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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Mar 15. 2022

동물 인형의 눈 너머에 인간이 있다

[완독 일기 / 리틀 아이즈]

리틀 아이즈 / 창비

딸아이는 동물 인형을 좋아한다. 아기일 때부터 마론 인형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동물이었다. 사자, 북극곰, 원숭이, 펭귄, 호랑이, 곰…. 이케아에서 데려온 인형부터, 길에 며칠째 방치돼 있어 주워온 인형, 20대가 된 사촌언니가 어릴 적 좋아했던 애착 인형까지 그들의 연령과 고향(출처)은 다양하다. 아이는 모든 인형에 이름을 지어주고 동생처럼 보살핀다. 목욕을 할 때면 ‘오늘은 누구 차례지?’하고 한 마리씩 데리고 들어가서 씻긴다. 마트 완구 코너에서 새로운 인형을 보아도 관심이 없다. 새 가족을 데리고 가면 동생들이 서운할 거라는 이유에서다. 우리 집에 있는 열몇 개의 동물 인형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제 어쩌나. 동물 인형이 달리 보인다. 깜빡이지도 않고 24시간 뜨고 있는 인형의 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의 상상 속에서.


「리틀 아이즈」는 장편 소설이지만 각 장을 하나의 이야기로 떼어내 읽어도 무방하다. 각 장의 등장인물들은 만나지 않는다. 관계 맺지 않은 인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가는 매개는 ‘켄투키’다. 동물 인형의 모습을 한 켄투키는 생김새로 보면 장난감이다. 집 안에 풀어놓으면 주인을 따라다니며 기본적인 소통을 한다. 이런 특징으로는 반려동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켄투키의 눈 너머에 인간이 있다. 그럼 켄투키는 인간인가?     

켄투키는 인형 형태의 실물과 켄투키 연결 암호 카드 두 가지 형태로 구매할 수 있다. 인형을 구매했다면 집 안에서 반려동물처럼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존재를 곁에 두게 되는 것이다. 그 인형을 조정하는 건 연결카드를 구매한 사람이다. 컴퓨터에 카드를 연결하면 페어링 된 켄투키의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모니터로 볼 수 있다. 인형 주인의 말도 번역된 언어로 읽을 수 있다. 페루의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60대 할머니가 키보드로 자신의 켄투키를 조정하면 독일에 사는 20대 젊은 여성의 집에 있는 켄투키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켄투키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건 어떤 심리에서 기인하는가. 신인류의 새로운 관계 맺기의 방식으로 이해하면 될까. 켄투키를 조정하는 사람은 켄투키의 주인이 자신을(관절 인형으로서의 켄투키와 모니터 앞에 앉은 사람을 같은 존재로 본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사랑해주길 바란다. 켄투키는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익명’으로도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켄투키의 주인과 사용자 중 어떤 역할을 선택할까. 익명의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 싫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관찰하고 관여한다? 그것이 선한 의도일지라도 노 땡큐다.


「리틀 아이즈」는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 대해 묻는다. 각종 기기를 통해 초연결되어 사는 지금 우리에게 관계 맺기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켄투키의 경험은 누구의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아르헨티나 작가인 사만타 슈웨블린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이끌어갈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부커상 후보에 여러 번 후보로 오르고 티그레후안상, 셜리잭슨상 등을 수상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다. 대단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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