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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Mar 28. 2022

다미야, 닫힌 문 너머에 진짜 세상이 있어

[완독 일기 / 비밀 전학]

비밀 전학 / 현암주니어

엄마와 아이만 있는 가족, 탈락! 

아빠와 아이만 있는 가족, 탈락!

이혼 후 재결합한 확대 가족, 탈락!

결혼하고 아이 낳지 않는 부부, 탈락!

동성부부, 탈락!

이런저런 가족 탈락!


위에 언급한 형태의 가족은 정상 가족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법으로 규정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그에 앞서 우리 사회가 정상가족을 구분하는 기준이 그렇다. 몇 년 전 읽은 책의 제목은 <이상한 정상가족>이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가족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이상한지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비밀 전학」은 아빠의 폭력을 피해 여성의 쉼터로 거처를 옮긴 다미 남매와 엄마의 이야기다. 아빠가 엄마와 두 아이를 찾아내 다시 폭력을 휘두를 것이 두려워 한밤중에 옷가지 몇 개만 챙겨서 집을 나왔다. 비밀 전학은 ‘가정 폭력 피해 학생이 전학을 갈 때 아동 학대 행위자, 가정 폭력 가해자에게 학생이 전학 간 학교, 거주지, 연락처 등을 비밀로 하여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134p)’이다.


다미는 비밀 전학을 했다. 반 아이들에게 어디에 사는지, 왜 전학을 했는지 말할 수 없다. 급하게 아빠로부터 탈출한 터라 교과서를 챙기지 못했는데 그 이유도 얘기할 수 없다. 어차피 여성의 쉼터에서는 최대 6개월만 지낼 수 있기 때문에 다시 전학을 할 확률이 높다. 친구들에게 마음을 줄 수도 없고 주고 싶지도 않다. 누구와도 관계 맺지 못하는 생활이라니. 이 잔인한 이야기가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비밀 전학」은 나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남겼다. 한 가지는 정상가족에 대한 이상한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것. 다미가 자신의 이야기를 비밀로 하는 건 아빠에게 소식이 전해질 것이 두려워서다. 또 다른 이유는 다미의 경험에서 기인한다. 비밀 전학을 갔던 이전 학교에서 믿었던 친구에게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은 후 그 아이와 멀어졌던 경험은 다미가 자신의 비밀을 더 꽁꽁 싸매는 계기가 됐다.

“우리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랑만 놀래.”(26p)

이 말을 듣기 전과 후의 다미는 아마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자신의 존엄성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될 것이고, 세상이 살만한 곳인지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두 번째 기억할 이야기는 폭력의 피해자는 숨어 지내야 하고, 가해자는 거리를 활보하는 현실이다. 다미 남매와 엄마는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를 피해 다니느라 숨도 못 쉴 지경이다. 더 약한 존재를 향해 악의 무게가 눌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힘없는 아이들은 맨 밑에 깔려 소리도 지르지 못한다. 아이들을 짓누르는 폭력과 억압을 치워줘야 한다. 공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앞서 말한 「이상한 정상가족」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한다.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의 선을 정하는 게 먼저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공감의 감수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물론 필요하지만 이를 개인의 도덕적 과제, 감성의 영역으로만 남겨두어선 안 된다. '우리'의 폭을 넓히려는 교육이 공교육에 제도적으로 포함되어야 하고, <차별금지법>,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 그게 우리를 같이 살아가게 해주는 공감의 제도화다. 역지사지하고 공감하는 능력보다 사적 관계에선 예의, 공적 관계에선 정책과 제도가 우리의 공존을 가능하게 해 주는, 더 인간적인 장치다. / 256p     


책 표지에는 다미가 닫힌 문 앞에 서있는 그림이 있다. 다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다미와 남동생이 자주 하던 놀이는 눈 감고 하는 술래잡기다. 눈을 감아야 견딜 수 있는 현실이 아닌, 문 너머에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닌, 진짜 살만한 세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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