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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Mar 03. 2022

이것은 가짜에 대한 이야기

[완독 일기 / 착한 척은 지겨워]

    

착한 척은 지겨워 / 워크룸프레스

재활용품을 분리배출할 때, 상자에 붙은 스티커를 꼼꼼히 제거하고 투명 페트병에 붙은 비닐 한 조각까지 말끔히 처리한다. 그래야 한다고 하니까. 그런데, 그거면 되나?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말 잘 듣는 착한 시민이 되면 그걸로 된 건가? ‘난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자위하기 위한 허울이 아닐까.


약자들을 위한 법 제정에 관심이 많고, 청원에 동의하는 서명을 하고,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면서 착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착각. 잘 들여다보자. 타인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는 나에게 더 관심이 많은 건 아닌지.


집 앞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챙겨주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고기를 먹는 삶.

인간성을 되찾자고 하지만 정작 동물의 서식지는 계속 파괴하는 인간. 그 인간성은 어디에 필요한 것인가.

‘기후 행동’이 유의미한 시간이 불과 10여 년 남았다고 하는데 분리배출 따위로 뭘 어쩐다는 건가. 스스로에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씌우고 정작 쉬운 선택만 하면서 살아온 시간.


이 책은 기후 위기나 동식물을 포함한 지구의 생명체들의 공존에 아예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뭐라도 해야지 하며 머뭇거리나, 뭐라도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펀치를 날린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갈 길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자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고. ‘에라, 모르겠다’ 싶으면서도 진보인 양 하는 사람.


자기 과잉(작가는 쓰레기가슴이라고 불렀다)은 보호해야 할 (것 같은) 수많은 인간들을 만들어내고 진짜 보호해야 할 것들을 가려내기 힘들게 만든다. 경주마의 시야를 한정하는 차안대를 인간도 쓰고 있어서 보이는 것만 보고, 남들도 자신과 같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묻는다면 작가의 답은 이렇다.


지구를 장악한, 자본 중심-인간 중심-관료 중심의 삼두정. 어떻게 이 세 대가리의 축적을 일소하고, 반대 압력을 만들 것인가! / 96p


탈성장, 탈자본, 탈인간. 이를 위해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차악’ 같은 말 운운하면 안 된다. 개발과 성장과 휴머니즘의 마취에서 깨어나 한다. 그리고 묻는다. “누가 할래?”

정확한 순서는 : 사람 > 시스템 > 사람. 먼저 바뀐 사람들이 시스템을 바꿔서, 나머지 사람들까지 바꾸는 거야. 어떤 사람들은 시스템이 바뀌어야 바뀌니까. 먼저 바뀌는 사람은 누구냐고? 자기 시스템부터 뜯어고치는 사람. / 168p

기꺼이 '저요!' 하고 손 들 자신이 없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너무 거대하고 감당 안 되고 닭살 돋아서 피했던(81p)’ 이야기다. 그래도 꼬리에 붙어서 따라가 볼 생각은 있다. 그런 착한 척 집어치워 소리를 듣더라도 말이다.


시스템도 그대로, 우리가 하던 모든 것도 그대로, 정부와 대기업들만 좀 착해지면, 즉 적절한 기술에 적절히 분배만 하면 해결된다는. 그런 건 자본주의도 반긴 지 오랜데. 조금만 과학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그게 답이 아니란 걸 아는데. 한 100년쯤 남았다면 몰라도 이제 ‘기후 행동’이 유의미한 시간이 10년도 안 남았다. / 85p     


독자 중에는 ‘애쓰고 있는데 좀 심한 것 아니냐?’며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심지어 그들에게조차 이 책은 ‘징징거리지 마!’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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