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워 바디] 리뷰
이 영화의 제목은 ‘마이 바디’가 아니라 ‘아워 바디’입니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 중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대게 한국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나’라는 1인칭 단수가 아니라 ‘우리’라는 1인칭 복수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지영 작가의 소설에 쓰인 ‘나의 집’이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우리 집’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그 의미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가람 감독의 장편 영화 ‘아워 바디’는 반대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몸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라고 표현한 것이죠. 우리의 몸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여러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여성을 묶어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연령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제목이 의미하는 ‘우리’보다는 ‘나’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한국 독립 영화 [용순]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고등학교 육상부에서 달리기를 하는 용순이라는 고등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 속에서 용순은 달리기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땅을 밟고 지나가면 하고 있던 걱정을 흘려보내는 느낌이야.’
달리기는 도구 필요 없이 가장 간단하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신체적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이유로 달리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운동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종종 집 근처 공원에서 달리기를 하기도 합니다.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무겁다는 생각이 들 때 무작정 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달리기의 특징은 운동을 하면서, 빠르게 이동하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대한 변화 및 자신의 운동량이 가시적으로 잘 보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시적으로 잘 보인다는 특징은 영화의 소재로 삼기에도 좋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달리는 거리나 인물이 힘들어하는 정도의 표현에 따라서 인물의 성장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도 합니다. [아워 바디]는 행정고시생 자영이라는 인물이 공부에 지친 삶에서 벗어나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변화를 그리고 있는 영화입니다. 자영이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자영에게 몇 가지 변화가 찾아옵니다. 단순 신체적인 변화가 아닌 자영의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죠.
달리기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자영은 유튜브를 통해서 기초를 배웁니다. 유튜브 속 강사는 친절하게 달리기에 대해서 알려주지만, 자영은 그것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다 같은 동네에서 달리기를 하던 현주를 만나게 됩니다. 자영은 그녀를 쫓아가 보지만 쉽게 쫓아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현주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멀어지는 모습은 자영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적 장치입니다. 한참을 달리던 현주는 달리기는 멈추고 잠시 쉬지만, 자영은 그녀를 겨우겨우 쫓아가야 했고, 자영은 울음을 터트립니다. 그때까지 자영은 그 무엇도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없었고, 간단한 달리기조차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본인 스스로 한심함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그 뒤로 자영은 현주의 달리기 크루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게 됩니다. 혼자서 유튜브를 통해서 달리기를 배우던 자영은 함께 달리기 시작하면서 달리기 실력이 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달리기 크루들은 그녀가 달리기를 잘한다며, 빠른 성장에 대해서 칭찬했습니다. 자영의 일상에서도 자영은 사무보조 알바를 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동안 공부만 했던 자영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순간일 것입니다. 혹은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8년 동안 공부만 했던 자영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8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요령이 충분히 쌓였을 것입니다.
운동을 위해서는 기초 체력이 중요한 만큼,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무언가를 배우는 행위인 공부가 자영의 기초 체력과 같은 것입니다. 영화 속 자영의 주변 인물들은 8년 동안 공부한 것이 아깝다고 하지만, 자영이 8년 동안 공부를 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조금씩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는 순간에 자영은 남들보다 빠르게 습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점은 자영이 공부를 통해서 얻은 그녀의 능력일 것입니다.
자영이 달리기를 하면서 생기는 변화는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소소한 변화는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끼게 되고, 그 성장은 자신감을 가져옵니다. 자영이 현주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낀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당당함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자영이 혼자 달리기를 했다면 이러한 변화는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워너비인 현주처럼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에 달리기를 더욱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자영에게 그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죠.
현주와 친해진 자영은 현주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갑니다. 현주에 대해서 알아 갈수록 현주는 미스터리한 인물이었습니다. 항상 자신감 있는 모습이 매력적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태로워 보이는 인물이죠. 그런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자영은 변화하게 됩니다. 같이하던 달리기도 혼자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전처럼 서툴거나 의지가 부족해서 금방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주처럼 되겠다는 목표가 사라진 샘이죠.
그렇습니다. 현주는 자영의 목표였습니다. 영화는 자영의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공무원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행시 공부는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목표가 사라졌습니다. 현주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된 자영의 어릴 적 장래희망도 뚜렷하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영은 ‘운동 강사 할 거야?’라는 민지의 물음에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 시작했던 달리기는 이미 그녀의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결말부의 자영이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영이 회사의 부장과 관계를 가지게 된 것도 같은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자영이 자신의 채용을 위해서 부장과의 관계를 맺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영은 그런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관객들은 알고 있습니다. 현주와의 대화를 통해서 현주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와 자고 싶어 했습니다. 자신보다 어린 남자는 자신의 몸 자랑만 한다는 것이죠. 자영이 민호와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민호가 자신의 몸을 자랑하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죠. 현주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자영은 궁금했을 것입니다. 세상에 없는 현주가 해볼 수 없는 일이니 자신이 해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생긴 자영이 못할 일도 아니죠.
목표를 위해서 사람들은 경쟁하고 있습니다. 자영의 PPT가 없어진 것도 누군가가 지운 일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과 같이 사무보조를 하며, 자영의 능력을 부러워하던 희정은 어느 순간 그녀를 견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죠.
자영은 경쟁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미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보이지 않은 공시생들과 경쟁을 했고, 달리기는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처럼 느껴진 것이죠. 목표를 찾는 세상에서 목표가 없어도 가능한 순간은 달리기를 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결말은 상당히 많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 현주와의 대화에서 자영은 자신의 성적 판타지가 고급 호텔에서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목표입니다. 영화의 초반 자영이 혼자서는 달리지 못했지만, 사람들과 함께 달린 뒤에는 혼자서도 잘 달리게 됩니다. 이처럼 자영은 과거 자신의 성욕을 다른 남자에 의해서만 해결했다면, 결말부의 자영은 혼자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자영은 혼자서 고급 호텔의 방을 잡고, 햇살 좋은 창가 앞에서 혼자 누워서 자위를 합니다. 자신의 성욕을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결말은 저에게 두 가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1.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닌 자신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
2. 타인에 치이는 것이 싫어서 혼자를 선택하게 된 현대의 사람들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버틴 현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정말 조금만 더 하면 목표를 이룰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목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루지 못한다면 더 큰 절망에 빠질 수도 있겠죠.
자영은 현주에게 반하였고, 그런 현주와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자영이 현주에게 의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자영을 의지하는 인물도 있습니다. 자영의 동생인 화영입니다. 화영에게 자영은 피난처가 됩니다. 엄마와 싸운 뒤에 자영을 찾아가기도 하고, 자영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아직 학생인 화영의 교복을 보고 짧다고 이야기하지만, 잔소리를 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화영이 유튜브를 통해서 화장법을 배우고 있는 것을 본 자영은 화영이 가지고 싶어 하는 화장품을 사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화영과 달리기를 하기도 합니다. 화영은 자영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여타 다른 영화나 현실의 자매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많은 나이 차이를 가진 자매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는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자영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화영은 자영의 편이 되어주고, 화영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영은 그녀의 편이 되어 줍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화영이 달리기를 다시 해보겠다는 이야기를 통해서 자영에 의해서 화영도 변화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현주와 자영이 다른 점이 이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주에게는 화영과 같은 존재가 없었던 것입니다. 좋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집은 썰렁하게 느껴집니다. 작가라는 일을 하고 있지만 그녀의 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자영이 그녀의 글을 읽었음에도 영화는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습니다. 현주의 모습이 진실되지 않은 모습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영혼이 없는 상태처럼 보인 것이죠. 영화 속 그녀의 모습만 보고도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참 신기합니다.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위태로운 사람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영은 현주가 하는 것을 대부분 따라 했습니다. 하지만, 현주와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화영이라는 존재와 자신에게 목표를 쥐어 주지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은 엄마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자신의 몸은 자신이 투자한 만큼 보답을 합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영화의 제목이 나의 몸이 아니라 우리의 몸인 이유는 나를 위한 운동 혹은 무언가가 주변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주가 말하는 기를 빼먹는다는 표현 또한 그런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를 빼먹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실제로 기를 빼먹는 것이 아니기에) 기를 빼먹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살아가는 목표가 생기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최희서 배우의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그녀와 함께 호흡을 맞춘 현주를 연기한 안지혜 배우의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특히나 달리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얼굴이 오버랩되는 듯한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첫 장편영화 데뷔작을 연출한 한가람 감독 역시 단편 영화 [장례 난민]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주목을 받았던 감독입니다. 최근 [우리 집], [벌새], [메기]와 함께 개봉 시기가 맞물리면서, 여성 감독들의 강세라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들이 여성 감독의 영화라고 주목받을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감독이라는 타이틀에 대해서 모르고 보더라도 이 영화들은 충분히 괜찮은 영화입니다. [아워 바디] 또한 그렇습니다. 여성 감독이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영화입니다.
달리기는 장비나 복장을 갖추지 않고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달리기의 이러한 점이 당장 변화를 찾는 청춘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자신을 단련하면서, 달리는 거리도 늘어나고 그만큼 할 수 있는 일도 점점 많아지는 등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런 만큼 영화를 보면서 달리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자신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자영처럼 달리기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도전한다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