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바라중독자 Nov 27. 2023

7 엄마의 자리

    

 정례는 고민에 빠졌다. 이번에는 진짜라고 벌써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른다. 마트는 잘되고 있었다. 이미 돈은 죽을 때까지 일을 안해도 될만큼 벌었다. 자식도 하나뿐이라 어차피 쓸데도 없었다. 그래도 달라는 대로 계속 주면 안될 것 같았다. 돈버는데는 소질이 있었지만 자식키우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고 느낀다. 뭐가 맞는건지, 아직도 하나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퓨전분식집을 차려보겠다길래 못 미더웠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보겠다는게 기특하여 선뜻 돈을 내주었더랬다. 잔소리를 하면 그나마도 안 한다고 할까봐 꾹 참았다. 그런데 예상대로였다. 아들은 가게에 붙어 있지를 않았다. 그저 주방아줌마와 아르바이트생에게 모두 맡겨버리고 자신은 놀기 바빠 가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결과는 뻔했다.     


 두 번째는 아는 형이 가수들 앨범내주는 사업을 같이 하자고 했다며 뜬구름같은 소리를 해댔다. 정례는 들을 것도 없이 사기라는 것을 알았다. 한번 실패했기에, 이번에는 정신을 좀 차렸으면 하는 마음에 몇마디했더니, 몇 달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영석은 정례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정례의 속은 타들어갔다.     


 6달만에 갑자기 집에 돌아온 영석은 말끔한 모습이었다. 친한 동생이랑 사업을 하게 됐는데 우선 그 동생 자본으로 이득을 꽤 봤다는 것이다. 꽤나 비싸보이는 수트에 스포츠카를 몰고 왔다. 동생 자본금을 갚아야하니 돈을 달라고 했다. 정례는 한숨만 나왔다. 미친놈아, 너 또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녔어, 다그쳤다. 영석의 나이는 이미 30이 넘어가고 있었다.      


 “영석아, 엄마가 부탁할게. 진짜 속 좀 차려.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야.”

 “엄마, 왜 나를 못 믿어. 내가 사업 잘 해서 이득 봤다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니가 뭘 해서 큰 돈을 벌어? 누가 너 돈 벌으라고 준비하고 있다냐?”

 “아, 그런게 있다니까 그러네. 말하긴 좀 길어. 엄마는 말해도 모르고.”

 “뭘 몰라, 이놈아. 평생을 사업한 엄마가 모르겠냐? 얼른 발빼라.”

 “아, 진짜, 씨발, 엄마 왜 그래 진짜! 엄마가 언제 내 얘기 제대로 들어준 적이나 있어? 뭐 하나 잘했다고 칭찬해준 적 있냐고! 맨날 바쁘다고 한 번 안아준 적도 없었으면서!”

 “그렇게 살았으니까 니가 안 굶고 있지! 이 싸가지 없는 놈아! 내가 너 갓난이 때부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니가 알어?”

 “아아!!! 씨발, 몰라, 몰라,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게 누가 나를 낳으랬어? 왜 낳아놓고 나한테 힘든거 알아달라는데? 누가 낳으랬냐고!!”     


 정례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이 새끼 입으로 고깃덩어리 하나 집어넣자고 잠도 못 자고 새벽부터 일했건만 돌아오는 말이 저런것이라니. 모든게 허무해졌다.      


 “......그래. 다 가져가라. 다 가져라. 애미 팔아서 다 너 해, 이 싸가지 없는 새끼야.”

 “어딨어. 엄마 통장이랑. 금고 번호 뭐야.”

 “에휴......”

 “금고 번호 뭐냐고!”     


 영석은 한숨과 함께 울고 있는 정례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안방으로 가서 금고에 자신의 생일을 눌러 본다. 한번에 열린다. 영석은 약간의 당황과 미안함을 느꼈지만 그런 감정은 단 1초도 유지되지 않는다. 금고속에 있던 현금과 금, 그리고 통장까지 알뜰히 챙긴다.      

 “엄마, 나 원망하지 마. 엄마가 나를 이렇게 키운거야. 이게 다 기원이 아저씨 때문이라고. 이름도 모르는 등신 아저씨랑 기원이 새끼 때문이라고. 엄마가 한 번이라도 나를 봐줬으면 좋았잖아.”     

 영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가버린다. 정례는 무력하게 앉아 중얼거린다.      

 “뭣을 한다고 내가. 돈을 뭐한다고 벌어. 아무 의미없는거. 썩을 놈의 새끼. 그래 오지마라, 오지마. 영영 오지마.”          





      

 “사, 사장님.”

 “어, 왔어.”

 “그, 말씀드릴 것이 있는데요.”

 “뭔데?”

 “여, 영석이요. 결혼해서 딸, 아들 낳고 겨, 경상도 쪽에서 살고 있답니다.”

 “듣고 싶지 않아.”

 “구, 궁금해 하시는 것 알아요. 사장님, 자, 자식인데 어떻게 안 궁금하시겠어요. 기원이가 거래처랑 얘기하다가 건너 거, 건너서 알게 됐데요.”

 “......”

 “조그만 철물점 하, 하고 있데요. 여기, 전화번호에요.”

 “......”

 “......오늘자 물량만 체크하고 서, 서류작업 해둘께요. 오늘은 이, 일찍 들어가세요.”

 “그래.”     


 기원이 아빠가 나가고 나서 정례는 눈물을 훔쳤다. 아무리 미워도 자식이었다. 모르는 사이 손주들까지 생겼다니. 망나니인 줄만 알았는데 가정까지 꾸리고 있었다니. 정례는 기원이 아빠가 놓고간 철물점의 번호가 적힌 종이를 들어 한참을 바라 보았다. 그래도 가져간 돈을 다 잃지는 않았나보네, 약간의 안심도 되었다.      


 며칠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임에도 정례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쩐지 아들 영석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요.”

 “......”

 “......”

 “......”

 “......영석이냐?”

 “......엄마.”

 “흐흐흑, 흐흑...... 영석아, 이 자식아.”

 “......”

 “왜 전화했어, 이제와서. 알아서 잘 살 것이지. 흐흐흑......”

 “기원이가 나 있는데 알아봤다고 들었어. 나 잘 있으니까 걱정말라고 전화했어.”

 “잠깐, 잠깐 끊지 마라. 너 결혼했냐?”

 “......엄마. 나 철물점 한다고 들었지? 잘 되긴 하는데. 나도 엄마처럼 사업 확장하고 싶어.”

 “사업 확장?”

 “어. 근데 애들 키우고 하느라 돈이 부족한데 엄마가 좀 해줄 수 있어?”

 “뭐?”

 “오랜만에 전화해서 이런 말 해서 미안해요. 근데 기댈 사람이 엄마 밖에 없어.”

 “전화 끊자. 다시는 연락도 하지 마라.”

 “엄마, 엄ㅁ......”     


 정례는 전화를 끊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울었다. 엄마가 그리워 전화한 줄 알았는데 십수 년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또 돈 달라는 소리라니. 내가 자식한테 돈줄, 그 이상은 아니었던가 하는 마음에 정례는 가슴이 쓰렸다. 그날 저녁, 누군가 정례의 집에 들어왔다. 정례는 선잠이 들어 있었고, 익숙한 발자국 소리에 눈을 뜬 채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누워 발자국 소리를 듣기만 했다. 삐빅삑, 금고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랍이 열렸다 닫혔다. 종이들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발자국은 다시 멀어졌다. 문이 닫혔다. 정례와 함께 누운 침묵의 밤은 도둑이 누군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정례는 밤새 소리없이 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6 기원과 영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