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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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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Feb 13. 2023

1 선재의 집

● [버섯]은 소설입니다. 글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지명, 배경 등은 허구이므로 실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주 1회 업데이트됩니다.








          

 지겨워. 거지 같은 집구석. 짜라랑 집어던지는 소리들, 바보 같은 여자의 짐승 같은 울음소리.


 햇살 한 줄기 들지 않아 습기가 가득한 손바닥만 한 거실. 먼지 낀 짐짝 앞에 쭈그려 앉아 곰팡이가 들어앉은 누런 벽지에 며칠은 감지 않은 기름진 머리칼을 기대고, 개진개진 눈곱 낀 눈에 광대가 튀어나온 검은 얼굴로 담배를 피워대는 여자는 세 달 만에 들어온 남편을 힐긋 쳐다본다.

 말썽 부린 후 주인의 눈치를 보는 개처럼.

 

 "뭘 봐. 이씨. 쫘악!"

 남자는 맥락 없이 여자를 때린다. 여자는 다른 쪽 벽에 머리를 부딪친다.


 힘없이 늘어진 손, 저 볼품없이 말라빠진 손가락.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 본 적도, 어느 곳인가에 꼭꼭 숨겨지거나 과거의 한때에는 그 모습을 드러냈을 미모를 유지하고자 노력을 시도해 본 적도 없을 것 같은 무심한 육체는, 영양분 없는 피가 흐르는 머리를 만지며 아무런 저항 없이 몸을 웅크린다.  남자가 던진 낡은 플라스틱 그릇 하나가 여자를 지나 벽에 부딪치며  깨져 나뒹군다.


 선재아빠는 세 달을 꼬박 일하고 번 돈을 도박장에 가서 거의 다 잃는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몇 푼 되지도 않는 남은 돈을 주머니에 대충 구겨 넣고 집에 돌아온다. 돈을 잃은 분풀이를, 살림살이를 집어던지거나 아내를 이유 없이 때리는 일로 대신하는 것이다. 이런 날마다 선재는 발작적인 기침을 하며 귀를 막고 생각한다. 다 없애고 싶다. 엄마가 맞는 소리, 물건들이 낙하하며 깨지는 소리. 뇌가 박동하다가 터져버릴 것 같아. 저런 유전자가 내 몸속에 박혀있으니 저런 모든 모습이 나겠지. 맞는 것도, 때리는 것도, 그 소리를 지겨워하는 진짜 나도.


 의욕도 없고, 돈도 없고, 담배나 피우고 술이나 마시고. 열등감에 제 가족에게 주먹이나 날려대는, 나도 저런 인간일 것이다. 언젠가 내가 구석에 몰리는 날, 아빠가 나에게서 튀어나올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오십 살이 되면 생기를 잃은 엄마를 뒤따라 울컥울컥 토해내겠지. 역겨운 신세 한탄에 더 나아질 가능성조차 스스로 바싹 말려버린 엄마처럼 나도 저렇게 구석에서 담배나 피우고 있을 거야. 생각만 해도 배꼽에서부터 구토가 올라온다. 내가 저들의 모습이 된다면 난 그냥 죽어버릴 거야, 끔찍한 생각의 끝에 선재는 혼자 조그맣게 웅얼거린다.


 새벽 4시 반, 누군가는 하루를 설계할 시간이고, 누군가는 곤히 잠들어 있을 이 고요의 한가운데 물에 젖은 솜 같은 선재는 어젯밤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집이랍시고 존재하는 이곳에서의 새벽 4시 반은,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지난밤 자식 앞에 폭력과 고함으로, 되직하고 세찬 가난과 열등을 뿌려놓았기 때문이다. 희망찬 하루의 계획표도,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는 평범한 따뜻함도 이곳엔 없다. 잠 못 든 자식은 이불도 펼치지 않은 채 얇은 유리창 밖 속 모르고 예쁘게도 내리는 눈결정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선재의 집은 아빠가 술과 도박에 빠지기 전, 젊은 시절 구매했던 집이다. 선재네는 지금껏 한 번도 이사를 하지 않고 줄곧 이곳에서 살고 있는 중이다. 집에 에어컨도 없고, 밥통도 녹슨 채 굴러다닌다. 있는 거라곤 사용하지 않는 낡은 세간이나 눅눅한 이불, 바퀴벌레, 오늘내일하는 텔레비전뿐이다. 쓸모를 잃고 쌓인 짐들 때문에 온전히 몸을 뻗어 누울 수도 없다.


 선재엄마는 한 번도 일해본 적이 없고, 집에서 밥을 해 먹은 적도 없는 듯 보인다. 선재네 주식은 라면이었으며 그나마도 먹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학교에 가면 선재는 하루 한 끼를 먹을 수 있지만 방학에는 학교에 갈 수 없어 항상 배가 고팠다. 엄마는 요리를 하지 않았고 가끔 아빠가 어쩌다 도박하고 남은 돈을 가져오면 그 돈으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하루이틀 만에 탕진해 버렸다. 선재엄마의 주수입원은 교회의 갈색의 헌금 바구니였다.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동안 헌금바구니가 옆으로 넘겨지면, 선재엄마는 요령껏 돈을 빼냈다.     


 술에 취한 아저씨들이 담벼락에 오줌을 갈기는 골목 끝에 위치한 11평의 반지하 빌라는, 거실인지 부엌인지 모를 공간과 문을 닫는다고 해서 그다지 안정을 가져다주지 않는 매정한 한 개의 방으로 된 우울함의 동굴이었다. 선재는 자신의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일을 해보려는 작은 노력이라도 한다면 덜 수 있는 가난을 기어코 잔뜩 짊어진 신체건강한 부모는 이 좁은 집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이 지겨운 가난을 극복해 보려는 의지조차 없었다. 어릴 땐 선재도 몰랐다.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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