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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Mar 23. 2022

독서로 뱀파이어를 죽인다고?

[완독 일기 /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 문학동네

조용한 마을에 뱀파이어가 나타나 아이들을 위협한다. 어리숙한 등장인물 몇 명이 힘을 합쳐 우여곡절 끝에 뱀파이어를 물리친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순간이 두어 번 지나가고 마지막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 책을 읽기로 했을 때 예상한 시나리오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예상을 빗나가서겠지.

최근 무게감이 있는 책을 읽었기에 가볍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 667쪽 분량이 말하듯 물질로서의 책은 무거웠다 - 책을 읽고 싶었다.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이라는 제목이 말해주지 않는가. “킬링 타임용!” 부담 없이 읽기 시작.

시작은 웃겼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유머가 첫 장부터 나와 ‘책 잘 골랐군’ 만족하며 시작했다.  


북클럽 사회를 봐야 하는데 모임 직전까지 책을 한 페이지 읽은 사람의 상태를 설명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저자는 유머를 택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퍼트리샤는 「울어라, 사랑하는 조국이여」를 읽고 90분간 북클럽 모임을 이끌어야 한다. 첫 페이지 ‘익소포에서 그 언덕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이 있다’ 문장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딸과 아들이 번갈아가며 사고를 친다. 사고 친 내용은 상상에 맡긴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대충 짐작하시리라. 이 상황을 퍼트리샤는 이렇게 말한다. ‘익소포에서 이어지는 길이 그토록 아름다운 이유를 알기도 전에 일광욕실의 창문 너머로 발가벗고 뛰어가는 블루가 보였다.’ 그리고 결국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진을 뺀 퍼트리샤는 ‘익소포를 통과하는 그 길은 그녀 없이도 언덕을 향해 잘만 갔다’라는 말과 함께 북클럽 모임 날을 맞는다. 우여곡절 끝에 북클럽에서 마음에 맞는 멤버들을 만나 친목을 쌓아가던 어느 날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북클럽 여성 멤버들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이야기.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책을 다 읽은 후 예상 시나리오를 벗어났다고 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누군가가 죽고 다치고 위험에서 벗어나고 하는 일련의 일들이 말 그대로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여러 번. 독자의 심장을 조일만큼 아슬아슬한 순간에 등장인물이 위험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웬걸! 어느 순간에 예상했던 인물이 나타나서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웬걸! 이런 순간들을 몇 번 겪은 후 책의 내용을 예상하는 걸 그만두었다. 뻔하지 않은 스릴러, 참신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책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이야기이지만 과연 그럴까 싶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런 문장이 있다.


“야행귀들은 항시 굶주려 있어. 끝없이 빼앗고도 만족을 몰라. 영혼을 저당 잡힌 놈들은 먹고 또 먹으면서 절대로 멈출 줄을 몰라.” / 183p     

뱀파이어만 그럴까? 야행귀 자리에 다른 단어들을 넣어보자. 정답은 없다. 각자 생각하는 그 단어를 넣어보면, 말이 된다. 나도 서너 개는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책을 시작하며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뱀파이어는 타고난 연쇄살인마이기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걸 상실했다. 친구도, 가족도, 뿌리도, 자녀도 없다. 가진 건 허기뿐이다. 먹고 또 먹지만 결코 배부를 수 없다. 나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식욕을 제외하고 그 어떤 책임도 질 일이 없는 남자와 삶 전체가 끝없는 책임으로 점철된 여자들을 싸움 붙이고 싶었다. 드라큘라와 내 어머니를 싸움 붙이고 싶었다.”     


남자들이 거대(해 보이는)한 허상을 잡으려고 바깥을 보는 동안 여자는 가족과 이웃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눈을 돌린다. 피범벅이 되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북클럽 멤버답게 읽은 책의 내용에서 힌트를 얻어 증거를 찾아낸다. 남편들은 그런 여자들을 ‘식당에 모여 낄낄대며 고작 와인 한 잔에 우스꽝스러운 지경이 되는 존재’ ‘어떤 귀걸이를 살지, 후식으로 뭘 주문할지 고민하는 존재’라고 치부한다. 그녀들이 읽는 책과 책을 읽는 행위도 함께 평가절하된다. 그런 여자들이 서로를 도와가며 아이를 지켜낸다.


“우리는 북클럽이야” 메리엘런이 말했다.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해? 독서로 그를 죽여? 강력한 언어를 무기 삼아?” / 546p      


한낱 북클럽 멤버에 불과한 여자들 자신조차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덤빈다. 혼자 힘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서로 힘을 합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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