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야, 왜 그래? 괜찮아? 아파?”
“며, 명주야......콜록, 콜록. 흐흑...... 같이 가자. 어머님, 콜록콜록, 흐흐흑......한테.”
“어, 그, 그래. 많이 다치신 것 같지는 않아. 근데 너 괜찮아? 우리 택시타고 가자.”
“아니야, 아니야. 콜록콜록. 나도 갈거야. 씁, 후...... 이, 이제 괜찮아. 거의 다 왔으니까 빨리 가자.”
선재와 명주는 함께 영동병원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선재는 흐르는 눈물을 명주 몰래 계속 닦았다. 응급실 한쪽에 어르신 손을 꼭 잡고 있는 주연이 이모가 눈에 들어왔다. 선재는 마침 입원실에 호출되어 만날 수 없는 근영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만 전송해둔다.
“엄마, 엄마 어떻게 된 일이야?”
“아이고, 따님 왔으요? 어르신이 순식간에 죽을 엎어부렀어요. 다행히 깊은 상처는 아닌디, 흉터는 남을 것 같다고 허네요. 아고 나 증말 깜짝 놀라갖고 심장 벌렁거려 죽겄당께. 이? 선재야! 너도 와 부렀냐?”
“엄마, 어디 나갈라고 했어? 어디 갈라고?”
“으, 으응. 명주 왔구나. 내가 널 두고 어디를 가.”
“엄마. 놀랐잖아. 다행히 많이 안 다쳤데. 다신 선생님 안 볼 때 어디 가려고 하지마. 알았지? 선생님, 빨리 조치해주셔서 감사해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감사는 뭘. 근디 선재는 어쩌게 여그를 왔냐? 이모 심장 찾으러 와부렀냐?”
“선재?......”
때마침 정신이 돌아온 현정은 눈을 크게 떴다.
“선재가 왔어? 어떻게 알고?”
“아줌마. 저 선재에요. 절 기억하세요?”
“오, 선재야. 그럼, 당연하지. 우리 선재 더 예뻐졌구나. 어떻게 된거야?”
“엄마, 선재 기억나?”
“응, 그럼. 언니도 김치볶음밥 좋아해? 나랑 김치사러 갈까요? 정말 예쁜 언니들이네.”
갑자기 다른 말을 하는 현정의 천진한 얼굴을 계속 마주하기가 당황스러웠던 선재는 차마 고개를 돌려버렸다. 참고 있던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그리고 어리둥절해 있던 주연이 이모를 데리고 잠시 밖에 나왔다.
“이모.”
“아니 니가 어쩌게 어르신을 안다냐?”
“이모, 전에 내가 말했던 그 친구 있었지? 아줌마랑.”
“이, 너 휴게소 오기 전에 도와줬다던?”
“그 친구랑, 어머님이야.”
“뭣이여? 아이고...... 그런 고마운 분들을 못 알아봤네이. 쩌그 모녀를 내가 몇 년을 봤는디. 사람들이 차분하니 좋긴 혔어.”
“다들 막연히 잘 지내고 있을거라고, 내 맘대로 생각했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는데도 모르고...... 내가 잘되면 언젠가 갚으리라 다짐했는데 나 살기 바쁘다고 내가 너무 늦었나봐. 저 밝고 좋으셨던 분이 치매라니. 이모, 세상이 어쩜 이래.”
“세상은 원래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제. 이제라도 알게 되아서 다행 아니여. 안 늦었어.”
응급실 안에서 명주가 연보라색 양산을 손에 들고 나온다.
“어머님은?”
“잠들었어.”
“어르신 옆에 내가 있을랑께, 둘이 얘기혀.”
주연은 둘에게 시간을 주려고 다시 들어간다.
“고마워, 선재야. 우리 엄마 보고 놀랐지? 사실 나 남편도 죽고 엄마도 저렇게 되고 조금...... 힘들었어. 혼자서 어린 자식이랑 치매노인 돌보는게 만만치가 않더라고. 후후.”
“그랬구나. 고생 많았네. 내가 미리 연락 못 해서 미안해.”
“아니야. 별 소릴 다 한다. 엄마는 *우아한 치매 라서 그래도 괜찮았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당황했어. 항상 니가 사준 이 양산, 이거 들고 하루종일 앉아만 있거든.”
“아, 이걸 여태 갖고 계시네.”
“응. 우리가 그 동네로 이사를 오고, 너를 알게 되고, 우리의 생활에도 생기가 돌았었어. 아빠없이 여러 일 겪으면서 어쩌면 몇 년 무기력하게 살아온 우리 모녀에게, 너라는 존재는 조용한 기쁨을 줬어.”
“난 피해만 주고 왔다고 생각했어. 사실 궁금해도 연락할 용기도 안 났고.”
“무슨 소리야. 우린 네가 있어서 그때 정말 행복했어. 우리 엄마 사실, 나 학교가면 몰래 우울증 약 먹고 있었거든. 평소에 잠도 잘 못 자고. 엄마는 내가 모르는 줄 알았겠지. 아빠가 오랫동안 아파서 돌아가시고 나서, 살던 아파트에서도 주민들 등쌀에 사람들에게 실망도 하고, 나도 사고가 있어서 학교를 못 다니다가 이 동네로 이사왔었던 거였어. 그런데 새로운 니가 우리 앞에 나타나 준거지. 니가 이 양산하고 편지 놓고 가버린 날, 우린 정말 슬펐어. 저렇게 정신없는 엄마지만, 너랑 먹었던 김치볶음밥이나 그 시절의 시간은 뭔가 기억이 남아있는지 눈빛이 초롱초롱해지셔. 엄마한테도 즐거운 기억이었나봐.”
* 우아한 치매 : 평소 자신의 행동습관이나 사고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치매에 걸리더라도 이상행동을 하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실제로 치매 환자들 중에는 인지기능장애는 심하지만 원래 지니고 있던 품위나 위엄을 유지하는 우아한 치매 환자들이 있다.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소식지 참고
선재는 스스로 세상에 없어야 할 쓸모없는 존재라고, 나무에 빌붙은 버섯보다 못한 존재라고, 비틀린 집 앞 벚꽃나무보다 못한 존재라고 여겼었다. 바퀴벌레를 잡을 수 있다는 이유로 명주에게서 놀라움과 칭찬을 들었던 순간에는 당황도 했지만, 난생처음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 된 것 처럼 느껴졌었다. 명주와 현정은, 선재의 교복에 배어있는 지하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엄마의 담배냄새, 그런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고 온전히 선재 그 자체만을 봐주었던 사람들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기원이었다.
“어디야? 차도 없네?”
“잠깐 나왔어. 장본건 배달로 좀 넣어줘. 미안.”
“알았어. 그럼 조금 이따 거기서 만나. 사랑해.”
“응, 나도.”
기원과의 통화에 괜히 미안해진 선재는 전화를 급히 끊었다. 명주는 그런 선재를 기특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친구? 이선재 얌전해가지고 할 거 다 하네~! 하하하하.”
“어, 어. 하하하. 나이가 있으니까.”
“바쁜가본데, 얼른 가봐. 데려다줘서 고마워.”
선재는 잠자코 명주의 손에 있던 핸드폰을 가져와 자신의 전화번호를 찍는다.
“전화해. 다시 만나서 정말 기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