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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Sep 28. 2019

봐왔던 감동, 새롭지 않은 모습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리뷰


영화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영화를 관람하는 입장에서도 항상 신선한 영화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기존 영화들에서 좋은 모습은 배우고, 안 좋은 모습은 개선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이야기의 영화가 아니라면, 기존 영화들보다는 나은 모습 혹은 다른 방식의 전개가 있어야 하겠죠. 

관람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전에 봤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관객의 시선에서 이 영화의 첫인상은 [인천 상륙 작전]과 [포화 속으로]가 합쳐진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각본을 쓴 이만희 작가는 [인천 상륙 작전]의 시나리오를 담당했었고, 영화의 공동 연출을 맡은 김태훈 감독은 [포화 속으로]의 공동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니 두 영화가 합쳐진 느낌이 드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장사리]를 관람하고 느꼈던 첫인상은 이미 봐왔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갔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포화 속으로]가 가지고 있던 장점과 [인천 상륙 작전]의 장점을 모두 살리지 못했습니다.






봐왔던 감동 새롭지 않은 모습


영화에서 신파가 사용된다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신파는 자주 사용되고 있고, 그런 영화들에 신파가 들어갔다고 거부감이 들지는 않습니다. 한국 영화의 신파 사용이 사람들의 도마 위에 오른 이유는 과도한 사용 그리고 영화에 상당히 많은 부분이 신파에 기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파는 설명이 필요 없는 이야기 혹은 감정을 뜻합니다. 극을 진행시키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인물의 감정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파는 그런 과정 없이도 관객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부모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겪어봤을 법한 이야기 등은 단편적으로만 보여줘도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미 정해진 이야기 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생략해도 어느 정도의 감정선이 쌓이는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도 신파는 등장합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학도병의 모습이나 학도병들 사이의 우정을 통해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국 영화들에서 보인 신파의 양보다는 적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영화는 다른 곳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장사리 : 잊힌 영웅들]은 걱정했던 것보다 적은 신파를 보여주는 영화지만, 신파가 없어진 빈자리를 채우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주연


영화 [포화 속으로] 또한 학도병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은 학도병들의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순수한 모습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영화는 이들이 아직 어린 학생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직 전쟁에 나서기에는 어린 학생들이 총을 잡고, 싸운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나라를 위해서 도망가지 않고 싸우려고 했다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이 몰랐던 이야기를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포화 속으로]는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학도병에 집중했습니다. 학도병의 캐릭터 형성에도 많은 힘을 쓰고, 이들의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도 착실하게 보여주어 영화의 결말에 만들어질 이들의 우정 이야기를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사리]에서는 학도병의 비중이 높긴 하지만 집중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들끼리 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모습이 아니라 지휘관들에게 버려진 집단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실제 장사 상륙 작전에 투입된 학도병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총알이 빗발치는 것이 무서워서 상륙을 하자마자 손톱이 빠질 것 같이 모래를 팠다고 합니다. 더불어 생존 용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총을 쏘려고 해도, 실탄을 장전하는 방법을 몰라서 총을 못 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죽음을 처음 보아서 죽은지도 모르고 시체를 보고서 ‘얼른 가자’라고 계속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당시 상황에 학도병들의 감정과 상황이 잘 담겨있는 기록이 있음에도 영화에서는 이 기록을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이 영화에는 학도병과 그들을 지휘하는 간부들, 사령부에 있는 종군 기자의 이야기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이 영화의 포커스는 학도병을 지휘하는 이명준 대위인지, 학도병들인지, 종군기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의도 자체가 상당히 불분명하게 느껴집니다. 캐스팅만 보면, 종군 기자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예상되었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인천 상륙작전]에서 리암 니슨을 캐스팅한 이유는 맥아더라는 인물의 무게감과 캐릭터 표현을 위함입니다. 인천 상륙 작전에서 맥아더는 상징적인 인물이며, 이런 인물을 표현함에 있어서 존재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배우를 캐스팅한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비중은 적더라도 리암 니슨의 캐스팅으로 맥아더 장군의 늠름한 모습이 잘 표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종군 기자를 연기한 메간 폭스의 캐스팅에 대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이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왜 필요한 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듭니다. 메기라는 인물이 영화 속에서 하는 것은 학도병을 걱정하는 것뿐입니다. 다른 국적을 가진 그녀가 왜 한국의 학도병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물론, 어린아이들이 전쟁에 내몰린 것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현실은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그 이유가 필요합니다.

미군 지휘관의 이야기처럼 미군도 많은 희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국민의 생명이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 지휘관의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 소속 종군 기자가 한국 학도병에 대해 애착을 가지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필요했습니다. 그녀에게 비슷한 연령대의 동생이 있었다는 한 마디와 사진을 바라보는 한 컷만 있어도 그녀가 학도병에 매달리는 이유가 설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학도병 구출에 크게 공을 세운 것도 아닙니다. 메기는 지휘관들에게 구해달라고 부탁을 하지만 설득되지는 않습니다. 논리적인 설명이나 지휘관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들을 구출하는 것에 일조한 것도 아니고, 그것이 아니라면 사건이 끝나고 이들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역할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녀가 이런 이야기를 널리 알려서 이들의 귀환에 사람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녀의 역할에 대한 이유라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덩케르크]가 인상적인 이유는 전생에서 퇴각한 이들에 대해서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대부분의 영화들이 전쟁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추모를 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이름 없는 모든 병사들에 대한 위로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생사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나서 준 것에 대한 감사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이야기 전개도 가능했기 때문에 전투에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뒤의 이야기에서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에 메기의 역할에 아쉬움이 생깁니다. 


어쩌다 착한 영화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적에 대한 묘사가 적다는 것입니다. [포화 속으로], [인천 상륙 작전]에서는 박무량과 림계진이라는 악역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극 중 인물들에게 긴장감을 조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최근 개봉했던 [봉오동 전투]에서도 일본군에 일본 배우를 캐스팅하여서 적에 대한 표현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북한군이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투를 하는 장면에서도 많이 등장하지 않고, 그들의 작전은 한국 군과 미군의 입을 통해서만 듣게 됩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오로지 한국의 상황에서만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상대편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을 나쁘게 표현하여서 긴장감 조성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런 긴장감 조성보다는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장사리라는 곳에서 적과 싸운 이름 없는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영화는 학도병과 이명준 대위의 사연에 대해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정훈 장교로 묘사되는 이명준 대위가 왜 전투에 나서게 되었는지와 영화에서 장사리 전투 이전에 이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이야기도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선택으로 인해 영화는 다소 건조한 톤의 영화가 되었습니다. 감정적인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이들의 전투와 생존에 집중했습니다. 이들의 전투는 승리를 위한 전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투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모습이 처절하게 그려져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장사 상륙 작전은 학도병으로 이루어진 부대가 작전에 투입된 전투입니다. 영화 또한 학도병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이 영화는 학도병들의 활약이 아닌 이명준 대위의 활약으로 느껴집니다. 학도병이 말썽을 일으키거나 어설픈 모습보다는 이명준 대위의 이야기를 너무 잘 듣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정리하자면


영화 초반에 20분 정도 등장하는 전투 장면에서는 신경을 쓴 듯한 모습이 느껴집니다. (카메라를 조금만 덜 흔들었다면 더 괜찮았을 것 같습니다.) 이들이 모이게 된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장사 상륙작전만 보여주겠다는 것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10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도 그런 선택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학도병이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처럼 안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가장 캐스팅에 신경을 써야 할 학도병 캐스팅에는 신경을 안 쓰고, 이명준 대위에 종군 기자의 캐스팅에만 신경을 쓴 것 같습니다. 학도병으로 등장하는 최민호는 아직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색하게만 느껴집니다. 종군 기자 메기로 나오는 메간 폭스는 캐스팅의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연기를 잘한다고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김명민 배우는 작품만 제대로 선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화 자체가 인물들의 활약에 집중하기보다는 이 날에 있었던 일들을 최대한 감정 없이 보여주려는 모습처럼 보였던 초반부와 달리 후반부에는 이들의 우정과 사연을 보여줘 영화에 감정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반부부터 감정을 형성한 것이 아니라 후반부에 들어서 감정을 형성해야 하니 감정을 너무 밀어붙인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건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이야기를 다루는 점은 좋지만, 그런 만큼 더욱 잘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감정적으로 혹은 볼거리로만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 그럼에도 그들이 싸우려는 이유와 노력에 대한 표현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짜 슬퍼해야 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을 한 그들의 희생정신이 아니라 너무 일찍 철이 든 학도병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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