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추억
다시 만났다. 생각이 나지도 않았던, 굳이 생각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잊고 지냈던,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애니메이션 원작이 실사화된다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귀여운 푸가 존재하는데, 이것이 실사화되면서 우리의 환상을 깨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위해 실사화되면서, 인형으로 콘셉트를 바꿨다고 한다.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나기 때문에 동물들의 수명 그리고 손 때 묻은 인형의 느낌을 살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때문에, 이런 영화를 볼 때는 초반에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영화 역시 그렇다. 초반 10분 정도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로빈’이 어떻게 자라왔는지에 대해 나온다. 영화 [업]에서 나온 오프닝 시퀀스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1900년대 초반 영국으로 추정되는 시대적 배경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일에 치여 살면서,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가장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나도 모르게, 로빈의 찌든 삶에 공감하게 되면서 영화를 보게 된다.
로빈이 푸를 처음 만나서 집으로 데려온다. 집에서 나오면서, 그는 꿀을 흘리고 꿀이 담겨있던 컵을 깬다. 그리고 푸가 그 꿀을 먹으면서, 푸의 발에 꿀 범벅이 된다. 푸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이가 들지 않은 모양이다. 푸는 꿀이 묻어도 신경도 안 쓰고 자신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다. 꿀을 묻히고 다니는 푸가 로빈에게는 거슬린다. 생각해보면, 집에서 누군가가 방을 더럽히는 것을 싫어한다.
어릴 적 달콤하게 먹었던 꿀이 이제는 귀찮고 닦기 어려운 존재로만 인식된다. 과거, 하늘에서 내리던 눈을 보며 좋아하던 우리가 이제는 출근길 걱정과 눈 치우기 걱정을 하는 걸 생각해보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오래 산다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 많아지는 것이고 책임이라는 것의 무게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걱정이 많은 것은 근심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부엉이가 말했다.
어릴 적, 더러운 것을 생각 안 하고 흙과 바닥에서 놀던 아이들은 콘크리트가 아닌 길을 밟은 기억조차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말하는 인형이라는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존재이자, 놀라운 존재다. 때문에, 로빈은 푸에게 조용하게 있으라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푸는 “나”다움을 잃는다며 걱정한다. 언제부터 이 사회를 다른 것이 남에게 피해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피해가 가지 않도록, 우리는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정해진 규칙에 의해 살아간다. 물론, 그것이 다 같이 사는 세상에서는 중요하게 적용된다. 저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한다면 그것처럼 무질서한 세상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다움을 잃고 남들이 하라는 대로만 사는 것은 그들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보이지 않은 새장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에서 로빈은 아주 바쁜 사람이다. 요즘은 그런 말을 한다. 요즘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냐고. 현대 사회에서 저마다 자신의 역할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처럼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게 바쁘다 보면, 정작 일만 하고 자신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이 영화에서 계속하는 이야기도 그렇다.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큰일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하는 세상이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경계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도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하얀 도화지가 필요한 것처럼, 복잡한 머릿속을 비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북쪽에 있는, 정확하게는 북서쪽에 잇는 런던에 가기 위해서는 남쪽에 있는 기차역을 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슨 요일이지?’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살아가고 있다. 시계가 필수고,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확인하며 살아가야한다. 로빈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로빈은 하루하루가 바쁘고, 주말이지만 일을 한다. 정말 요일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푸와 하는 대화는 달라진 로빈을 보여준다.
“오늘 무슨 요일이지?” / “오늘이지”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야”
그들 역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모르는 것보다는 신경 쓰지 않은 것이 맞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오늘 하루 놓인 인생이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로빈도 깨달았을 것이다. 잃지 않기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을.
“잃었다면, 주머니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 이병률 시인의 [청춘의 기습] 中
이 영화는 현대인의 삶에게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는 영화다. 어른과 아이가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라기보다는 어른들에게 조금 더 힘이 되는 어른을 위한 영화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다. 어른이 된 엄마, 아빠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물론, 아이들이 이해 못할 수도 있다. 이해 못하면 어떤가, 지금 이 시간에 같이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4 / 5 시간이 지나도, 나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