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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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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Feb 20. 2023

2 만남

● [버섯]은 소설입니다. 글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 장소, 지명, 배경 등은 허구이므로 실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주 1회 업데이트됩니다.






 선재아빠는 집에서 자고 있었다. 일하다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한달만에 집에 오게 되었는데, 이번엔 도박 대신 병원비로 번 돈을 다 쓰고 있는 중이었다. 도박을 못 하는 선재아빠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선재엄마에게 갔다.


 선재는 학교를 가는 척 집을 나서서 동네를 무작정 걷는다. 학교는 며칠 째 가지 않았다. 선재엄마는 선재가 학교에 가지 않아도 혼내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관심이 없다. 담임선생님이 누군지, 선재가 몇학년 몇반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친한 친구는 누구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건 담임선생님도, 같은 반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집안 형편은 어떤지, 선재가 누구인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집 앞 골목을 나오면 콘크리트 사이로 비집고 나온 벚꽃나무가 한 그루 있다. 선재는 혼자만 건물 틈에 꾸역꾸역 끼어있는 나무를 가끔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선재는 생각한다. 왜 이 나무는 큰 도로의 뻗을대로 뻗은 벚꽃나무들처럼 편하게 자라지 못했을까. 그래도 한참을 비뚤어진 이 나무에서 철마다 꽃이 피고, 바람에 꽃들이 눈처럼 떨어질 때만큼 예쁜 건 없었다. 큰 도로의 벚꽃나무와 같이 풍성하지는 않지만 선재는 이 볼품없는 나무의 몇 개 안되는 꽃들이 제 할 일을 하는 모습이 예뻤다.


 그 나무 밑둥 근처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버섯들도 몇 개 붙어있다. 못생기고 칙칙한 색깔인 것은 주로 독버섯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 버섯은 나쁜 버섯은 아닌가보다. 저런 보잘 것 없는 버섯마저 관심을 받는데......하고 선재는 생각한다.     


 ‘저 버섯은 누군가가 자기를 쳐다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알까? 혹시......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까?...... 내 유전자에 새겨진 아빠 엄마를 지우고, 이상한 나무에 부득부득 태어나 그것과는 상관없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라고 있는 저 버섯처럼 되려면 나는 뭘 해야 하지?’      


 아침 10시다. 춥다. 선재는 친구하나 없는 학교를 가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처럼 담배를 피우는 것도 싫고, 다른 애들 돈을 뺏거나 하는 말썽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며칠 학교에 안 가는 것도 말썽인가, 생각해본다. 부모님처럼 살 바에는 죽어버리기로 했으니까. 선재는 결국 발길을 돌려 학교에 간다. 학교는 최소한 춥지는 않으니.      


 엄마가 뺨맞는 소리보다 차가운 겨울날, 싸구려 패딩 하나 없이 얇은 후드점퍼를 교복 위에 걸쳐 입고 한껏 몸을 움츠리며 학교쪽으로 느리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선재는 앞에 단정한 차림의 한 아이가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우리 학교 교복인데? 못 보던 애네. 땡땡이는 아닌 것 같은데, 전학오나?’

 누군가 선재 옆을 스쳐 지나가며 뛰어간다.     

 “명주야~! 아휴. 걸음이 왜이리 빨라. 엄마 힘들다, 늙었나봐. 하이고, 헉헉......”

 “엄마는 운동을 좀 해야 돼. 엄마 지금 갱년기잖아. 늙은 거 맞네. 눈에 주름 봐~ 할머니네, 할머니~”

 “그래도 몸매는 이 할미가 더 낫네요오~ 너는 아가씨가 이렇게 다리가 두꺼워서 어떡할래?”

 “난 매일 앉아서 공부하니까 그렇지~ 대학가면 날씬해질 예정이거든여! 그 땐 찐할미라고 불러드릴께여!”

 “제에발 그래라~ 엄마는 할머니여도 상관없거든! 그건 그렇고, 아침은 먹고 가야지. 이거나 드셔~ 아, 안되겠다. 너 이거 먹으면 또 다리에 저장할 거잖아. ㅋㅋㅋㅋ”

 “아~ 엄마아~!”     

 모녀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며 선재 앞을 걷는다. 둘의 장난스러운 대화는 멈추질 않는다. 기분이 이상하다. 뭐야, 저게. 뭐야? 뭐 저래? 난 엄마랑 얘기해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엄마랑 뭐가 왜 재밌어?      

 “하하핫! 얼른 들어가고~ 이따 만나 우리딸~! 사랑해!”

 “안녀엉~! 엄마아!”


 쳇......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학교에 온 선재는 2교시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교실에 도착했다. 선재의 옆자리에 아까 그 애가 앉아 있었다. 선재는 조금 전의 장면이 떠올랐다. 이 애가 싫다. 건강해 보이는 피부, 밝은 표정, 비싼 브랜드의 옷은 아니지만 은은한 향기가 나는 교복에 어느 곳 하나 추운 곳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이것저것 단단히도 입었다. 기모타이즈와 패딩조끼, 패딩점퍼, 누군가 직접 만든 것처럼 보이는 하얀 뜨개질 목도리. 얘가 싫다. 안녕, 반가워, 난 서명주야. 낯선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네는 고운 목소리와 미소도,

싫다.

      



 담배에 쩔어있는 미자는, 집구석에 처박혀 텔레비전이나 보다가 동네 마트 오픈기념 선물같은 공짜 소식에는 부지런해진다. 반면 지출이 있어야 할 때는 무식하리만큼 우악스러워진다. 지난번 선재의 치료비용 설명을 듣기 위해 미자는 마지못해 치과에 갔었다. 미자는, 무슨 놈의 치료비가 그렇게 비싸냐고 조금 크게 얘기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욕하고 난리 치냐며 선재가 미자를 향해 창피하다고 소리치곤 그냥 나가버렸다.


 미자는 병원도 선재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못된놈들! 도둑놈들! 다 내 돈 빼앗아 가려고 그러지. 돈없고 불쌍한 나를 다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 년은 돈도 없으면서 치과는 왜 가고 지랄이야.  미자는 선재를 찾지도 않은 채 그길로 집에 와서 텔레비전을 보며 키득거렸다. 선재는 미자에게 그저 성가신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복지 사각지대가 없는 우리나라를 꿈꿉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공익광고협의회. 1655-**** -


 오늘도 의미없이 텔레비전 앞에 드러누워 있던 미자는 공익광고를 보았다.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끙, 몸을 일으켜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온다. 휘어진 문이 뻑뻑하여 열리지 않자, 미자는 뼈가 앙상한 손으로 퍽퍽 친다. 문이 부수어질 듯 열린다.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자 얇은 몸이 부르르 떨린다.     


 “썩을, 추워죽겠는데 해는 쨍쨍하네. 해가 뜨든말든 알 수가 있어야지. 거지같은 집구석.”


 - 네. 또 그분이시죠? 안됩니다. 전화 계속 하셔도 두 분이 다 생존해계시고, 그런 혜택을 드릴 수는 없어요. 네, 네. 일을 하실 경우 소득이 생기시면 지원이 안 됩니다. 네. 아, 그건 안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법령으로 정해져 있어요. 글쎄, 안됩니다! 전화 끊겠습니다! -     


  시청 직원에게 퇴짜를 맞은 미자는 골목 앞에서 타는 담배를 물고 쭈그리고 앉아 보건소에 또 전화를 걸었다. 전에 남편에게 맞았던 상처 때문에 여성의 집에서 약간의 현금지원을 몇 달 받은 적이 있었는데, 정해진 시간이 지나고 이제 상처가 다 아물어서 지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되었다. 생각날 때마다 공무원들에게 전화를 하지만 남편이 ㅡ 도박으로 죄다 날려먹긴 하지만 어쨌든 ㅡ 수입이 있어서 시청에서도, 보건소에서도 별다른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다.     


 “공무원들이 일들을 안해! 우리나라 큰일 났다니까. 나와서 내가 사는거 보면 알 거 아니야. 내가 해도 너보다 잘하겠다! 아주 철밥통이라고 잘난척이지! 카~악! 퉤!”

 “어머낫! 뭐하시는 거에요!”

 “뭐요?”

 “아니, 하...... 참. 가래를 사람한테 뱉으시면 어떡해요!”

 “아. 미안해요. 내가 그럴라고 그랬나. 참 까칠하게 구네. 쯧.”

 “하......”     


 쓰레기를 버리고 집에 들어가던 현정은 바지에 가래침을 맞았다. 이 추운 겨울날, 슬리퍼에 부스스한 머리, 목 늘어난 티셔츠를 대충 걸치고 뼈가 툭툭 튀어나온 손가락 사이에 꽂힌 타다만 담배를 든 미자의 모습이 현정의 눈에 들어왔다. 현정은 말 안 통하는 사람일 것 같아 더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앞으로 지나면서 자주 볼 것 같은데 걱정되네.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명주 교복이나 찾아와야지. 어휴. 기분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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