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는 난생 처음, 그 흔해빠졌다는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은색 급식판에 담겨진 학교밥만 먹다가 예쁜 그릇에 담긴 집밥을 먹으니 신기하게도 선재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맛있다. 아침에 먹었던 두유도 맛있었고, 김치볶음밥도 맛있다. 아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식판의 한자리를 뻔뻔하게 차지하고 있는 김치로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도 있구나, 선재는 생각한다. 서명주는 매일 이렇게 왕처럼 앉아 맛있는 것을 먹겠구나, 선재의 머릿속은 바빴다.
어느새 그릇의 아기자기한 바닥무늬가 드러나고 있었다. 선재는 밥 먹는 내내 누군가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집에서는 밥을 먹을 수가 없고, 엄마랑은 말을 안 하고 지냈다. 아빠 역시 잊을만 하면 한번씩 집에 와서 엄마를 때리고, 하루 이틀 지낸 후 또 말없이 나가 버렸다. 학교에서는 친구가 없으니 말할 사람이 없었다. 선재가 말을 할 때는 대부분이 골목 앞 틀어진 벚꽃 나무와 나무에 핀 버섯 앞이었다. 상대는 사람이 아닌 나무와 버섯이었으니 대화라 할 수도 없고 주로 혼자 중얼거리며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이 다였다. 말 많은 명주는 엄마를 닮았나 싶게, 현정은 선재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선재야, 김치볶음밥 어때? 맛있어? 명주는 김치볶음밥 엄청 좋아해서 이틀에 한번은 먹어. 선재도 김치볶음밥 좋아해? 선재는 날씬해서 너무 좋겠다. 정말 부러워!”
“......감사합니다.”
“우리 이제 과일 먹자. 선재가 맛있게 잘 먹어주니 아줌마 기분이 엄청 좋아~! 고마워~!”
“엄마, 선재 부담스러우니까 말 좀 그만해.”
“서명주 질투 중?”
“엄마~ 무슨 질투야, 하참 어이가 없네. 하하하핫. 선재 불편하잖아. 엄마 그만하고 빨리 과일 줘.”
“알았어~ 엄마는 선재가 예뻐서 그러지. 과묵하고 얌전하고 밥도 잘 먹고. 얘들아, 가서 텔레비전 보고 쉬고 있어. 선재야, 아줌마가 금방 과일 갖다줄게~ (찡긋)”
선재는 현정의 윙크에 흠칫 놀랐다. 선재의 귀는 갓태어난 신생아가 세상의 소리에 반응하듯 왱왱거렸다. 집이란, 엄마란, 이렇게 시끌시끌한건가? 항상 조용히 있다가 시끄러운 모녀의 말에 살짝 피곤이 느껴졌지만 새로운 기분에 싫지만은 않았다.
명주의 방은 은은하게 파란빛이 돌았다. 파란 이불, 하늘색 책상, 하얀 옷장과 침대. 선재는 마치 구름 속에 들어온 듯 했다.
“너...... 파란색 좋아해?”
“응~ 난 하늘에 있는 색들이 좋아. 내 방 하늘 같지? 그렇게 보이려고 은근 신경쓴거야. 넌 무슨색 좋아해?”
“글세.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럼 좋아하는 건 뭐야? 꼭 색깔이 아니어도.”
“그러게.”
“야, 무슨 대답이 그러냐? 혀 끝에 영혼을 조금은 담아줄래? 하핫.”
“미안......”
“뭘 또 사과까지.”
“난 집 앞에 벚꽃나무 좋아해.”
“우리 골목 앞에 벚꽃나무가 있어?”
“응. 온 몸이 뒤틀린 나무, 걔가 벚꽃나무야. 지금은 겨울이라 가지만 있지만 그래뵈도 봄이 되면 꽃도 피어. 그리고 그 밑에 보면 작은 버섯도 있어. 씩씩하고 귀여워.”
“오와~! 그렇구나~ 난 왜 몰랐지? 내일 아침에 학교 가면서 보여줘. 걔는 왜 몸이 비틀렸어?”
“그게, 처음에는 죽은 나무인줄 알았는데......”
선재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당황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이 본 것을 말해 보았던 것이 언제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스스로 수다쟁이가 된 거 같은 느낌에 창피했다. 선재의 눈 앞에는 선재가 싫어하는 서명주가 두 눈을 반짝거리며 선재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선재가 서명주에 대해 느꼈던 ‘싫다’는 감정이 맞는건지, 내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인지,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인지조차 선재는 혼란스러웠다.
“야, 왜 말하다 멈춰?”
“......나 갈게.”
“과일 먹고 가.”
뭔지 모를 부끄러움이 선재에게 물벼락 쏟아지듯 몰려들었다. 선재는 얼굴부터 온몸이 화끈거렸다. 선재가 박차고 일어나는데 문을 열고 명주 엄마가 과일을 들고 들어왔다.
“왜왜, 선재야, 어디가?”
“아, 안녕히 계세요.”
“엄마, 선재가 약속있던 것을 깜빡했데. 선재 가야된데. 잘 가, 선재야~!”
“어, 어.”
“그래~~ 또 놀러와~!”
선재는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신발을 주섬주섬 신었다. 문, 뭘 눌러야 열리지? 왜 안 열려. 이건가? 이, 이건가? 하......
“이거 누르면 열려. 잘 가. 선재~”
배웅을 위해 뒤에 서있던 명주 엄마가 타원형의 버튼을 누르자 비로소 문이 열린다.
띠리릿~! 문여는 소리와 함께 선재는 튕겨나가 듯 명주의 집을 나오며 생각한다.
‘바보 멍청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