봐, 사람들이 잡을까 봐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죄책감과 우울감에 겨우 성형외과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오면서 남자의 상태가 궁금하고 걱정되었다. 분명 성형외과 병원에 연락해 상태를 이야기하고 재수술해야 한다고 하고 날짜를 잡았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인데 병원의 문이 닫혀있다. 바로 문 앞에 ‘개인 사정이 있어 폐업합니다.’라는 간략한 쪽지만 적혀 있었다. 이런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수술을 이 따위로 해놓고 폐업하면 그만인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 인생은?’
J는 넋을 놓고 닫힌 문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있었다. 대구로 내려갈 힘도 없었다. 콜택시를 불렀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택시요금은 크게 나오겠지만 J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후 뉴스에 그 병원이 나왔다. 성형 수술의 실패로 소송비용, 보상금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고, 평판도 나빠지자 병원 의사는 자살했다고 한다. J는 자신의 인생이 기구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J를 수술한 성형외과 의사 3명이 모두 자살을 한 것이다. J는 본인이 악마의 저주를 받아 태어난 사람인가 울부짖었다. 분명 인터넷 후기도 많이 찾아보니 많은 사람이 수술에 성공해서 자신감을 찾았다고 얼굴까지 공개했던 병원인데, 왜 본인의 수술만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인지 마음이 힘들다. J에게는 삶이 너무 버겁다.
J가 수술했던 세 군데 병원의 의사는 모두 자살하고 이제 성형 재수술에 대한 희망마저 사라졌다. 이제 J는 잠시라도 밖에 나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 세상을 빨리 뜨고 싶은 마음뿐이다. 누군가의 뒤통수를 친 이후 J는 더더욱 집안에 틀어박혔다. 암막 커튼의 사면을 치고 빛 하나도 들어오지 않게 한 후 깜깜한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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