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happysmilewriter Sep 20. 2024
중3 겨울 방학 먼거리에도 불구하고 A와 P는 거의 매일 만났다. 겨울방학에 두 사람이 집에서 얘기하고 영화만 보고 있는 모습에 P의 엄마가 평소에 하는 병원 봉사활동에 같이 가자고 했다. 그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고 생각해서 같이 갔다. 소아암병동에 가서 간호사분들이나 병원 직원분들이 요청하는 것을 했다. 가볍게 시작한 봉사활동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볍지가 않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두 사람보다 어린 아이의 머리에 머리 크기보다 더 큰 혹이 있는 아이, 같은 또래인데 혈액암에 걸려 아픈 친구를 보고 살아있다는 자체가 너무 귀한 것임을 느꼈다. 두 사람이 보호자가 앉는 의자를 닦는 일을 할 때였다. 환자복을 입은 10대로 보이는 한 여학생과 그 부모님들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있었다. 분위기가 묘해서 가까이 가지 않고 두 사람은 멀리 떨어져있었다. 나중에 의자닦을 생각이었다. 그 3명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록 적막만 흐르는 그 곳을 견디기 힘들었던 A는 매점가서 음료수 사온다고 내려갔다. P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또 몇 분이 지났고, 환자 10대 여학생이 아주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물조차 숨죽이며 흐르고 있었다. 30분이 지났을까. 그 사이 R이 돌아오고 다른 환자와 보호자가 의자가 앉았다 사라져갈때도 세사람은 침묵속에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가 세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간호사분이 와서 P와 A를 불러 가기전까지 세사람의 눈물은 P에게 평생 떠올릴 슬픈 그림으로 남았다. A가 매점가면서 간호사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듣고 P에게 전해주었다. A와 대화를 하면서 눈물 흘렸던 10대 소녀가 혈액암에 걸렸고 새로운 치료법 등을 사용했으나 차도가 없고, 병이 심각해져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삶이란 참 귀한 것이구나, 내가 함부로 생각할 것이 아니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의미없게 살아가는 것은 죄로구나. 살려고 발버둥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일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많은 이들에게 함부로 자신을 대하고 홀대하는 것은 얼마나 어이없는 일일까’
10대 소녀의 이름은 M이었다. 봉사활동하는 내내 P와 A는 병원 복도를 돌아다니며 갑갑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M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내용은 10대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좋아하는 연예인, 영화, 취미, 꿈에 대한 것이었다. M을 통해 아픈 사람들도 특별대우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일상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느낀 P였다. 방학이 끝나는 날 일상대화를 나누며 M이 차츰차츰 본인의 병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고 고맙다고 했다. P와 A는 평일에도 가끔 들리고, 주말에는 꼭 1번은 들러 M과 같이 놀기로 약속했다.
여름 방학 동안 P는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통해 마음을 탄탄하게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 동안 멀리했던 책도 읽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용기와 힘을 줄 만한 자아성장서를 읽었다.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강사의 강연을 들으며 기운을 내기도 했다. 유튜브 등의 영상도 찾아봤다. M과 A의 대화, 책, 영상 등을 통해 알게 된 것은 P 자신만 힘들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O무리도, R도 힘들었고 본인을 방관자라고 생각했던 A도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는 A와 R이 힘들어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O 무리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T, 본인을 괴롭히는 데 잔인했던 T가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P는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T에게 쪽지를 보냈다. 진지하게 ‘너 왜 그렇게 P를 미워하냐? 그 애가 너에게 엄청 잘못한 게 있나봐.’ 라고 물었다. 그 아이의 답변이 왔다. ‘네가 너무 잘나서. 넌 가진게 많은데 항상 쭈글하게 있는 게 얄미웠어. 모범적이고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모두 좋게 평가하고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었어. 게다가 너희 부모님도 너에게 너무 잘해주는 것도 미웠어. 그냥 네가 다 재수없었어. 이제 이유를 알게 되니 속시원하냐? 또 신고하려고?’
P는 그 쪽지를 보며 허무한 웃음이 나왔다. 그런 어이없는 이유였다니. 항상 본인이 T에게 잘못했는지 언행을 살피고 이유를 계속 생각했던 그 시절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자신만 피해자이고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누군가에게는 나라는 사람도 힘겨움을 안겨주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스스로 답을 찾는 노력을 했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P였다. 병원에서 미약하나마 아픈 이들을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이 말 때문에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타인들에게도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방학이 끝나고 고등학교 입학해서도 하교 후 병원에 잠깐 가서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다. 거의 매일 들르는 P를 알아본 보호자나 환자들과 대화도 했다. 그들의 학창시절, 직장, 가정생활, 사람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이나 힘들었던 일, 몸상태에 대한 불안과 가족에 대한 걱정들을 들었다. 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P는 세상에 나보다 더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좀 더 젋은 눈으로 보게 되었다. 며칠 전까지 같이 대화를 나눈 환자인데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도 있었고, 간혹 병이 호전되어 퇴원한 한자들도 만났다. 그들을 보며 조금이라도 힘나게 하고 위로가 되는 말을 하고 싶었다. 특히 같은 나이인 M을 보며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