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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Mar 04. 2024

보이스 연재 2

여고시절


아라는 누구에게 부고장을 전달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갑자기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몇천 개의 전화번호가 있는 사람 중에 내 부고장을 받을 이는 몇 명인지 손에 꼽아본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이 부고장을 받고 난 후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 본다. 그러다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웠으며 삶을 치열하게 살았던 시절의 본인과 친구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인 경이와 아라는 거의 매일 0교시나 1교시를 마치고 난 후 엄마가 싸주신 점심 도시락을 꺼냈다.
"경아 지금 빨리 꺼내."
" 벌써? 아직 배 안 고픈데. 다음 시간에 먹으면 안 돼?"
" 다음 쉬는 시간에는 매점 가야지."
" 좋아. 지금 빨리 먹자."
십 분의 쉬는 시간 동안 경이와 아라는 반찬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다 먹는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단짝 친구라 할 수 있는 경이와 아라는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종을 치는 소리가 시작됨과 동시에 복도로 후다닥 뛰쳐나갔다.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며 뛴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끝장이고 도태된다는 생각에 경이와 아라는 미친 듯이 달렸다. 계단 4~5개 정도는 한걸음에 뛰어 4층에서 1층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시간은 재보지 않았으나 몇 초 걸리지 않았다. 뛰는 중에 수많은 아이가 교실에서 불이라도 난 듯 한꺼번에 나와서 달렸다. 아라는 뒤를 흘낏 보며 그들보다 앞선 승자의 미소를 짓는다.
그들은 매점에 도착했다.
'앗싸 오늘도 매점에 처음으로 도착했네.'
매점 입구를 마라토너들이 결승점 선 끊듯이 뛰어 들어가면서 크게 소리쳤다.
"아줌마, 여기 어묵, 떡볶이, 가락국수, 김밥, 만두 주세요.
빨리 주세요. 빨리요!"
"알았어. 학생"
계산하고 둘은 인제야 차분하게 자리에 앉는다. 숨을 헐떡이면서 자리에 앉아 먹을 준비를 한다. 젓가락을 꺼내 놓고 물을 따라 놓고 단무지를 담아놓고 대기한다. 떡볶이, 어묵, 김밥 같은 것은 바로 담아서 주신다. 둘은 바로 먹기 시작했다. 먹었다는 표현은 두 사람의 상황과 맞지 않았다. 식탁 위에 놓인 음식을 두 사람은 미친 듯이 흡입했다. 씹지 않고 그냥 모든 음식을 국물인 양 꿀꺽 입에 넣었다. 떡볶이 서너 개를 입 안에 동시에 밀어 넣는 순간 많은 아이가 매점으로 들어왔다. 계속 아이들은 들어왔고 과자 파는 곳, 분식 파는 곳 앞에 줄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아라와 경이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다시 흡입을 시작했다.
음식이 조금 남았는데 종이 치기 시작한다. 이 상황이 익숙한 듯 아라와 경이는 이번에 남아 있는 모든 음식을 털어놓는다. 입안이 빵빵해져 숨을 못 쉴 정도이다. 아라와 경이는 뛰어가기 시작한다. 4층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교무실에서 나와 복도와 계단을 걷고 있는 선생님들을 만났다. 입 안 가득한 문 상태로 둘은 인사한다.
"안녀하세요. 선새님."
발음도 잘 안되어 명확하지 않은 인사였지만 선생님들은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했다. 1층에서 4층까지 올라가는 도중에 입 안에 있던 음식물을 다 먹은 아라와 경이는 교실에 앉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수업을 듣는다. 가끔 졸기도 한다. 맨 뒤에 앉은 아라는 수업 중 잠이 쏟아져 두 번째 줄에 앉은 경이의 뒷모습을 살핀다.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의 경이는 고개만 왼쪽으로 꺾였다가 살짝 올라가기를 일정 시간 반복하고 있었다.
'졸고 있구나.'
경이를 계속 바라본다. 그때 경이의 몸이 확 왼쪽으로 치우친다. 왼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다시 작은 폭으로 살짝 상체가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경이의 몸 전체가 왼편으로 치우치다가 왼쪽으로 떨어졌다. 반 전체 아이들이 웃고 놀란 경이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제자리에 앉는다

오전 쉬는 시간 두 번을 먹는 데 쓰고 다른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얘기하거나 엎드려 잔다. 옷을 둘둘 말거나 책 몇 개를 겹쳐 엎드린다. 잠이 항상 모자란 아라는 종을 치는 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깊은 잠을 잔다.
"아라야, 야! 샘 오셨다. 빨리 일어나."
짝이 두 손으로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아라는 겨우 일어난다. 일이 분간 멍하니 있다가 수업에 집중한다.
아라는 수업 시간에는 모든 수업 시간에 집중해서 듣고 대답도 열심히 하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선생님들은 아라가 하는 말에는 신뢰를 해주셨고 친구들도 성실하고 모범적인 아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여러 명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다. 아라는 오전 쉬는 시간 미리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었으므로 저녁 도시락을 점심시간에 먹는다. 아라는 한 달 동안 매일 그렇게 먹다 책 읽고 싶은데 어떤 시간이 제일 좋을지 고민한다. 책 읽을 시간으로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밥 먹을 준비하고 밥 먹는 그 시간으로 정했다.

"얘들아, 나 책을 사랑하는 책벌레인 거 알지? 너희들 점심 먹을 때 뒤에서 책 읽을게~ 그래도 되지?"
"그래, 아이고 책이 그리 읽고 싶나. 참 희한하다. 희한해."
"아라처럼 책 읽는 거 좋아하는 애는 처음 본다. 알았어. 밥 먹고는 같이 놀자."

친구들이 점심 먹는 시간 맨 뒤에 놓여있는 담임 선생님의 의자에 앉아 책을 꺼내 읽었다. 책을 꺼냄과 동시에 다른 것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책을 읽다 보니 친구들의 이야기 소리, 밥 먹는 소리 등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고 음식 냄새 등 어떤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점심시간 책 읽는 20~30분간의 독서 시간이 아라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읽고 있는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그 상황을 살아가고 있다고 상상하는 시간은 아라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되어 상황을 펼쳐나가기도 하고, 한국 장 단편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그 시대와 그 상황을 살아가며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아라와 비슷하게 책을 좋아하는 친구인 은이와 점심시간에 연못 정원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다른 반이 된 은이와 아라가 좋아하는 장소인 학교 운동장 구석 부분의 작은 언덕 겸 정원에 있는 연못 주변에서 만났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산책하는 곳인 연못에서 점심시간 한 시간 동안 은이과 미래와 꿈,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최근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기도 했다. 읽었거나 현재 읽고 있는 책 내용,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간이 진정 행복한 시간이었고 여유와 쉼이 있는 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을 교실 뒤 편에서 책을 읽거나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을 학교의 제일 조용하고 예쁜 곳에서 책을 좋아하는 은이와 함께했다.
5교시가 시작되고 수업에 집중한다. 5교시나 6교시 마치고 경이와 저녁 도시락을 먹는다. 8교시 마치고 저녁 시간이다.
"경아, 우리 오늘 떡볶이랑 튀김 먹을까?"
"좋지"
둘이 손잡고 교문으로 간다. 학교 밖에 나가 학교 앞 분식집에서 튀김과 떡볶이를 사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200 원하는 음료수 하나 물며 경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아라는 고등학생 시절 자율학습 시간과 점심시간이 무척 행복했다. 여고생 특유의 재잘거림과 밝음이 넘치는 교실에서 자율학습 종이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으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몰입해서 책 읽던 경험은 아라에게 어른이 된 지금도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자율 학습은 말 그대로 자율학습이라 교실에서 자습하면 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들도 한 시간에 한 번씩 돌아보고 빈자리 체크하고 소란스러운 반 조용히 시키고 교무실로 돌아가셨다. 자율학습 시간은 우리의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자율 학습 시간 반 친구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자율학습이라는 말 그대로 공부할 책, 문제집 등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진지하게 공부하는 친구들이고, 또 다른 부류는 종이 치고 나서도 복도에 감독하는 선생님이 있는지를 내내 살피며 이상형인 남자에 관한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어제 먹은 음식이나 미래의 꿈 이야기를 했다.
아라는 교실로 돌아와 자율학습이 시작되는 종소리 직전까지 친구들과 온갖 얘기를 교실 떠내려갈 듯이 하다가 자율학습 종이 시작됨과 동시에 책을 꺼내 들고 몰입해서 독서하는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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