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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Jan 27. 2020

차곡차곡 쌓아 올린 연기들

영화 [남산의 부장들] 리뷰

캐스팅과 촬영 때부터 관심을 받은 [남산의 부장들]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쓰인 동명의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작 때부터 관심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과 이병헌 배우가 다시 한번 만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마약왕]이 개봉하기 전까지 우민호 감독의 욕망 3부작이라는 타이틀로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약왕]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남산의 부장들]도 덩달아 기대치가 낮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영화를 보신 분들이면 대체적으로 좋았다는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분들이 배우들의 연기를 가장 먼저 이야기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배우들의 연기가 상당히 돋보이는 영화였고,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다름이 없을 정도입니다. 




[남산의 부장들]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차곡차곡’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게 영화들에는 여러 굴곡이 존재하지만 이 영화에는 하나의 곡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른 영화들에서 여러 사건을 통해서, 다음 사건의 긴장감 및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구조를 가진다면, 이 영화는 사건을 통해서 긴장감을 완만한 오르막길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크게 높다는 생각이 안 드는 오르막길을 꾸준히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엄청난 긴장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에 집중을 하게 되고, 주인공인 김규평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초반에 등장하는 후반부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관객들에게 한 번의 경험을 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어떤 공포에 경험이 없는 것보다는 알고 있는 것이 더 공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영화는 초반부터 총성으로 시작하기에 영화의 어느 부분에서 총성이 발생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총성을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여기서 총을 쏠 수도 있어’라는 암시를 지속적으로 주어서, 사건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을 영화의 발단부터 조금씩 쌓아가고 있습니다. 감정을 쌓는다는 표현을 한 것처럼, 영화는 

스토리보다는 인물이 그러한 일을 벌이게 된 감정적인 계기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즉, 스토리가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옳고 그름의 가치적인 싸움에 대한 이야기나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 사실에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김규평이라는 인물이 대통령을 죽이게 된 그 감정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영화의 전개가 가능한 것은 영화가 사건 중심의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 중심의 이야기 전개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긴 뒤에 그것을 해결하려는 인물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여러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던 인물이 그것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에 집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의 결말에 등장하는 하나의 큰 사건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역사적인 사건들이 등장하여, 다큐멘터리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극적인 전개를 보이는 것이죠. 김규평이라는 인물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통해서 여러 감정들이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그 감정들의 폭발을 하나의 사건으로 폭발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물을 연기한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만들어내는 감정들이 영화의 가장 중점이 될 것입니다. 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극 중 김규평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되고, 그 외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은 김규평이라는 인물의 감정이 변화하게 되는, 혹은 새로운 생각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해당 인물들이 주는 자극이나 새로운 사실에 반응을 하고, 인물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이병헌 배우의 감정적인 연기가 상당히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병헌 배우는 그것을 아주 훌륭하게 연기했습니다.

이전에 개봉했던 영화 [싱글 라이더]를 통해서 이병헌 배우는 상당히 절제된 내면 연기를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영화 내내 거의 무표정으로 등장하지만, 그 무표정 속에서 표정이 느껴지는 연기를 보여주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는 그런 모습에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 정보부장이라는 직책에 맞게 자신의 품위를 지키면서, 자신의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 및 여러 가지 감정들은 얼굴의 미묘한 움직임과 표정들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합니다. 그렇기에 보는 관객들은 김규평이라는 인물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물의 감정을 알 수 있다는 만으로 영화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요? 단언컨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남산의 부장들]의 가장 큰 매력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장점 때문인지 배우들의 연기 말고는 크게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규평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소신 때문에 살해를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영화는 김규평과 곽상천(경호실장)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등장시켜서, 김규평이 경호실장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브로맨스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 [천문]에서 느껴진 직접적인 브로맨스의 느낌보다는, 그 감정의 정체가 권력에 대한 것인지, 감정적인 것에 대한 질투인지 명확하게 느껴지지는 않도록 연출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남에게 빼앗긴 것에 대한 질투라는 것은 확실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영화 자체의 연출도 좋습니다. 여러 이미지들을 활용하여서, 김규평이 느끼는 감정들을 잘 표현하였고,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특징들을 보이는 것을 통해서 잘 표현하였습니다. 

우민호 감독의 전작인 [내부자들]이 권력자에 대한 비판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영화였기에 그것을 향해서 시원하게 달리는 영화였지만, [남산의 부장들]은 시원하게 달리는 영화는 아닙니다. 천천히 진행하면서, 조금 더 넓은 범위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렇기에 지나온 것들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죠.



이렇듯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조명이나 우리가 모르는 역사에 대한 조명이 아닌, 인물의 감정적인 것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조금은 아쉬운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역사를 제대로 다루기보다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도하는 것이 더 적합한 매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영화의 모습은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역사에 대한 평가를 하기보다는, 당시 인물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누가 보아도 ‘그럴 수도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가는 각 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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