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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Jan 23. 2022

우리 할머니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완독 일기 / 잔류 인구]

잔류 인구 / 푸른숲

유쾌하다! 통쾌하다!


먼 미래(어쩌면 근미래일지도) 어느 행성. 인간들은 새로운 개척지를 건설했다. 지구가 어떻게 됐는지 나오지 않지만, 짐작은 된다. 그곳에서 40여 년을 살던 개척민들은 개척지에 문제가 생겨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당한다. 강제 이주를 명령한 것은 컴퍼니라고 불리는 조직이다. 아마도 이들은 또 다른 행성에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독보적인 주인공 오필리아 할머니는 저온탱크에 누운 채 수십 년에 걸쳐 이동한 후 또 다른 개척지에 가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개척지에 자발적으로 혼자 남는다.     


오필리아 할머니는 노인에 대해 갖는 편견을 통렬하게 깬다. ‘혼자서도 잘해요’ 대회가 열린다면 전 세계 챔피언이다. 혼자여서 가능한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지독한 자유라고 할 만큼 제대로.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축제 분위기가 나는 옷을 만들어 입고, 호기심이 생기면 답을 찾아 나선다.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해결한다. 태풍에 대비해 집을 수리하고, 소와 양을 살피고, 농작물을 기르고, 각종 기계들을 다루기 위해 매뉴얼을 찾아본다. 인류가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가면서 진보하는 이야기는 많이 있다. 그중에 늙은 여성, 그러니까 할머니가 해결사 역할을 하는 이야기들을 본 적이 있던가?     


전자책이라면 ‘쓸모’와 ‘자유’라는 단어가 몇 번 들어갔는지 찾아보고 싶을 만큼 이 책에서 쓸모와 자유는 중요한 키워드다. 오필리아 할머니는 늙은 여자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멋지게 한 방을 날린다. 쓸모없는 것들을 쓸모 있게 만드는 솜씨가 감탄스럽다. 그 쓸모의 대상이 물건이든 오필리아 자기 자신이든 말이다. '우리 할머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는 응원의 말이 절로 나온다. 


책의 초반을 읽을 때는 행성에 혼자 남은 할머니의 고군분투 생존기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제목이 왜 「잔류 인구」일까?’ 생각하며. 인구는 보통 둘 이상일 때 쓰는 단어 아닌가? 잘 모르겠다. 어쨌든 행성에 지적생명체가 오필리아 할머니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다른 인간이 이 행성에 발을 디디면서 「잔류 인구」의 뜻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오필리아 할머니와 그들(누구게요?)이 잔류인구로 그 행성에서 살아갈(간) 날들을 상상한다.     


책 뒤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무쓸모, 무가치의 시선을 기꺼이 부스고 스스로 잔류인구가 된 70대 노인의 행성 생존기’     

그러니까 이걸 한마디로 말하면, 아니 오필리아 할머니가 한국 할머니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뭣이 중헌디?’


#잔류인구 #엘리자베스문 #푸른숲 #완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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