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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Sep 25. 2023

26 이번 순서는

 

 근영은 남모르게 바빴다. 아버지가 나이에 비해 이른 치매로 인해 마음고생을 했었기에 치매전문병원 개원이 꿈인 근영은 틈틈이 치매 관련 논문을 뒤져보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    

  

 2주 전, 친한 동기 선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이모가 돌보신다던, 60도 안된 나이에 치매라고 하는 어르신이 발을 데여 오신다고 했다. 근영은 응급실에 미리 얘기해두었다. 지난 날 자신의 아버지가 오버랩 되었다. 간단한 입원실 호출을 마치고, 보던 논문을 마저 봐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방으로 올라왔다. 관련 논문을 뒤적거리고 있었던 근영에게 무슨 일인지 선재 역시 병원에 왔다고 문자가 온다.     

 

 ‘건너 아는 어르신이라고 했는데, 왜 온거지?’     

 근영은 보던 논문을 마저 확인한 후, 선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재야, 너 여기 왔어?”

 “어? 야, 너 호출이라며?”

 “별일 아니어서 바로 내려왔어. 휴게실에서 잠깐 볼래?”

 “그래, 바로 올라갈게.”


 근영과 선재는 대학 시절, 비슷한 가정환경으로 친하게 지냈다. 선재는 부모없이 주연이 이모와, 근영은 치매에 걸린 아빠, 할머니와. 둘다 단촐한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선재는 부모가 없었지만 주연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고, 근영은 가족이 있었지만 스스로 학비를 벌어 어렵게 학업을 이어나갔다. 선재와 주연은 텅 빈 한 구석이 존재했기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근영의 치매전문병원 개원준비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선재였다.     

 “선재! 오랜만이네. 너 요즘 바쁜가보다.”

 “바쁘긴 뭘. 병원 경영 쉽지 않더라.”

 “그치. 나도 걱정이다.”

 “너는 근성이 있잖아.”

 “근성하면 너도 만만치 않지. 너 진짜 생각 없어?”

 “하...... 그러게. 오늘 오신 어르신 뵈니까 조금은 생각이 바뀌려고 해.”

 “진짜?”

 “응. 아까 그 어르신 있잖아. 여태 몰랐는데, 나 고등학교 때 도움 많이 주신 친구 어머님이더라고. 나 진짜 그 때 비루했거든...... 신세를 많이 져서 나중에 꼭 갚아야지 했는데, 가까이에서 치매를 앓고 계실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

 “그래서 같이 왔구나. 특별한 친구였나봐?”

 “응. 그 친구랑 아줌마 덕분에 다시 태어났다고 느낄 정도?”

 “오.”

 “아줌마 돕고 싶어졌어.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고 싶다.”

 “그럼 생각해보고, 이번주까지 알려줘. 니가 합류해주면 난 진짜 든든하지!”

 “그래. 너 또 호출온다. 얼른 가봐.”

 “어~ 전화해!”     


 선재는 뛰어가는 근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근영은 졸업 후부터 줄곧 선재에게 치매전문 병원 개원의 꿈을 이야기했었다. 학교 때 근영의 아빠가 치매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저렇게 진심일 줄은 몰랐다. 꿈을 위해 차곡차곡 준비하는 근영이 멋있었다. 선재는 치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근영의 꿈을 응원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명주와 현정이 치매와 함께 선재 앞에 나타났다. 선재는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관심없던 치매라는 질병은 갑자기 선재의 두 눈 앞에 등장하여 선재를 흔들고 있었다. 선재는 천진하게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던 현정의 눈빛과 표정이 생각나 고개를 저었다. 아줌마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자신이 무언가에 홀렸던가, 꿈을 꾸고 있다던가. 둘다 아니었으니, 우리가 서로를 돕고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이번 순서는 자신이지 아닐까, 선재는 생각했다.    

  

 선재는 그날 이후 명주와 현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리 긴 고민의 시간없이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선재는 근영의 번호를 눌렀다.      




 “야~! 축하해! 드디어 해냈구나!”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못 했지.”

 “우리 열심히 해보자. 근영아, 너 진짜 멋있다!”     


 차분하고 경쾌한 클래식이 흐르는 병원의 로비 한쪽에는, 아기자기한 케이터링과 꽃장식들이 있었다. 음악소리가 조금 잦아들고 사회자가 작은 무대위로 오르자, 와인을 든 사람들은 곧 앞을 보았다.     


 “자, 오늘 이 지역 최초 치매 전문 병원, 선한 뿌리 병원의 오픈식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공동 병원장인 유근영, 이선재 원장님을 소개합니다. 우렁찬 축하의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근영과 선재가 무대에 오르고, 사람들은 환호와 박수를 치며 두 사람을 반기었다. 근영과 선재는 손을 맞잡고 서로를 보며 웃었다. 사회자에게서 마이크를 건네받은 선재는 근영에게 다시 마이크를 넘겼다.     


 “감사합니다. 저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치매 전문 병원 개원의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지역사회의 모든 치매인과 보호자분, 그 분들 어깨의 짐을 나누어지며 웃음을 되돌려드리는 참병원의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재는 여전히 연보라색 양산을 쓴 채 자신을 바라보는 로비 오른쪽 구석의 현정과 뭉클한 표정의 명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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