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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Feb 03. 2022

무너져가는 세계를 떠받치는 작은 몸짓들

[완독 일기 /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 마음산책

사실 삶은 좀 어리둥절한 거 아닐까?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잠을 자고 일어나면 아침이 온다고 믿는다. 원한다면 내 장바구니에 쌀, 감자, 배추, 달걀, 파를 담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일주일쯤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려도 곧 해가 떠서 축축함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두어 달쯤 비가 내리지 않아도 곧 땅을 적셔줄 비가 내릴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런 확신과 기대는 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누려온 생활 조건들은 영원불멸할 거라고 당연시해왔므로, 이런 믿음을 갖는데 마음을 다잡을 필요는 없다.


근미래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그래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러게? 26일 후에 75%의 확률로 지구가 소행성과 충돌하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방독면을 써야 생존이 가능한 시대가 된다면?’ ‘인류의 대다수가 죽고 수십 명만 살아남아 외부와 격리된 돔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는 멸망의 위기에 처한 인간이 갖게 될 태도를 상상한다. 여기서 멸망의 원인은 전쟁이나 외계 생물의 침공 등이 아니다. 기후 위기로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식물과 해조류가 죽고, 이어서 초식동물이 그리고 육식동물과 인류가 멸종한다는 시나리오다. 외계인의 침공이 원인이었다면 이 책을 조금 더 가볍게 읽었을까? 작가가 내놓은 시나리오는 너무나 있을 법한 것이어서 책을 읽는 동안 옅은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소설 속 사람들은 대체로 무력했고 많은 이들이 고립되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작가에게 희망을 걸었다. 이들을 그냥 두지 않을 거라고, 이들에게 길을 내어 줄 거라고.


<X이경> <X현석> 두 연작은 지구가 소행성과 충돌할지도 모르는(75%의 확률) 상황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준다. 25%의 살아남을 확률을 믿고 평소대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디데이가 가까워질수록 거리는 텅 비어 가고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일부는 자신이 먼저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지난 삶을 돌아본다.      

“그 사람은 죽었고 나는 용서를 받을 기회도 없는데, 이제 나까지 죽으면 내 죄는 어떻게 되는 건지, 나는 그게 궁금해.” / 34p     

수술 중 실수로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의 말이다. 자신의 죄를 해결하지 못한 채 죽음 앞에 서는 것은 또 다른 형벌일까. 자신이 죽은 후에 어딘가에 남겨질 죄를 생각하면 그것도 견디기 쉽지 않으리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사라진 후라도 말이다.


<상자>의 주인공 민영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비서로 일한다. 부산의 고객에게 상자를 전달해달라는 상사의 부탁으로 길을 나선 민영은 기차에 소지품과 핸드폰을 두고 내린다. 상자 하나만 들고 태풍을 뚫고 부산까지 가는 민영. 그 여정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서 민영의 심리도 요동을 친다. 깨끗한 정장을 차려입고 출발했지만 험난한 여정에 민영의 차림새는 볼품 없어지고, 동시에 타인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된다. 배타적인 시선을 받고, 바이러스를 안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러고 보면 경계는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그 허술한 경계를 어떻게든 가르고, 이 편에 혹은 저 편에 서 있는 사람들. 나는 어느 편에 서야 할까. 


그 밖에 이 책에 실린 단편 <귀환>, <종언>, <귀향>, <가장 큰 행복>, <closed>에는 무력하지만 그래도 애쓰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오염이 덜 된 땅을 찾아 농사를 짓고, 비닐보호막과 공기필터와 수조를 어렵게 구해 버려진 옥상에 텃밭을 일군다. 소행성과 지구가 충돌하기 1시간 전 평소처럼 연인과 아침 식사를 하고, 무너지고 짓밟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생존 확률이 제로에 가깝지만 오래전 헤어진 아들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해 지구 귀환 우주선을 타는 엄마도 있다.


어쩌면, 혹시, 설마, 그래도, 아무려나… 이런 단어들 사이에서 마음이 길을 잃기를 여러 번, 「우리가 허락한 미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고 서툰 몸짓이 무너지는 세계를 떠받치는 희망이 될 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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