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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Dec 12. 2019

배우와 가족 그리고 진실의 의미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리뷰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1년에 한 작품씩 열심히 영화를 만드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프랑스에서 제작한 영화입니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프랑스를 배경으로 프랑스 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다는 것에 더욱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죠. 고레에다 감독이 과거에 연극을 위한 쓴 각본을 토대로, 카트린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가 각본 작업에 직접 참여하여서 함께 작업했다는 것에 더욱 의미를 둘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영화의 어느 지점까지는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프랑스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코드가 가지고 있는 틀은 같지만, 그것만 가지고 이 영화가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라고 부르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이 있었죠. 물론, 이런 아쉬움은 영화의 후반부에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소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감상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물론, 기존 그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유머의 빈도가 높아서 꽤 웃으면서 볼 수 있다는 것과 배우의 캐스팅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일본에서 찍었다면 더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라는 배경이 주는 메리트가 크게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죠. 특히나 한국 관객에게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프랑스에서 만드나, 일본에서 만드나 큰 차이가 없죠. 프랑스 영화의 느낌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반가운 일이거니와 일본 배우가 아닌 할리우드에서도 유명한 배우와 함께 작업을 한다는 것은 고레에다를 좋아하시는 관객분들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주 관객층인 프랑스 관객들은 이 영화를 상당히 좋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프랑스는 유달리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한국에서도 대중적으로 사랑받지 못한 예술 영화가 프랑스에 흥행하는 경우가 더러 발생하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영화제인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예술 영화들이 상을 많이 받은 것을 생각하면, 그 인기를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영화의 결말에 등장하는 메시지는 상당히 감명 깊었습니다. 저는 감독에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더욱 들었는데, 매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주제와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의 퀄리티가 크게 요동치는 것도 아니죠. 모르긴 몰라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는 코드보다는 인물들의 직업이 배우라는 점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극 중 대배우인 파비안느가 자서전을 발간하게 되었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서 가족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딸인 뤼미르가 그녀의 자서전을 보고 한 말이 영화의 시작이 됩니다. 그녀의 책에는 진실이 담겨있지 않다는 것이죠.

영화 초반에 보이는 파비안느의 캐릭터는 상당히 사고뭉치 같은 모습입니다. 한 마디로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죠. 배우인 자신의 사위에게 서슴없이 연기 지적을 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연기가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거나, 그 자리를 피해버리죠. 그리고 그 뒷수습은 언제나 뤼미르의 몫입니다. 


영화는 크게 두 명의 인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파비안느와 그녀의 딸인 뤼미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파비안느와 그녀의 손녀인 샤를로트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파비안느는 영화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보여줍니다.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지고 있지만, 연기에 대한 확신보다는 불안함이 있는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대게 자신의 상태가 불안하다고 생각되면, 자기 방어 기제를 발휘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공격성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단점을 들추기 전에 타인을 공격해서, 그 시도를 차단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그녀가 한 이야기처럼 좋은 배우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쁜 엄마와 나쁜 아내를 감수할 수 있다고 하죠. 이는 그녀가 배우라는 타이틀에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샤를로트입니다. 생각해보면, 영화에 샤를로트라는 인물이 없더라도 이야기 진행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전개에 꼭 필요한 인물과는 조금 동떨어진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샤를로트가 영화에서 하는 역할은 인물들은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는 파비안느 마당에 있는 거북이와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거북이는 영화 내내 등장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느 순간은 없어졌다가, 갑자가 나타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런 거북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인물은 오로지 샤를로트입니다.

거북이와 샤를로트의 공통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죠. 샤를로트는 인물들의 대화나 상황이 펼쳐질 때,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소리를 통해 상황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이 등장합니다. 영화의 장면 중에서 행크가 기타를 치는 소리가 파비안느의 침실에서도 살짝 들리는 것과 같다 볼 수 있지요. 이는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은 가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윤희에게]에서 등장한 윤희와 새봄의 사이를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두 모녀는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서로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새봄은 윤희에게 쥰이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윤희는 새봄이 담배를 피우고,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족은 서로에게 말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알게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가정 내에서는 아이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의외로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눈치를 채는 경우가 많죠. 이는 아이가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죠.

이와 더불어 거북이를 피에르라고 부르며, 파비안느를 마녀라 칭하는 것 또한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샤를로트는 그런 파비안느가 진짜 마녀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파비안느가 해왔던 일입니다. 배우라는 직업과 관련이 되어 있죠.


배우라는 직업은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연기는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느껴지게 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상황은 연출이더라도 배우가 보여주는 감정은 진실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관객들이 그 이야기를 믿을 수 있는 것이죠. 저는 샤를로트가 영화의 관객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파비안느라는 배우가 진짜라고 마녀라고 믿는 것이죠. 그리고 파비안느는 그것을 믿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장황한 설명 없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합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 들어가는 영상이 그렇습니다. 이 영상을 보고 저는 감탄을 했습니다. 그의 영화를 모두 보지는 못했지만, 제 기억 속에서는 그의 영화에 쿠키 영상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굳이 넣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영상이 연기인지, 진짜인지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죠. 이는 영화의 중반부를 넘어설 때부터 드러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 쿠키영상으로 정리하는 것이죠. 저는 이 영상을 보고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이 아님에도, 그것을 사실로 보이게 하는 것이 배우의 힘이고, 배우의 연기를 통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 된다는 것이지요. 



영화의 중반부까지 그의 개성보다는 프랑스 영화의 개성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지만, 그 이후에는 그의 개성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항상 비슷한 가족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 결과로 더 좋은 연기, 성장을 하게 되는 인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파비안느와 뤼미르 모녀는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대부분의 가족은 샤를로트가 아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해도, 이해해주고 감싸줄 것입니다. 그리고 샤를로트는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신뢰합니다. 그렇다면, 샤를로트가 성장을 해서 어른이 되면 이런 이해와 믿음은 사라지는 것일까요? 이해와 신뢰. 그것이 가족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임을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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