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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Mar 07. 2022

성스러운 빵과 권총의 관계

[완독 일기 / 먹는 인간]

 

먹는 인간 / 메멘토
총소리가 노래와 섞인다. 무슨 일인가! 세상이 아예 이상해졌군.(195p)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는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지뢰가 터져 병사들의 살점이 조각조각 흩어진다. 소총과 기관총이 난사되는 가운데 인근 호텔의 야외극장에서는 라이브 음악 쇼가 이어진다. 소말리아 사람들은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줄기를 간식처럼 씹으며 슬픔을 감춘다.


각 나라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은 굳이 읽을 필요 없다. 각 나라의 음식 문화가 궁금하다면 다정다감한 여행 에세이 몇 권만 들춰봐도 대략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상하고 슬프고 빛이 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 시작에 음식이 있다.


저자 헨미 요는 일본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시인이다. 그는 「먹는 인간」에서 1992~1994년 세계를 여행하며 '먹는 인간'을 유심히 바라보고, 함께 음식을 먹으며 파생되는 생각을 기록했다.


국수 한 그릇을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회의 변화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저자는 교도통신 하노이 지국장을 지내던 시절, 하노이 시민들이 큰 나무 아래서 여유 있게 쌀국수를 먹던 기억을 떠올린다. 도쿄의 우동가게 앞에 서서 2~3분 만에 우동 한 그릇을 먹는 샐러리맨들과 비교하면 무척 여유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후 다시 찾은 하노이의 쌀국숫집 풍경은 어딘가 좀 달라져 있다. 국수를 먹는 시간이 전보다 짧아졌고 발걸음은 다소 빨라졌다. 저자는 그것을 '경제 활성화와 사회 변화의 징조'로 보았다. 국수를 먹는 시간을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본 것이다. 하노이에서 출발해 호시민시로 가는 베트남 종단열차를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동이라고 본 것도 인상적이다.

  

코소보 인근의 세르비아 정교회에서는 먹는 행위를 매우 신성하게 여긴다. 과식과 쾌락을 위한 식사에서 죄가 생겨난다고 본다. 수도사들은 음식을 아주 적게 먹고, 식전에 3시간씩 기도를 한다. 식사는 엄숙한 의식에 가깝다. 이곳 수도사와의 식사는 저자에게 종교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함께 식사를 하던 맞은편 사제가 권총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순간의 어처구니없음. 당시 정교회가 있던 마을은 코소보의 독립을 요구하는(현재는 독립) 알바니아 이슬람교도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사제들이 무장을 하기도 했다. 종교와 성지를 지키기 위해 무장을 하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저자는 '성스러운 빵과 권총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폴란드의 작은 서커스단에서 일하는 곡예사들은 공연 직전에는 음식과 물을 먹지 않는다. 몇 시간 동안 배가 고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배가 부르면 집중력이 떨어져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샤프라네크와 보제나는 한 팀으로 공연을 하는 부부 곡예사다. 남편은 “먹으면 신경이 둔해지고, 팔이 느려져서 정신을 집중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7년 전 남편은 공연 중  아내의 배에 칼을 꽂았다. 15년의 서커스단원 생활 중 딱 한번 저지른 실수다. 사고 이후 아내는 부엌에서 넘어져 칼에 찔렸다고 거짓말을 하고 의사에게 수술을 받았다. 다른 단원도 먹는 일에 민감하다. 비만과 실수는 곡예사의 적. 음식을 먹을지 곡예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삶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먹다 남긴(이빨 자국이 선명한 음식을 포함해서) 음식을 파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사기 위해 심지어 애를 써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잔류 병사들에 의해 가족이 '먹힌' 일을 증언하는 주민들이 있다. 당시 수십 명이 끌려가 인육이 됐다. 우간다에서는 에이즈에 걸린 엄마가 수직감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기에게 젖을 먹인다. 아기에게 줄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군 함대의 신병 4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한다. 인근 도시에는 군 식량이 싼값에 거래된다.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로 산속 생활을 버리고 산 밑으로 내려온 아에타족. 이들은 산에서는 뿌리채소를 주식으로 먹고 활로 사냥한 새나 박쥐를 부식으로 먹었다. 산 밑으로 내려온 지 2년, 여든 살의 부족장은 네스카페 커피 애호가가 됐다. 구호품으로 받던 커피가 떨어져 지난 한 달 동안 먹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면 커피를 얻을까 궁리 중이다.


오늘 점심에 딸아이와 배추전을 해 먹었다. 배추 하나에 담긴 드라마는 얼마나 많은가. 배춧값 폭락으로 밭을 갈아엎는 농부, 함께 김장을 하는 몇 안 되는 마을 공동체, 동북공정의 맥락으로 김치를 자기네 문화라 우기는 중국….

먹는 일과 사는 일의 상관관계를 찾자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저자는 이것을 '숭고함'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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