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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Dec 04. 2023

8 꺾인 것은

        

 센터장은 날짜가 다가올수록 조급했다. 유정례 할머니를 어떻게 하나. 가진게 없는 어르신을 돈이 없다고 길거리로 내몰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집세고, 괴팍한 성격에 누구 하나 담당하려고 하지 않았었다. 다행히 주연이 나서서 맡겠다고 하여 한시름 놓았었는데 또 다른 문제가 목전에 있었다.    

  

 미납금 지불을 위해 보호자를 찾았었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수년전 이미 유명을 달리했던 터였다. 가족들도 있었다고 하나, 이혼하여 혼자 산지 오래되었던 것 같았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유할머니에게 명확히 알려야 했지만 말할 기회를 여러번 놓치곤 했다. 초기 치매 판정을 받았던 유정례 할머니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 얘기에는 우리 잘난 아들이라며  딴소리만 했더랬다. 그러는 동안 공격적이고 흥분을 잘 하는 방향으로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여보세요? 아, 네, 네. 선생님. 아이구, 안녕하세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네, 네. 염치없지만 부탁을 좀 드렸습니다. 네. 아, 정말이세요? 감사합니다. 어르신 때문에 정말 막막했었거든요. 네. 그건 제가 어르신을 반드시 설득하겠습니다. 제가 주연쌤 덕을 많이 보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바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휴우......     


 센터장은 깊고 긴 한숨을 쉬었다. 선재의 전화를 받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전화가 종료될 때까지 굽신거렸다. 신약 치료 실험에 참가하는 대신, 선재네 병원에 침상을 하나 내어줄 수 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어르신은 조금 답답하겠지만, 치료도 받고 어쨌거나 거주문제도 당분간은 해결이 되었으니. 유정례 할머니를 설득하는 일은 주연에게 한번더 부탁하기로 했다. 주연은 정례할머니를 달래기도 하고 질책도 하고 투닥거리며 잘 모시고 다녔다. 


 “어르신, 이해하셨죠? 인자 거그 말 잘 들어야 한당께요.”

 “나 안 아프다고오. 니들이 뭔디 나보고 병원에 가라고 혀!”

 “씁. 어르신! 나랑 내내 얘기했잖여요. 안돼, 인자. 가얀다고. 내 말 들어요.”

 “내 돈이나 내놔!”

 “또 돈타령하시네이. 어르신 갈데가 없다고.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자식도 없다고. 여그서 그나마 치료도 해주고 좋은 조건으로 있게 해준다잖여.”

 “내가 왜 자식이 없어!”

 “아신담서, 아들 없는거.”

 “우리 아들이 왜 없어!”

 “아이고, 기억 없으신갑네...... 여기 있으면 아드님 온데요.”

 “영석이가 일로 온다고?”

 “이. 온데. 그니까 언넘 들어가요.”

 “영석이한티 전화번호 잘 일러줘. 나 보고싶을거인디. 집 나간지 오래됐어.”     

 아들 얘기에 한층 누그러진 정례할머니는 잠자코 입원실로 들어간다. 주연은 입원실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근디, 내 돈은 어디다 놨어!”

 “여그 있어요. 여그. 아이고, 안녕하세요? 저, 우리 어르신이 쪼까 목소리도 크시고 혀서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 죄송해요.”

 “뭣이 죄송혀! 내 돈이나 내놓으라고!”     

 주연은 정례를 밀며 들다시피하여 침대로 안내한다.

 “한숨 주무셔. 언넘.”     






 “어머나! 이게 뭐야!”

 “아이고 내 꽃 누가 분질러 놨어!”

 “어머어머! 세상에. 누가 이랬데!”     


 어느 일요일 아침, 입원실은 어수선했다. 어르신들의 사랑초가 모두 깎은 잔디처럼 잘려나가 있었다. 입원실의 어르신들은 놀라고 기가 찼으며, 실망했다. 상처난 화분을 안고 병원복 소매로 눈물을 찔끔 찍어내는 어르신도 있었다. 이런 소동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왼쪽 침대 한 구석에 요지부동하게 누워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은 바로 정례였다.


 이파리고 꽃이고 잘려나간 줄기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벌써 스스로 상처를 닫고 말라가는 부분도 있었다. 의심되는 사람은 있었다. 아직도 저쪽에서 자고 있는 유정례 할머니, 어제 아침에 들어왔는데 바로 저렇게 되었다는 것은 정례가 의심받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진짜 저 할머니가 그랬으까?”

 “어제 입원하면서도 엄청 시끄러웠잖아. 계속 그 덩치 크신 분한테 돈 어딨냐고 그러고. 좀 심술궂게 행동하긴 하더라고. 자식같지는 않던데.”

 “무슨 심사가 뒤틀려서 그러셨데.”

 “치매노인이라 그런거겠지, 뭐. 우리랑 같은 처지 아니겠어.”

 보호자들은 정례의 뒷모습을 보며 속닥거리다가 한 보호자가 정례에게 말을 건다.

 “흠, 흠. 저기, 어르신. 주무세요? 어르신은 뭐 없어지거나 다치신데 없으세요? 누가 화분을 다 잘라놔서요.”

 “......”     


 정례는 아까부터 잠이 깨어있었지만 벽을 향해 누운 채 모른척했다. 보호자들은 각자의 부모를 챙기느라 금새 흩어졌다. 울고 있는 어머니를 달래며 안아주는 딸의 소리, 우리 아부지 이거 열심히 키웠는데 어떡한데요, 하는 안타까움의 소리, 괜찮다고 산책하고 간식먹으러 가자고 하는 어느 아들의 소리, 화분을 수거하는 간호사들의 발소리......     


 모든 소리를 듣고 있던 이불 속 정례의 손에는 초록의 진물이 묻은 가위가 들려있었다. 정례는 다른 집 자식들의 염려하는 소리에 더욱 외로움을 느꼈다. 어제 정례가 이 곳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건, 아들의 도움으로 사랑초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 다른 늙은이의 모습이었다.      


 ‘나도 아들이 있고마는. 나도 있다고.’     

 그 다정한 모습에 정례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고 복도 간호사 책상에 꽂혀있던 가위를 몰래 챙겨왔다. 저 화분이 뭣이간디, 다들 애지중지하며 다정하게 대화하는 모습에 정례는 질투가 났다.      

 ‘누구는 자식없나, 누구는 돈 없냐고.’     


 정례는 모두가 잠들어 있던 새벽에 화분 앞으로 가서 줄기들을 잘랐다. 이게 뭣이간디. 다들 이것을 보고 히히덕거려. 다 없애버릴 참이여.


 열심히 화분을 자르고 있던 정례를 누군가가 톡톡 친다. 정례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본다.      

 “뭐, 뭐여?”

 “어르신, 뭐 하세요. 그러지 마세요.”

 “니가 누군디 뭔 상관여?”

 현정은 정례의 손에 들린 가위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연다.      

 “이 화분, 치료에 쓰는거에요. 어르신이 그렇게 하시면 다들 실망하세요.”

 “실망을 하든 말든 나하고 상관없잖여. 가.”

 “저도 여기 환자에요. 여기서 치료하고 많이 좋아졌어요. 어르신도 좋아지실거에...”

 “내가 환자간디? 나는 환자가 아니여! 담당자가 부탁해갖고 내가 여기 있어주는 것이지, 나는 정상이여. 니들하고 다르다고. 나도 아들 있어. 나도 자식있다고오.”

 “......알겠어요. 어르신.”


 현정은 계속해서 화분의 줄기를 자르는 정례의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자신의 입원실로 돌아갔다. 계속 말해봤자 들으실 것 같지도 않고, 간호사에게 얘기하면 소란스러워질 것이 뻔하여, 그냥 두었다. 저 어르신에게 꺾인 것은 꽃과 줄기가 아니라 마음인 것 같았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갑자기 화분과는 상관없는 자식얘기를 꺼내는 것일까.     


 새벽 4시 반, 누군가는 하루를 설계할 시간이고, 누군가는 곤히 잠들어 고요함이 깃들어야할 시간이나 병원은 여전히 밝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현정은 어젯밤 잠을 잘 수 없었다. 곧 병원을 나간다는 생각에 잠에 들 수가 없었다. 거의 밤을 새고 이 새벽에 운동삼아 병원 복도를 거닐다가 수상한 모습의 정례를 발견했던 것이다.     


 현정은 침대에 기대어 앉아 안경을 쓰고 책을 폈다. 창문 밖은 아직 어스름하나, 새로운 아침의 입김을 내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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