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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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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바라중독자 Apr 03. 2023

8 배려

 


 선재는 후다닥 뛰어 계단을 내려갔다. 자동문이 열리고 몸을 틀어 바로 옆 자기 집 반지하 빌라로 향했다. 여전히 얼굴은 터질 것 같았고 선재는 무어라 정의내릴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혼란스러운 선재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 비틀어진 벚꽃나무를 향해 갔다.     


 “서명주가 널 못 봤데. 버섯 너도.”     

 선재는 누가 들을까봐 골목 양쪽을 살피며 나무에게 자그맣게 말을 걸었다. 여전히 과묵한 벚꽃나무는 잠자코 선재의 작은 목소리를 듣고 있다.      


 “바보천치야, 나는. 문도 못 열었어. 그런 문을 처음 봤어. 김치볶음밥도 처음 먹어보고 아줌마가 과일도 가져오셨는데 그냥 나왔어. 병신찐따같이 보였겠지?”     

 작은 버섯은 바람이 불든, 선재가 얘기를 하든 말든 굳게 나무에 박혀 있다.      


 “......”     


 선재는 나무에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신이 갑자기 유치하게 느껴졌다. 정작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불편해했으면서.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지만 선재는 스스로 계속 되뇌인다.      


 ‘멍청이네. 멍청이. 휴...... 이제 서명주도 다른 애들처럼 나를 투명인간취급하겠지......’     

 선재는 이런 경우 예정된 수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일은 서명주에게 인사하지 말아야지.     




 "선재야~!"


 뒷통수에 쩌렁쩌렁한 명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선재는 못들은 척 잰 걸음으로 등굣길을 걷는다. 얼굴은 터질 것 같았고, 식은 땀이 났다.

 큰 잘못을 하고선 도망가듯, 선재는 거의 뛰다시피 했다.      


 “야~! 아후... 진짜 힘들어. 이선재!! 같이 가자고!! 헉헉......”


 명주의 힘들어하는 숨소리에, 선재의 마음속에는 슬그머니 미안함이 고개를 들었다. 결국 선재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용기를 내어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표정으로 명주를 봐야할지 몰랐다. 명주랑 인사해도 되긴 할까? 인사 안 하려고 했는데, 서명주가 부르니까.      


 “아, 안녕.”

 “야...... 헉헉...... 너 걸음이 왜이리 빨라. 가벼워서 그런가. 아 진짜 죽을 것 같아. 선재가 나 운동시키네. 고마워! 하하하핫~ 아 진짜 힘들어......”     


 난 그냥 모른척했던거야. 고, 고맙다고?

 이제 꼬치꼬치 물어보겠지. 어제 왜 그렇게 갔냐고. 뭐라고 대답하지?     


 “선재야, 어제 유투브에 보이즈페이스 신곡 나온거 봤어? 완전 멋있어! 걔네는 잘생긴 애들이 노래도 잘해. 꺄악~! 특히 난 신영, 너무 좋아~! 넌 누구 좋아해?”

 "뭐, 나는, 글쎄."

 "아이돌 안 좋아해? 혹시 클래식파? 오오올~~ 맨델스존, 바흐, 잠오는 음악 만든 사람들 그런거?"

 "아니. ㅎㅎ 그런거 잘 몰라."

 "어? 선재가 웃었다! 선재야, 너 웃으니까 더 예쁘다~!"


 선재는 자기도 모르게 흘린 웃음이 신기했다. 별로 웃긴 얘기도 아니었는데 내가 왜 웃었지? 선재는 서명주와 얘기하고 있자면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왜 안 물어보는거지?


 "내일 개교기념일이라 쉬잖아~ 너 내일 뭐해?"

 "아무것도 안해."

 "그럼 우리 도서관 갈래? 내일 마침 플리마켓도 열리고 도서관 행사한데."

 "플리마켓이 뭐야?"

 "동네 아줌마들이 물건 가지고 나와서 파는거야. 만든것도  있고 중고도 있고. 안사도 돼. 구경만해도 재밌어~ 그리고 도서관 10주년 기념이라 비빔밥을 점심으로 준데. 같이 가자~"


 도서관에서 왜 점심을 공짜로 주는거지?책도 공짜로 빌려주지 않나? 궁금하긴 하네. 가볼까?


 ......그런데 내가 어제 가버린거 안 물어볼건가?


 "갑자기 배가 아팠어."

 "엉? 배 아파?"

 "아니, 어제. 배 아팠는데 너희집에서 똥쌀 수 없어서 갔어."

 "악ㅋㅋㅋㅋㅋ 그랬구나~! 어쩐지 급해보이더라~ㅎㅎ"

 "내일 같이 가보자. 나도 궁금해."

 "오예~!"


 선재는 큰소리로 좋아하다 선생님께 주의를 듣고 있는 동그란 명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좋을까. 선재는 내가 먼저 말하길 잘했다고, 썩 괜찮은 핑계였다고 생각하며 안도한다.


명주랑 놀면, 돈이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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