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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Jan 24. 2022

개인과 대중의 욕망은 어떻게 충돌하는가?

[완독 일기 / 콜카타의 세 사람]

콜카타의 세 사람 / 북하우스

인구 14억 명, 힌디어 외 14개의 공용어,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 등 다수 종교가 존재하는 나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며, 다른 종교를 믿으며 한 나라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카슈미르 분쟁, 종교 분쟁 같은 뉴스 헤드라인을 자주 접하다 보니 더욱 그랬다. 실제로 이 책에는 종교 갈등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다수 종교인 힌두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에게 린치를 가하거나 심지어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언어, 인종, 종교가 다양해서 벌어지는 일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인혁당 사건’ ‘보도연맹’ ‘제주 4.3’ ‘광주 5.18’ 등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현대사의 비극들은 국가 권력의 잔인함이라는 측면에서 소설 속 이야기와 많이 닮았다. 이 책은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 나아가 대중의 비뚤어진 욕망 앞에 개인은 얼마나 무력한지 보여준다.     


「콜카타의 세 사람」은 지반, 히즈라, 체육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이들 각각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가진 욕망이나 삶에 대한 가치관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야기는 콜카타 빈민가 기차역에서 발생한 방화테러로 시작한다. 이 사건으로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한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 근처를 지나던 지반이라는 여성이 테러리스트 혐의를 받고 수감된다. 검찰이 지반을 테러리스트로 지목한 근거는 그가 sns에 게재한 글이다.

‘경찰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죽는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본다면, 정부 역시 테러리스트라는 뜻 아닌가요?’

이 정도 글을 썼다고 감옥에 갇힌다고? 국가의 폭력 앞에 이성과 합리를 찾기는 어렵다. 지반이 테러리스트 혐의를 받는 건 지반이 그럴만한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국가가 테러리스트로 지목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반의 무고를 증명할 모든 말과 증인들은 국가가 만든 작품의 들러리일 뿐이다. 방화 사건이 있던 날 지반이 들고 있던 꾸러미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폭탄물이 된다.      

기자들은 지반의 집 앞에 진을 치고 기사거리를 만들어낸다. 테러에 분개한 대중들은 판결이 나기도 전에 지반을 테러리스트로 단정하고, 분노의 목소리를 높인다. 국가가 만들어낸 거짓 이야기에 대중들은 분노하고 다시 국가는 대중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지반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국가의 뜻에 대중의 욕망이 더해지면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두 번째 인물은 히즈라 러블리다. 히즈라는 인도에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을 부르는 말이다. 이들은 주로 구걸을 하거나 잔칫집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들을 축복해주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가는 곳마다 모욕을 받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래서 모욕을 받을 때마다 쓰레기 던지듯 그 모욕을 버려버린다(180p). 배우 지망생이기도 한 러블리에게 지반은 자원봉사로 영어를 가르쳐주었다. 사건이 있던 날 지반은 러블리에게 영어교과서를 전달하러 가는 길이었고, 폭탄으로 오인받은 꾸러미는 그 교과서가 담긴 가방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러블리는 재판에서 지반을 위해 증언을 하기로 하지만 상황은 원하는 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세 번째 인물은 한 때 지반이 다녔던 학교의 체육선생이다. 지반이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걸 알고 먹을 걸 주기도 하고, 지반에게 체육 재능이 있는 걸 알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지반이 어느 날 학교를 그만두면서 자신에게 감사 인사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방화사건이 벌어지고 체육선생 또한 지반의 재판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지반과 러블리와 체육선생은 평범한 개인이지만 재판 과정에 참여하면서 대중의 욕망과 충돌한다. 결국 지반의 재판은 이해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국가와 대중이 만들어낸 악은 돌고 돌아 개인의 삶을 위협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대중에게서 발견될 때 그 대중에 내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나? 나는 선한 개인으로만 살아갈 수 있나? 선한 대중도 얼마든지 있다고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면 되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마음이 더 복잡하다. 분명한 건 타인의 생존에 앞서는 것은 나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분쟁의 탈을 쓴 오락’(12p)

이 책에서 인상적인 단 한 문장을 꼽으라면 이 문장을 선택하겠다. 방화사건이 있던 날 sns는 대중들의 다양한 의견들로 넘쳐난다. 테러를 증오하고, 정부를 비판하고, 그런 너는 잘났냐고 대거리를 하고, 자신만의 정의를 부르짖는다. 이런 와중에 지반 또한 별 생각 없이 글을 올린 것이다. 자신이 sns에 글을 올리는 것이 분쟁의 탈을 쓴 오락이라고 생각하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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