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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Jan 30. 2022

두 시인에게 받은 편지

[완독 일기 / 우리는 서로에게 아름답고 잔인하지]

우리는 서로에게 아름답고 잔인하지 / 아침달

줄다리기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얼마나 이를 악물었던지 경기가 끝나고 나면 입술에 상처가 나곤 했다. 몸을 최대한 뒤로 눕혀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순간들.

「우리는 서로에게 아름답고 잔인하지」는 줄다리기를 연상시켰다. 다만, 온 힘을 다해 줄을 당기다가 문득 건너편을 봤는데 그곳에서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이 나인 걸 깨닫는 것 같은 느낌.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버티기. 사실 모른다는 건 거짓말이다. 들여다보기 두려워 방치해둔 내 안의 심연이 있을 뿐이다.

  

제목 그대로 아름답고 잔인했다. 두 시인의 연대는 아름다웠고 각자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들은 잔인했다. 두 저자가 시인 이어서일까. 단어 하나하나가 품은 뜻이 너무 지독해서 잔인했다. 


언니와 저, 우리 둘 다 재가 되고 있네요. 재는 정말이지 연약해 보이던데…. 이렇게 연약한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까요? / 73p     


이 책은 두 시인이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됐다. 저자들이 1년간 심리상담을 받으며 떠올린 생각들을 풀어놓았다. 관계 맺기의 어려움, 상처가 되는 가족들, 여성이어서 겪는 폭력 등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10년 넘게 마음을 의지한 사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 세월 동안에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편지를 읽으며 상대에 대한 연민에 울기도 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준 세상에 분노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독자가 아니라 이들의 편지를 받은 상대방이 된다.

아무 대가 없는 복수심, 오로지 자기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복수심을 불태울 때, 우리는 냉정한 척 이성적인 행위를 하잖아. 그러다가 소심한 공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 같아. 스스로 보호하려는 마음일까? 그냥 자신도 모르게 잊고 살게 되지. / 62p     

이런 문장을 읽고 나면 내 마음을 읽어줘서 고맙다고 답장을 쓰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마음속에서만 복수심을 불태우며 살아왔을까 생각한다. 찢어진 관계라도 어떻게든 이어가 보려고 애쓰는 여자들, 그래야 사회에 한 발이라도 딛고 설 수 있다고 눈물을 참는 여자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폭력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 엄마들, 면전에서 ‘성폭행하고 싶다’는 말을 농담이랍시고 하는 남자들에 둘러싸여 살아온 소녀들.


이영주, 강지혜 두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드러냈고, 그것을 나눠 가졌다. 그 고통을 나눠 가진 건 비단 두 시인뿐만이 아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 또한 그 고통을 공유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바라는 것은 독자들이 이 책을 고통 전시회의 관람객인 것처럼 읽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사는 데 유난스럽기는’ ‘도대체 뭐가 힘들다는 거야? 그 정도도 못 견디면서 세상 살겠어?’ 같은 말로 고통을 비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의 고통은 남이 강 중 약으로 나눠서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경험은 그 개인에게는 세상의 전부일 수 있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맞아, 맞아. 나도 정말 힘들었어’라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비슷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아, 세상에는 이런 고통이 있을 수 있구나’라고 고개 끄덕이면 될 일이다. 아마 이들의 이야기를 그까짓 것이라며 깔아뭉개거나 심지어 침을 뱉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왜 없겠는가. 혐오와 빈정거림이 가득한 세상에.

“아이처럼 엉엉 울며 제발 이 아이 말 좀 들어달라고, 그게 뭐 어려운 거냐고, 열다섯의 영주를 제 등 뒤로 숨겨두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를 텐데 / 121p”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외면당한 어린 영주를 생각하며 강지혜 시인이 말한 것처럼 나도 이들을 내 등 뒤로 숨기고 공격을 막아주고 싶다. 아마 목소리는 가라앉고 다리는 바들바들 떨릴 것이다. 그렇더라도 용기를 내고 싶다. 내 등 뒤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가라고 자리를 내어주고 싶다.


강지혜 시인의 전작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를 읽으면서 나는 강 시인이 운영하는 제주의 펜션에 언제 가보나 하면서 한가롭게 예약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시인은 관련 책 온라인 북토크에서 아이를 재우고 새벽에 작업실에 가서 시를 쓴다고 했다. 당시에 ‘난 아이 재우면서 같이 쓰러지는데 정말 부지런하다, 감탄!’ 이런 생각을 했다. 돌아보니 그 시기가 강 시인이 상담을 받으러 다니던 때였나 보다. 아이가 잠든 새벽, 시를 쓰러 작업실로 가면서 시인이 했을 생각들을 상상한다. 발걸음이 많이 무거웠겠지. 그런 날들 속에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던 중 급기야 무너져 내린 거겠지.


두 시인이 부디 안온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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