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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Jan 19. 2022

이렇게 품위 있는 돌려차기

[완독 일기 / 장면들]

 

장면들 / 창비

◎ 믿습니까믿습니다

저자가 그 책의 전부인 경우가 있다. 저자의 생각이 온전히 드러나는 책. 그 생각 안에 글쓴이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는 책.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면 각오가 필요하다. 책에 쓰인 텍스트가 모두 진실이라고 가정하는 것. 그건 저자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책을 읽을 때 ‘어디 얼마나 헛소리를 하나 두고 보겠어’라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가. 세상에 좋은 책이 차고 넘쳐서 평생 다 못 읽고 죽는 게 한인 마당에 그렇게 혀를 차가며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게다가 장면들마다 ‘이건 진짜인가?’ ‘이건 뻥인가?’ ‘이건 과장인가?’ 생각하며 책을 읽는 건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그래서 일단 읽을 책을 골랐다면 저자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는 뜻이다. 적어도 내게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독서 경험에 따르면 그 신뢰를 배반한 경우가 적지 않다(배반한 사람은 없고 나 혼자 배신당한 경우도 물론 있다). 이름을 적기에는 내 속이 너무 쓰리니 생략하겠다. 그래서 더 이 책을 손에 꽉 쥐고 놓지 못하고 있다.


저널리스트로서 손석희에 대한 믿음은 책을 읽는 데에도 큰 힘이 됐다. 나는 아직까지 세월호나 4.16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모든 종류의 텍스트를 읽으려면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필요하다. 슬픔, 안타까움, 분노 등 온갖 감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목차에서 '그 배, 세월호'를 보고도 같은 마음이었다. 마음을 단도리할 수 있게 도와준 건 저자에 대한 믿음이었다. 독자인 내가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책을 읽게 해 줄 거라는 믿음. 손석희의 힘은 그 믿음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 200일 동안 팽목항을 지키게 한 저널리즘어젠다키핑

이 책의 키워드는 ‘어젠다키핑’이다. 의제를 세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진실을 찾아가는 것에 대해 말한다. 비록 시청자가 피로감을 느껴 시청률이 떨어지더라도 필요하다면 꿋꿋하게 밀고 나간다. JTBC 뉴스가 200일 동안 팽목항을 지킨 것은 어젠다키핑의 대표적인 실천 사례다. 책에서는 세월호 참사 외에 국정농단 사건, 대통령 선거, 미투,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손석희와 JTBC는 2010년대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건을 ‘어젠다키핑’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관통했다.


특히 요즘처럼 개인 미디어가 활성화돼있는 시기에는 언론이 세팅한 어젠다가 각 개인의 이익이나 사견에 의해 사실과 다르게 전파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럴 때 정도를 걷는 언론이 할 일이 바로 중심을 잡는 것이다. 물론 그 방향은 진실을 향해 있어야 할 것이다.


◎ (저속한 표현이어서 죄송하지만)1타 4?

「장면들」을 읽으며 여러 번 감탄한 것은 하나의 문장 안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모두 담긴다는 것이다. 그것도 심장을 때리는 강력한 힘으로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289쪽 “언론은 담장 위를 걷는 존재들일지도 모른다. 진실과 거짓, 공정과 불공정, 견제와 옹호, 품위와 저열(低劣) 사이의 담장, 한 발만 잘못 디디면 자기부정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경고는 언제나 유효하다. 다만, 그 담장 위를 무사히 지나갔다 해도 그 걸음걸이가 당당한 것이었는지 아슬아슬한 것이었는지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터이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JTBC의 저널리즘은 ‘합리적 진보’라는 사고체계 안에서 작동한다고 했다. 그것을 실천하는 네 가지 원칙은 ‘사실, 공정, 균형, 품위’다. 이 네 가지 원칙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위에 인용한 문장에 모두 들어있다.


◎ 사심 가득한 돌아오라 손석희

어쩌다 보니 리뷰가 책 내용보다 저자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찬 것 같다. 어쩌랴, 원래 독서는 사심을 가득 담아 하는 행위 아닌가. 다시 서두의 믿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손석희는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고 노회찬 의원을 이렇게 표현했다. ‘노 의원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다.’

이 말에 동의하며 덧붙이자면 나는 저자 손석희에게도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쓴 이 글을 통해 앞과 끝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기대를 주었다.


‘돌아오라, 손석희!’ 저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조국 정국의 한가운데 검찰청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한 시위자가 들고 있던 피켓에 쓰인 말이다. JTBC가 조국의 편을 들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이 피켓에 쓰인 ‘돌아오다’와 내가 말하는 ‘돌아오다’는 의미는 다르지만, ‘내 편이 되어 달라’는 맥락에서는 같다고 할 수도 있다. (누구의 편이라는 게 언론인에게 얼마나 부적합한 말인지 알고 있다. 사심이니까 이해해주길)


요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세상이 시끄럽다. 진흙탕 속에서 뒹굴면서 서로 자기가 깨끗하다고 우기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수시로 화가 치솟고 심장이 벌렁벌렁한다. 이럴 때 동아줄이 필요하다. 나를 사실과 균형과 공정과 품위의 길로 안내해 줄 동아줄. 그런 의미에서 그가 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향해 이렇게 품위 있게 돌려차기 할 수 있는 언론인이 또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장면들 #손석희 #창비 #완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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