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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Oct 18. 2019

일본 언론의 현실 그리고 시작

영화 [신문기자] 리뷰

이 영화의 시작은 새롭게 나타난 미디어 언론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기존 종이와 TV 매체의 형태로 있던 언론은 미디어의 발전으로 한 개인이 언론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주류 언론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언론은 그 주체가 가지고 있는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분들 중에서 언론을 100% 신뢰하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한국에서는 비교적 최근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해외에서는 그전부터 언론의 신뢰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이 종종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나라 중에서 최근 언론의 자유도가 급격하게 하락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이죠. 그런 일본에서 의미 있는 영화가 나왔습니다. 영화 [신문기자]는 일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한국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절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최근 한국도 언론에 의해서 나라가 크게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고, 영화 속 이야기와 비슷한 사건도 겪어봤기 때문이죠.


영화 관람 후 이 영화를 연출한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과 ‘카와무라 미츠노부’ 프로듀서의 GV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두 분의 했던 이야기와 저의 영화적 감상으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실 속에 현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보여주는 수상한 움직임과 그것을 취재하는 기자 그리고 그곳에 소속되어 있는 한 공무원입니다. 영화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하나의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두 인물은 서로 반대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선으로 사건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목적은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어느 순간 그들을 응원하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한국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공감할 수 내용들이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면 어떤 사건을 두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유사한 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숨겨진 사건을 캐내고, 그것을 고발하는 것만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를 크게 보면, 사실을 밝혀내려는 개개인과 그것을 막으려고 하는 단체의 구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두 집단이 대적하게 되는 구도가 그려지는데, 이러한 것은 두 집단 중에 어느 한 곳의 편에서만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 그 단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개개인의 모습에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자세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모습들이 아주 나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형체가 없는 집단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결국 하나의 단체는 여러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고, 그 단체에 속해 있는 한 명의 사람은 자신의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계유지를 위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그런 일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관과는 다른 일이 생기더라도 조직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러한 내용을 현실의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자면, 시위 현장에 있는 의경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경찰이라는 조직의 목표인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위 현장에 투입됩니다. 그리고 시위대가 격해지게 되면 불가피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 청사에 무리하게 진압하려는 움직임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부 의경이 시위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그들을 막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의경이나 경찰이 과격한 시위대로부터 정부 청사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의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한 개인이 자신의 사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거부를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조직에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조직을 위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정의롭지 못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 정의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를 것입니다. 나는 이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도 존중이 분명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느 누군가가 아주 나쁘게 그려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침묵하는 자


정부의 비리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는 자칫하면 정부를 비난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현 정부에 반대되는 시선으로 보일 수 있고, 이는 정치적인 논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정부를 비난하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언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부에 대한 비난을 하는 영화라고 했다면, 언론사들과 정부가 서로 진실게임을 하는 형국의 이야기가 펼쳐져야 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영화 [1987]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덮으려는 정부와 그를 밝혀내려는 사람들의 충돌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언론사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건을 캐기 시작한 기자는 언론사의 제지를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론사는 보도지침을 무시하면서까지 진실을 캐내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였다면 이런 식으로 많은 이들이 그들과 싸우려는 모습을 보여야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취재 과정에서도 언론사에게 그만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습니다. 제목도 ‘신문기자’이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영화는 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누군가가 잘못을 했다면, 그것을 알리고 정당한 처벌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언론의 기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영화 속 언론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건이 바로 고위 관직자인 칸자키의 자살 사건입니다. 고위 관직자가 갑자기 파면을 당하고,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정황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의심이 가능한 사건입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자들은 그들의 유가족인 아내와 딸에게 무례한 질문을 서슴지 않습니다. 오시오카는 기자였던 아버지가 비슷한 죽음을 맞이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더더욱 진실에 매달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기하라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다른 기자들과는 다르게, 유가족에게 무리한 취재 요구를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지켜주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 오시오카는 영화가 바라는 참된 언론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외적인 이야기


한국에서 이 영화가 화제가 되었던 점은 주인공이 한국 배우라는 점입니다. 항간에는 영화가 언론은 고발하는 내용이라는 이유로 일본의 여배우들이 고사를 해서 한국 배우인 심은경 배우가 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에 대해서 프로듀서님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영화 캐스팅이 되기 전부터 심은경 배우에게 관심이 있었고, 영화를 찍게 되면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가장 먼저 캐스팅 제의를 했다고 합니다.

만약, 부담 때문에 배우들이 안 했다고 하면 다른 배우들의 캐스팅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최근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 배우들이 출연한 부분을 살펴보아도, 자신의 신념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연장 선상에서 감독이 실제 언론 기자분들을 취재했을 때,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은 무언의 압박이 있다고 합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것에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영화로 제작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취재 과정에서 관저 취재원, 한국으로 치면 청와대 출입 기자 같은 분들은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그 내용 그대로 언론에 보도를 한다고 합니다. 기자 회견에서 질문도 할 수 없고, 다른 의견을 덧붙일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굳건하게 자신의 질문을 했던 기자가 있습니다. 

바로 ‘모치즈키 이소코’라는 기자입니다. 이 영화는 그녀가 기자를 그만두고 쓴 동명의 소설 [신문 기자]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영화입니다. 카와무라 미츠노부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을 통해서 이야기의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지, 소설의 내용을 영화화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의 내용과는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결말 그리고 시작

 ([신문기자]와 [조커]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영화의 결말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특히나 가장 마지막 장면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감독과 프로듀서의 설명만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영화의 마지막에 요시오카가 숨을 크게 쉬는 장면은 그녀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기하라가 마지막에 하는 말에 대해서 음성을 뺀 것은 결국 우리의 소리는 전해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추측을 해보자면, 고멘이라는 일본어로 해석하면 미안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그가 실장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굴복하는 것에 대한 모습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말은 고발하는 성격을 가진 영화가 보여주는 사이다 같은 결말이 아닙니다. 영화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가 아주 절망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시오카의 기사 이후, 정부는 그녀의 기사가 오보라는 내용이 담겨있는 반박기사를 냅니다. 하지만, 많은 언론사와 기자들이 후속보도를 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누구나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들 용기는 없었던 것이죠.


영화 [조커]에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 것도 같은 이유라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서 때문에 난리가 났다고 생각하지만, 그전부터 사람들에게는 그런 감정이 쌓여있던 것입니다. 아서는 그들의 감정을 대변해준 사람이었고, 그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서 거리로 나온 것입니다. 


몇 년 전 하나의 기사로 시작되어서, 나라 전체가 바뀌는 사건이 한국에서도 있었습니다. 이때를 생각해보면, 이 사건은 하나의 기사가 모든 것을 바꾼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이미 비슷한 내용을 취재한 다른 기자가 그 내용의 후속으로 기사를 내보내고,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로 추가적인 취재를 통해서 많은 후속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옮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한 사람의 용기로 인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용기들이 모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겪어 봤습니다.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도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언의 압박을 받고 있지만, 한 사람의 용기에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지지가 더해진다면 그 용기의 무게는 상당할 것입니다. 아무리 정부라고 해도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겠죠. 그리고 그러한 일에 가장 나서야 하는 것이 언론이라는 이야기를 영화 속 내용과 결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기존 일본 영화의 틀에서 많이 벗어난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보다는 개인의 감정적인 그리고 인간 내면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면 일본 영화계에서 사회 고발적인 영화가 나왔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문제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정부에 대한 비판보다는 언론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잘못된 일을 했을 때, 침묵한 언론에게 쓴소리를 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외침입니다. 결국 언론은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을 취재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신문 기자]가 일본에서 개봉 후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영화를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더라도 더 찾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도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무관심을 넘어서 거부, 혐오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출 필요가 있었고, 그런 과정에서 비교적 어린 감독인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감독 또한 종이 신문을 구독한 적도 없고, 정치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개봉 후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결말에는 상당히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며,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보도 내용이 사실인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들 던지는 영화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지만, 일본의 사회적 문제에 정면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영화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한국 관객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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