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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인형 Jan 21. 2022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야기

[완독 일기 / 조용한 희망]

조용한 희망 / 문학동네

이 책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야기’다. 그 사랑마저 없다면 삶을 견딜 수 없어서 그것을 꼭 움켜쥐고 나아가는 이야기다.


저자 스테파니는 가정폭력, 절대빈곤, 편견 등 온갖 고난의 한가운데 있는 싱글맘이다. 청소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고 학위를 따기 위해, 작가가 되고 싶어서 공부를 한다. 월세가 부족하면 주인집 청소를 대신해주는 것으로 협상을 한다. 정부에서 지원받은 식료품 구매권으로 아이에게 일반 우유 대신 유기농 우유를 사 먹여도 되는지 고민한다. 슈퍼마켓에서 식료품 구매권을 사용할 때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는 걸 느낀다. 자신의 세금으로 저 여자가 도대체 뭘 사 먹는지 궁금해하는 시선을 느낀다.


난방지원금 400달러를 지원받기 위해 전등 끄는 법에 대한 강의를 들어야 한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전기 아끼는 법도 모를 것이라고 간주하는 정부 지원 시스템에 모욕을 느낀다. 스테퍼니는 정부지원금을 받기 위해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식료품 구매권으로 음식을 사는 사람은 아이에게 근사한 옷을 입히면 안 된다. 극빈층은 극빈층답게 보여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화를 내지 않는다.


나는 아이의 다음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아이가 원하는 메뉴를 먹일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은 있다. 나는 아이의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는다. 무릎이 헤진 바지든, 소매에 얼룩이 묻은 티셔츠든, 고가의 옷이든, 저가의 옷이든 되는대로 입힌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잘 못 느낀다(느낄 필요가 없다).

나는 곰팡이가 피는 집에 살지 않는다. 아이의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에 아이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아이가 아프면 24시간 병원에 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누구에게나 권리가 되어야 한다. 나에게도 스테퍼니에게도. 「조용한 희망」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누구에게나 권리가 되어야 할 이런 일상을 가진 나는 혹시 권리를 권력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했다.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는 나는 참담한 생존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을 때마다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고민을 한다. ‘이 사람 참 딱하네’ 이런 생각으로 독서를 끝낼 수는 없으니까.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며 나의 안락함을 확인하는 것이 독서의 목적이 되면 안 되니까. 


이 책의 마지막 쪽을 아이와 함께 한 제주 여행 중에 읽었다.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 위에서. 먼지 하나 없는 숙소의 대리석 바닥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상상한다. 그 누군가에는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런 모든 생각들이 사실 조금 두렵다.


스테파니는 자신이 청소하는 고객의 집에 슬픔의 집, 광대의 집 등 이름을 붙여주었다. 스테파니의 집에는 ‘작가의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 쓰는 행위는 매 순간 비명이 터져 나오는 그의 삶에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결국 그는 작가가 됐다.


제주 협재 바다를 바라보며 스테파니에게는 없고 나에게는 있는 많은 것들, 하지만 나에게는 없고 스테파니에게는 있는 것을 생각한다.


#조용한희망 #스테퍼니랜드 #문학동네 #완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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