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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Mar 04. 2022

나는 왜 대안학교 문턱에서 머뭇거렸나

[완독 일기 / 삶을 위한 학교]

삶을 위한 학교 / 녹색평론사

아이가 다닌 유치원에는 누리과정이 없었다. 한글은 물론이고 숫자 교육도 하지 않았다. 숲과 하천이 놀이터였고, 실 꿰기, 구슬치기 등이 주요 놀이였다. 계절마다 캠프, 자전거 여행, 등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장소만 바뀔 뿐  시간표의 모든 시간이 ‘놀기’였다. 아이와 아빠만 참여하는 아빠 학교가 매월 열렸다. 남편은 아빠학교 3년 개근으로 아이가 졸업할 때 상을 받았다. 급식과 간식은 생협에서 구매한 친환경 재료로만 만들었다.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행복할지 고민했다. 원 활동에 부모 참여가 적극 권장되고, 정기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활동도 (귀찮을 만큼) 많았다. 아이는 3년 동안 단 한 번도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방학을 싫어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고민이 많았다. 대안초등학교 여러 곳을 방문해 상담을 받기도 했다. 유치원에서 아이가 누린 자유를 생각하면 공교육 시스템에서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요즘 같은 때 한글도 떼지 않고 학교를 보내도 되나 걱정도 앞섰다. 고민 끝에 아이는 공립초등학교에 입학했다(한글은 입학 전 한 달 동안 집에서 부랴부랴 가르쳐서 보냈다). 지금은 하교 후 열심히 학원 뺑뺑이를 돌며 지내고 있다.


「삶을 위한 학교」는 덴마크 자유학교 ‘폴케호이스콜레’에 대한 이야기다.

그룬트비(1783~1872)는 덴마크의 중흥을 이끈 인물로 지금도 덴마크인들에게 추앙받고 있다. 교육자이자, 종교가, 시인인 그룬트비는 진리는 교회나 성서가 아니라 교회에 모인 사람들, 즉 민중에게 있다고 보았다. 교육 또한 이와 맥을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삶을 위한 학교>(1838)라는 책을 쓴다. 여기서 그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학문을 가르치는 것에서 벗어나 좋은 사회를 뒷받침하는 시민을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국민고등학교를 설립한다. 이것이 폴케호이스콜레의 시작이다.


폴케호이스콜레는 기숙학교를 원칙으로 한다. 학교 교육 과정에 속하지만(즉, 국가의 지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운영은 자유롭다. 입학을 위한 시험이나 자격이 없고, 학점도 없으며 졸업을 위한 조건도 없다. 재학 기간도 일주일부터 8개월까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전문 지식 중심이 아닌 생활 밀착형 교육을 받는다. 특히 선생님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원하는 활동을 직접 구상하고 운영 방식을 정하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모여서 진행한다. 덴마크에는 폴케호이스콜레 외에도 유치원생부터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생까지 다닐 수 있는 여러 형태의 자유학교가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한 것은 교육에서 덴마크가 한국에 수십 년 앞서간다는 것이었다. 덴마크에서는 문화적 다원주의, 평화운동, 젠더론, 인권, 편견과 차별, 환경오염 등의 강좌가 이 책이 쓰인 1996년 이전부터 개설됐다. 최근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인 만큼 시간의 격차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덴마크에는 자유시간법이 있어서, 일정 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기획하면 지자체가 공간과 강사 그리고 기타 경비를 부담(59p)’한다. 내가 사는 지자체에도 같은 프로그램이 있고 시민이 기획안을 내면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 또한 시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다.


이 책의 초판은 1996년에 발행됐다. 26년 전 덴마크 교육 현장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보니 시간의 간극을 극복하면서 읽어야 하는 부담(혹은 불편)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나를 부르는 숲」(빌 브라이슨)도 오래전 쓰였지만 저자가 자연에서 느끼는 개인의 감상에 주목해 읽으니 발행 시기는 독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주제 자체가 시대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책을 읽어야 했다. 현재가 독자의 발목을 잡는 느낌이랄까.


과거에 발행된 책이 현재 독서의 발목을 잡았다면 내 아이의 교육을 위한 고민에서는 미래가 내 발목을 잡았다. 대안학교를 기웃기웃하던 나는 왜 아이를 공교육 시스템 안으로 들여보냈을까.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하게 되는 고민은, 아이들이 그런 자유로운 학교를 나온다고 해도 이후에는 역시 이 답답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결국은 수험 전쟁에서 이긴 아이가 유리하게 되고, 표현과 창조성이 풍부한 아이들은 어딘가 불리하게 되는 식으로 이 사회는 돌아가고 있다. 물론 그런 데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본래 쓰지 않아도 될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 235p      


이 문단은 내가 대안학교 앞에서 머뭇거린 이유를 정확하게 표현한다. 마치 채식주의처럼 방향은 아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 당위도 알겠고 이런 삶에 기대감도 있지만 불안감이 너무 커서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것. 교육 문제는 자본주의의 폐해와 맞닿아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빈부 격차는 커지고, 경쟁을 뚫고 사다리의 꼭대기에 오르지 않으면 살아갈 방법이 없다. ‘엘리트와 민중의 격차가 클수록 수험공부에 대한 부담이 크다(152p). 1등이 아니어도 먹고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면 굳이 삶을 시험에 갈아 넣을 필요가 없을 텐데 답도 없이 한숨만 쉰다.


그럼 뭘 해야 할까? 책을 읽은 후 나의 결론은 (대한민국의 기준의) 유토피아를 바라며 너무 멀리 내다보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 답은 마을에서 찾아봐야겠다. 모든 걸 버리고 자연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이 속된 도시를 떠날 수 없다면 도시 안의 마을에서 행복을 찾아보자. 소수라도 좋으니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고, 아이에게 학교 밖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많다는 것을 알려주자.

이 책은 마을 공동체가 조금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훌륭한 교과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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