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언더 더 실버레이크] 리뷰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를 씨네필이라고 합니다. 이 영화는 그런 씨네필을 위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영화 속 어떤 장면을 보면 과거 어떤 영화에 대한 향수가 떠오릅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고전영화라 불리는 영화들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OST나 관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는 마치, 히치콕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합니다. 이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듯 영화에서도 히치콕이라는 이름이 대놓고 등장하기도 하죠.
이 게임의 난이도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꼭 고전 영화가 아니라 비교적 최근 영화에 대한 요소도 존재하고 있어서 아는 사람만 피식거리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절대로 웃긴 장면이 등장하지 않으니 혹시 누군가가 웃고 있다면 그 사람은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이겠죠. 영화는 직접적인 유머의 사용을 상당히 자제했지만, 이런 식으로 뜻하지 않은 장면에서 과거 영화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를 했습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은 바로 히치콕일 것입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시선 자체가 그의 영화와 닮아 있는 지점이 많습니다. 관음적 시선의 등장이나 가부장적인 모습들은 과거 영화에서 보였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데이빗 로버츠 미첼’은 할리우드 고전 영화감독들을 인용하는 것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번 작품에는 [이창], [현기증], [욕망], [침실의 표적], [멀홀랜드 드라이브]까지 LA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담았다고 합니다. 음악 또한 당시의 음악을 참고하는 등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씨네필인 감독의 애정이 담겨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클래식 비디오 게임인 ‘슈퍼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도 이 영화에 등장합니다.
영화에서 벌어진 사건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이 이 사건을 파헤친다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주인공인 샘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된 이웃집 여성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녀의 행방을 쫓아갑니다. 사건을 쫓으면서, 그녀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비밀 메시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메시지를 풀기 위한 과정을 그립니다.
이런 이야기는 마치 탐정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필름 누아르가 유행하던 4, 50년에는 어두운 분위기에 탐정 영화가 유행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공식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미스터리하고 매력적인 이성에게 빠져서 그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거듭될수록 사건은 처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죠. 심지어 인물의 생명을 위협을 받는 상황도 생기지만 인물은 그 수사를 멈추지 않습니다. 결국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되고, 주인공도 그 사건에 말려들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샘의 여자 친구는 샘을 찾아올 때마다 독특한 분장으로 그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극 중 이름조차 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여성은 샘의 혹은 기존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샘이 다른 여성들을 훔쳐보는 관음적인 시선으로도 샘은 여성을 자신의 성적인 요구를 해결하는 수단으로만 보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여성들은 샘의 성 요구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주체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샘이 사라를 찾기 위해서 쫓아가는 여성을 관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영화는 그들의 개개인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느 순간은 샘에게 먼저 다가오기도 합니다.
다른 모습으로는 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샘은 초반에 다람쥐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개를 죽이는 사람의 존재는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샘의 꿈속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이 갑자기 개의 울음을 내면서 공포스러운 존재로 변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성의 권력을 보여주는 도구로 사용되는 모습도 등장합니다. 영화 속에서 권력이나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두 남성으로 그려지고 그런 남성 주위에는 많은 여성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여성의 수가 그 사람의 권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모습을 방관하지 않죠. 파티를 열어서 항상 많은 여성을 초대하던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에서 죽이는 과정에 대해서 상당히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전까지는 꽤 진중한 톤으로 유지되고 있던 영화가 갑자기 폭발하는 순간입니다. 영화가 이러한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과거 잘못된 모습에 대한 처형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중문화 속 비밀 코드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부터 사람들이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대중문화의 팬들을 사로잡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감독은 영화에 대해서 ‘우리는 대중문화라는 호수 안에서 헤엄치고 있다. 하지만 수면 저 아래에는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구가 쉽게 즐기는 대중 문화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뒷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에게도 흔히 접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연예에 대한 기사가 꾸준히 나오는 것 또한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 생활에서 많은 영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 연예인의 사건보다 연예인의 사건이 더 부각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버레이크 아래에는 무언가가 있다는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관음적인 시선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사라를 찾기 위해 시작한 샘의 여정은 어느덧 이들의 메시지를 찾는 것에 더욱 주목하게 되고, 이들의 메시지를 찾으면 사라진 사라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샘은 더더욱 이 사건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그 메시지는 우리가 쉽게 알지 못할 것입니다. 샘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미스터리에 점점 가까이 가면서 그 의미를 알아가고 있지만, 옆집 앵무새가 하는 말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겠죠. 듣고는 있지만 그 자세한 의미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냥 흘러가게 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르적인 재미가 충분히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 장르적 재미가 조금 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관객분들에게는 이 영화가 과하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영화는 고전 영화에 대한 향수와 대중문화의 이면의 이야기를 게임 북 같은 형식으로 하나씩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샘은 탐정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의 시선을 관음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장르적인 힘을 과신한 것인지, 결말에 보여주는 이야기가 크게 와 닿지 않습니다. 인물이 무언가를 쫓아가면서 결국 알아낸 것에 대해서 통쾌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모든 사건의 해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그동안 보여준 미스터리함을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영화는 그 공백들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저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영화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장르적 재미는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