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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Jan 27. 2022

외로움에 대한 책으로 외로움을 달랜다

[완독 일기/ 가재가 노래하는 곳]

가재가 노래하는 곳 / 살림

marsh : 습지(지대가 낮고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늘 축축한 땅)


저자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외로움에 대한 책이라고 했다.

외로움과 고립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나를 외롭지 않게 하고 고립되지 않게 한다.


내게 습지는 뭔가를 숨기고 있는 이미지로 떠오른다. 카야의 외로움이 사이프러스 나무 밑에, 스패니시 모스 사이에, 모래밭에, 보트 뱃전에 덕지덕지 묻어서 읽는 동안 여러 번 숨 고르기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야의 외로움을 먹고 자란 습지 생물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카야에게 미안할 만큼.


카야의 아픔은 심장에 칼이 꽂힌 채 살아가는 정도의 고통이 아닐까. 1부 마지막 장 ‘외로움은 점점 커져 카야가 품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는 문장을 읽고 심장이 벌렁거려 오랫동안 진정시켜야 했다. 카야가 돌아온 오빠 조디 품에 안겨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함께 오열했다. 결국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카야의 아버지, 체이스, 보안관, 카야를 마시걸이라고 부르며 멀리했던 사람들 말고, 카야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 심지어 자연마저도 채워주지 않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카야에게는 단어가 필요했다.

“단어가 이렇게 많은 의미를 품을 수 있는지 몰랐어. 문장이 이렇게 충만한 건지 몰랐어.”(131p)

테이트에게 글을 배운 후 카야의 세상은 얼마나 더 넓어졌는지.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을 카야는 시로 표현했다. A.H.

그러고 보면 테이트는 독자인 내게 애증의 존재다. 카야 곁에 머물러줘서 고마웠다가, 카야를 떠나서 증오했다가(인간 본성을 생각하면 테이트의 행동이 이해는 된다. 물론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종, 환경, 여성 등 다양한 화두를 던진다. 특히 421쪽의 변호사 톰의 변론은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나타낸다. 마시걸, 습지 쓰레기라는 카야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사실만을 바탕으로 판단해달라고 호소한다. 박수!


그리고 메이블과 점핑, 고마워요!

홀로 습지의 판잣집에 남은 6살 카야에게 사탕을 선물로 줘서. 점핑이 세상을 떠난 날 독자인 나도 카야와 함께 슬퍼하고 애도를 표했습니다. 천년만년 천국에 머무르길...


작가가 카야를 능동적인 캐릭터로 만든 것도 매력적이었다. 온갖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에 걸쳐서 버림받지만 그때마다 카야는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어떻게든 견뎌낸다. 채집하고, 생산하고, 교환하고, 배우고, 숨고, 심지어는 죽이고. 그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가 상당히 큰 책이다. 다만, 이 모든 일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직시하기보다는 큰 나무 뒤에 숨어서 지켜봐야 할 것만 같다. 아니면 흰머리독수리가 되어서 내려다보거나. 습지에서는 그래야 할 것 같다.


(아직까지) 나는 책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곰과 함께 100일 동안 동굴에서 지내라고 해도 책만 쌓아두고 지낼 수 있다면 OK. 카야의 현실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아무튼 카야에게 빅레드와 시가 있었다면 나에게는 책이 있다.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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