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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Mar 14. 2022

속물이라 죄송하지만, 이왕이면 BTS 뷔였으면…

[완독 일기 / 약속 식당]

약속 식당 / 특별한서재

‘전생에 나라를 구했구나’

BTS 뷔가 옆집으로 이사 오면 들을 법한 말이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흔히 듣는 이 말은 전생에 덕을 쌓으면 현생에서 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광화문 광장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거 보면 나 전생에 이순신 장군이었나 봐’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전생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다음 생을 위해서라도 이번 생에서 제대로 산다는 마음이 있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것. 나아가 다음 생에서 내 아이와 또 연을 맺을 수 있다면 전생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현생이 불과 17년 살이에 불과하다면, 평생 지켜주고 싶은 사람을 두고 생을 마감하는 거라면 전생이든 다음 생이든 다 필요 없다. 어떻게든 이번 생을 붙잡아 온 힘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 채우의 이야기는 그래서 마음에 절절하게 와닿는다.


열일곱 나이에 폭력으로 사망한 채우는 이미 망각의 강을 건너 다음 생을 기다리고 있다. 채우 앞에 나타난 만호는 천 명의 다음 생을 얻어야 불멸을 얻는 존재다. 그런 만호가 채우에게 다음 생을 내놓는 대신 전생에서 인연을 맺었던 단 한 사람과 만나게 해 준다고 제안한다. 단,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채우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은 설이다. 채우는 보육원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낸 설이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설이와 함께 개발하던 요리 ‘파감로맨스’를 완성하고 싶다. 망각의 강을 건너서도 살아남은 기억이라면 그 속에는 한(恨)이 서려있는 것이겠지.

다음 생이 주어지는 것과 전생의 인연을 잠시 만나고 영원히 소멸하는 것. 공정한 거래가 아닐 것 같지만 채우에게 남은 기억(한, 恨)은 주저 없이 설이를 만나는 것으로 이끈다.


이제 설이를 찾아보자. 설이도 채우처럼 다음 생을 살고 있다. 그런데 누가 설이인가? 책에 한 명씩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이 사람이 설이일까?’ 눈 부릅뜨고 바라보게 된다. 설이인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가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면 ‘이 사람이 설이일수도 있겠네’라며 추적의 방향을 바꿔보기도 한다. 「약속식당」을 읽는 특별한 재미가 여기에 있다. 거기에 채우가 운영하는 식당 2층에서 밤마다 들리는 으스스한 소리가 BGM으로 깔리니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그렇게 결말에 이른 페이지에 ‘그리하여 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마음이 복잡해지고 여운이 길게 남지 않았겠지.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첫 문장을 다시 찾아본다.

‘후회하지 않지?’

「약속 식당」의 첫 문장이 달리 읽힌다.

채우에게 숭고함이라고 새겨진 깃털을 달아주고 싶다. 채우가 한 줌 연기처럼 소멸되더라도 그 깃털이 어딘가에 사뿐 내려앉아 설이를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다음 생을 포기한 채우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생에 설이와 백년해로하지 못한 슬픔을 설이와 재회한 찰나가 모두 보상해주었을 것이라 믿는다. 비록 설이의 기억은 단편적이지만, 그리고 채우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채우에게는 그거면 됐다. 설이 또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채우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있었다는 뜻이니 말이다.


모든 우연은 알고 보면 인연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세계에서 간절한 마음들을 엮어 만들어 준 것일지 모른다. 그러니 더 사랑해야 한다. 나를 찾아온 이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써야 한다. 결국 이 책은 ‘지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큰일이다. 「약속 식당」을 읽은 다음부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달리 보인다.

‘혹시 나를 찾고 있는 걸까?’

망각의 강을 건너서도 나를 찾는 이가 있다면 이왕이면 BTS 뷔였으면 좋겠다.

어차피 전생의 인연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면 말이다.

채우의 고귀하고 순결한 마음에 재를 뿌리는 이런 발상! 미안하다 채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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