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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Oct 24. 2019

왜 영화로 만들고 싶었을까?

영화 [82년생 김지영] 리뷰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많은 화제와 논란이 되었던, 조남주 작가의 동명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소설부터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던 작품인 만큼 이것을 다른 플랫폼으로 옮긴다는 결정을 했을 때는 상당한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을 때부터 이 영화는 많은 논란과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분명히 예상했을 것이고, 조금만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분명 많은 비난과 질타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영화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답을 얻고 싶어서 이 영화가 기대가 되었고, 그러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착해진 롯데?


[말모이], [항거 : 유관순 이야기], [어린 의뢰인]. 이 영화의 공통점은 롯데에서 배급하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영화는 착한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물론 롯데에서 배급하는 모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착한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한 영화를 주로 배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ex 상류사회…)


배급사인 롯데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영화의 이야기가 마치 롯데의 이미지 광고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극장에 자주 가시는 분이라면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롯데는 최근 그룹 차원에서 남편의 육아 휴직 사용률이 높다며, 자사를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미지가 선행된 이후 이 영화를 봤을 때, 어느 정도 노리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만큼 이 영화는 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많은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 영화인만큼 영화의 톤 자체도 상당히 건조하다고 느껴집니다. 연출의 개입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영화입니다. 이러한 시선은 [항거 : 유관순 이야기]와 [어린 의뢰인]에서도 볼 수 있었던 모습입니다. 이 영화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잘 알고 있고, 최대한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누군가에게 크게 불편하게 느껴지는 그런 영화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시각


저는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출간된 초기에 이 책을 접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보면서 별다른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그저 현실이 어느 정도 반영된 하나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뒤로 인터넷 상에서는 이 책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러한 논란이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집니다. 

제가 소설을 읽고 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은 이유는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소설이기 때문에 사회 현상들은 단편적으로 모아서 한 인물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옳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차별을 받는 대상이 오로지 김지영이라는 인물만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주변 인물들이 그녀를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읽고, ‘그럴 수 있겠네’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이 책의 목적도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이 책이 너무 극단적인 사례만 모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실제로 흔히 있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택시가 더 무서워요’ 였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제 주변에 있는 여성 친구들에게 물어봤을 때, 대부분은 이 이야기에 동의를 했습니다. 저의 친구들이 유별난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저의 어머니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여자친구가 탄 택시의 차 번호를 찍거나, 외우려고 하는 남자들의 행동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문제가 아니여도, 소수 문제가 있더라도 그 피해자가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있다는 것에는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자들이 군대를 가면, 선임들의 괴롭힘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있을 수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화 속 김지영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가자면, 제가 생각하기에 이 영화는 책에서 보여준 내용보다 더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여성이지만, 결론적인 내용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영화가 가해자를 고발하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가해자를 고발하는 영화였다면, 그 가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노출 혹은 나쁜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는 듯한 묘사가 있었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차별적인 요소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파편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김지영이라는 인물의 일상에서 아주 중차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로 묘사를 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죠. 다만, 어느 특정 상황에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릴 때,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이냐? 그것은 이러한 사회에 대한 환기에 그 목적이 있다고 보입니다. 주변 인물들이 그녀에게 하는 행동에 대해서 죄의식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된다는 풍토가 존재하던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인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입니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의 잘못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영이라는 인물이 이러한 환경에 처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지영의 학창 시절 버스 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소설에 비해 많이 순화되어 표현되어 있지만, 아버지의 대사를 통해서 스스로 조심하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점이 아버지가 그녀를 이해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그녀의 모든 일정을 함께할 수 없고, 당장 사회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입장이 아니기에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 외에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모든 사람들이 범죄의 공포에 떨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세상일 것입니다. 이상은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그 차선이라고 생각하는 이야기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말을 하는 아버지의 표정도 그리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극 중 지영은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린 인물로 묘사됩니다. 대현은 그런 지영이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지영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잃어가는 것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죠. 

이러한 부분은 영화의 후반부에 어떤 인물의 대사로도 묘사됩니다.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것부터 변화를 할 수 있는 가장 큰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가는 것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한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금 나의 모습이 어떤 지 알게 된다면,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김지영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잊고 있었던 지영은 영화의 결말에 소설과는 다른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영이라는 인물이 자신과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차별적인 언행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조금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러한 부분이 영화의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느낌보다는 이러한 상황을 예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단편적으로 상황을 가져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영화는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을 계몽시킬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목적을 가진 영화였다면, 영화 [서프러제트]처럼 여성들의 격한 반발이 가시적으로 등장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남성을 적대시 여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차별적인 언행을 보이는 인물이 남자만 등장하지는 않다는 것이죠. 그녀의 고모나 시어머니가 그렇습니다. 


예전에 이성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서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그 친구는 짧은 바지를 입고 지하철에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의 허벅지는 때렸다고 합니다. 놀란 눈으로 바라본 그 사람은 옆자리에 앉아있는 아주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가씨, 이렇게 짧게 입고 다니면 안 되지’ 

이렇듯, 차별적인 이야기는 남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적인 시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바꿔가야 하는 것이죠. 남녀 문제에 갈등을 조장하고, 서로를 혐오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이는 이러한 문제를 기피하려는 행동을 만듭니다. 마치, 정치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죠. 

사람들끼리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거리를 좁히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화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남녀 문제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뤄지는 대화가 아닌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두 집단은 거리를 좁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은 대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대현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조금 더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영이라는 인물은 평범한 여성이지만, 산후 우울증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이 겪는 감정에 대해서 100% 이해를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녀와 같은 질환을 겪어 본 사람이 아니라면 그녀의 감정에 쉽게 이해한다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그런 지영을 바라보는 대현이라는 인물에게 조금 더 포커스를 두었습니다. 영화의 비중 자체는 지영에게 있으나, 주요 이야기는 대현에 의해 진행됩니다. 그녀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장 가깝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인물인 것이죠.


그의 시선이 많은 사람들이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도 그 문제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것입니다. 대현이 그렇습니다. 그녀가 산후 우울증에 걸린 것이 자신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영에게 쉽게 말하지 못한 것이죠. 이러한 내용은 아이를 가지기 전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임신이나 출산 후 변화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이라는 것은 당장 자신의 신체에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한 것에 비교적 자유로운 남성들은 그런 여성의 걱정에 대해서 깊은 공감은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현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녀가 가지는 걱정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산후우울증 증상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영이 자신과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대현도 자신과 대면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을 그 누가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을까요? 




그러한 시선을 조금 더 확장하자면, 지영의 어머니 이야기를 해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육아에 대한 이야기와 고민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소설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조금 더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내기 위한 소재일 수도 있습니다. 지영이 복직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그녀는 회의감을 느낍니다. 베이비시터를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자신의 월급을 고스란히 베이비 시터에게 주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 생각하는 것이죠.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간 지영이 검사비가 35만 원이라는 이야기에 돌아온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그녀의 어머니가 육아를 돕기로 합니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 누군가는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습니다. 삼촌의 공부를 위해서 어머니는 공부를 포기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자녀를 위해서 자신을 포기하고 육아를 했습니다. 그 행위가 다시 한번 발생하는 것이죠. 자신의 딸이 고생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말리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그녀의 어머니, 지영의 할머니입니다. 지영은 갑자기 할머니로 빙의를 해서 어머니에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자신보다 자식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고, 그 마음 덕분에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김지영이라는 사람을 이야기하지만, 그녀 이전에는 더 많은 차별을 받아온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손에 난 흉터는 그간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수많은 미싱질을 했다는 증표일 것입니다. 그만큼 열심히 살아온 것입니다.




영화는 김지영이라는 사람, 개인의 삶을 파헤치는 영화보다는 그녀의 주변 사람에 대한 영화로 보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서 대부분을 차지했던 지영과 과거 여성들의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던 이야기들은 영화에서 파편적으로 등장합니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상황으로 각색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변화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도록 가닥을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후반부에 지영과 어머니가 통화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밥은 먹었니?’ 라는 물음에 지영은 딸을 챙겨주면서 먹었다고 대답합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식사를 챙겨주면서 먹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 두 어머니는 자신보다는 가족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 되어버린 인물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엄마와 함께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도 들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82년생의 이야기라고 보기에는 시 대가 안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2019년을 기준으로 아직 39살의 나이이며, 일부의 시선에서는 이 세대가 혜택을 본 세대라고 보기 때문이죠.

그런 이야기를 작가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82년생이라는 캐릭터를 설정한 이유는 비로소 그런 사회와 맞설 수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전까지 차별을 받아온 앞선 세대와 달리 그런 차별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이전 세대의 지지를 얻어서 사회 앞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세대를 대표하는 의미로 82년생이라는 설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과는 다른 영화의 결말을 통해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82년생 이후의 여성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맨 처음에 들었던 물음에 어느 정도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논란이 있던 이 소설을 왜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지. 소설이 아닌 영화로 이야기했을 때 더욱 효과적인 이야기가 있고, 조금 더 보편적인 시각으로 소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책과 달리 영화는 누군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컨텐츠이며, 영화가 끝난 후 그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더욱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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