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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Sep 21. 2019

니콜 키드먼의 분장이 무색한

영화 [디스트로이어] 리뷰

영화 속 스타의 변신은 언제나 환영할 일입니다. 변신을 통해서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배우가 보여주지 못했던 연기를 보여주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그 변신을 가장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키스트 아워]의 게리 올드만, [바이스]의 크리스찬 베일, 한국 영화 중에서는 [이끼]의 정재영, [은교]의 박해일, [살인자의 기억법]의 설경구 배우 등이 있습니다. 

분장을 통해서 배우는 기존 얼굴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고, 그 변화는 배우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장치입니다. 



주인공 ‘에린’


[디스트로이어]의 주인공인 에린을 연기한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의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특수 분장을 하였습니다. 거친 피부의 톤과 부러진 코의 모습, 보형물로 만든 다크 서클 등을 이용하여 오랜 세월이 지난 그녀의 모습을 재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기를 통해서도 에린이라는 캐릭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딘가 모르게 절뚝거리는 걸음걸이와 말투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그녀의 30대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7년이라는 시간을 영화에서 표현한다고 하면, 흰머리 몇 가닥 칠하거나, 안경 및 소품 등을 이용해서 간단하게 표현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에린이라는 인물은 그렇게 단순하게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죠.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인물에게 17년이라는 시간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는 것이죠. 에린의 30대에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온갖 슬픈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소재를 가지고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단순한 죽음이 아닙니다. 누군가에 의해 살해를 당한 것이죠. 심지어 이들은 경찰입니다. 자신의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사람이 처참히 살해가 된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인물이 제정신일까요? 절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에린의 그런 심리를 잘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범죄, 스릴러 영화가 빠른 템포를 통해서 감정보다는 이들의 행위를 통해서 오락적인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다면 이 영화는 그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같은 장르, 다른 이야기


이 영화는 여타 다른 범죄, 스릴러 영화들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서사 위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미스터리함을 위주로 풀어가는 긴장감 있는 스토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인물의 감정 위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영화가 감정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면서, 스토리 전개도 느린 속도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인과 관계와 사건의 진실보다는 주인공 에린이 가지고 있는 분노의 감정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더더욱 에린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니콜 키드먼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 일 것입니다. 이 인물이 가지고 있는 감정은 단순 분노가 아닙니다. 그 감정을 17년이나 참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17년 동안 하나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그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져도 단단하게 졌을 것입니다. 그 딱지가 떨어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월에 니콜 키드먼의 행동만으로도 느껴지고 있습니다.

30대와 50대의 에린을 비교해보면서 영화를 관람하신다면, 그 차이를 분명하게 아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50대의 에린은 그냥 봐도 쉬운 인생을 산 인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거친 피부와 약간 초점이 안 맞는 듯한 눈동자와 동료 경찰에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모습들은 그녀가 겪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치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에런도 결코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중적 인물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녀의 딸로 등장하는 쉘비라는 인물입니다. 쉘비는 이 영화의 주요 스토리인 에린의 복수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습니다. 에린이 복수하려는 대상과 쉘비는 전혀 연관이 없으며, 에린이 복수의 감정을 가지게 된 것도 자신의 옛 연인입니다.

영화에서 쉘비가 등장할 때마다 영화는 에린과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영화는 왜 쉘비라는 인물을 통해서 에린과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쉘비의 남자 친구라는 인물은 쉘비의 보호자라며 나서며, 쉘비와 에린의 관계를 더욱 극단으로 내몰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죠.


에린은 현재 삶의 목적이 존재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알코올 중독에 자신의 복수만을 그리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에린이 살아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쉘비라는 것이죠. 

에린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서 찾아가는 인물들에게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쉘비에게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연인 크리스가 죽고, 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술을 선택한 에린은 그로 인해 알코올 중독을 얻었고, 그로 인해 쉘비에게는 다소 무관심한 엄마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 남자 친구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그녀는 마음이 편치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쉘비는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죠.



정리하자면


니콜 키드먼의 연기 변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조금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이는 그녀의 변화를 영화가 받쳐주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액션보다는 서사 그리고 감정이 중시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에린이 보이는 모습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비어있는 퍼즐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으로 영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조각들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이 사건의 진실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 시간대를 굳이 분리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두 시간대의 분위기에 극단적인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죠. 이는 그때 느꼈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같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모습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경계가 얕기 때문에 그 조각들의 경계 또한 확실하지 않습니다. 극적인 효과나 임팩트는 조금 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가 반전이나 극적인 전개에 기댄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전개는 영화의 감상에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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