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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Apr 01. 2022

"어른은 끝없이 될 수 있는 건가 봐요?"

[완독 일기 / 새 마음으로]

새 마음으로 / 헤엄출판사

“점심은 드셨을까요?”

이슬아는 이대목동병원에서 청소부로 27년간 일한 순덕 씨에게 첫마디로 이렇게 물었다.

인터뷰 첫마디로 끼니를 묻는 작가. 이슬아니까. 나 대신 그들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것 같아 기분 좋은 인터뷰. 지금까지 내가 감각하지 못했던 노동의 실재를 보여 준 책. 내가 인식해야 했던 건 뭉뚱그려진 노동의 존귀함이 아니라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노동의 모습이었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경험. 독서가 이래서 좋다.


「새 마음으로」는 이슬아의 이웃 어른 7명의 인터뷰집이다.

순덕 씨는 응급의학과 의사이자 작가인 남궁인이 일하는 병원의 응급실에서 청소를 한다. 남궁인의 소개로 인터뷰가 성사됐다. 인숙 씨는 작가의 절친인 김신지 작가의 엄마이고, 문경에서 농사를 짓는다. 존자 씨와 병찬 씨는 부부다. 작가인 이슬아의 외조부모이고 아파트 청소를 한다. 경연 씨는 작가의 책 중 한 권을 인쇄한 인쇄소에서 일한다. 기장으로 오래 일하다가 지금은 총책임자로 근무한다. 혜옥 씨는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인쇄소 중 한 곳에서 경리로 일하고 있다. 회계 외에도 책 제작에 여러 모로 관여한다. 영애 씨는 작가의 집 근처에서 수선집을 운영한다. 손이 빠르고 정확해서 인기가 많다. 인근 학교의 교복 중 상당수가 영애 씨의 손을 거쳤다.


이 책의 부제는 ‘이슬아의 이웃 어른 인터뷰’다. 어른은 누구인가? 아이에게 ‘어른들 말씀 잘 듣고~’ 할 때 그 어른? 그러니까 나이가 주는 호칭 같은 건가?

작가는 왜 인터뷰이들에게 어른이라는 호칭을 붙였을까? 책을 읽으면 ‘어른’ 이외의 다른 말로는 부를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된다. 진짜 어른이니까.  

    

응급실 청소 노동자 순덕 씨는 새벽 4시 10분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출근해 피와 체내 분비물 범벅인 응급실을 하루 종일 청소한다. 퇴근 후에는 혼자 사는 노인들을 방문해 밥, 빨래, 목욕 등을 돕는 자숸봉사를 한다. 한 달에 네 번 쉬는 날에는 성당에 간다. 성당에서는 글씨를 가르쳐줘서 좋다. 3년 후 퇴직을 하면 글씨를 제대로 배우고 세례도 받고 싶다. 세례를 받아서 더 ‘으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슬아) “어른은 끝없이 될 수 있는 건가 봐요.” / 38p


계속 어른이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진짜다. 싸움의 현장에서 자주 듣는 “너 몇 살이야? 어린 느므 시키가!” 이런 말을 하는 그냥 나이 많(먹)은 사람 말고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하지만 난 그런 어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진짜 어른들의 그 마음가짐을 나는 갖지 못했다.

     

버섯, 오이 등 각종 작물 농사를 짓는 인숙 씨는 삶이 고될 때마다 새 마음을 먹는다. 자신이 너무 상하지 않게 자꾸자꾸 새 마음으로 살면 살아진다고 말한다.

아파트 청소 노동자 존자 씨는 아파트 청소 외에도 밭농사와 온갖 일을 한다.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냐는 작가(손녀)의 말에 이렇게 말한다.

“힘들다고는 생각 안 한 것이, 옛날에는 하고 싶어도 못 했자녀. 농사 지을 땅도 없고 돈 벌 자리도 마땅치가 않았응께. 지금은 내 몸만 허락하면 일을 할 수가 있자녀. 그게 행복한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 121p

대학 합격증을 들고 온 자식에게 돈을 주지 못해 자식이 대학에 가지 못한 일이 가슴에 한으로 남은 부모. 부부가 함께 건설 현장에서 80킬로그램짜리 시멘트를 등에 지고 3층을 오르락내리락 해도 돈이 없어 끼니 걱정을 했던 날들. 그 시절을 견뎌내고 자식에게 뭐라도 해줄 수 있는 지금, 그 어떤 노동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한다면 이런 분들을 두고 해야 한다. 마침 인터뷰이의 이름도 존, 자 아닌가.


인터뷰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수십 년 간 일하면서 숙련자가 된 분들이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기술을 배워야 한다. 인생을 살아내기 위한 마음먹기의 기술. 그리고 바로 지척에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끝없이 어른이 되는 길의 입구라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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