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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Feb 07. 2020

유쾌한 조조의 제2차 세계대전

영화 [조조래빗] 스포일러 리뷰

 영화의 주제만 본다면, 무거운 분위기로 만들어도 무리가 없는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가벼운 분위기를 선택했다는 것은 분명히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대게 이러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그 배경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물들의 갈등과 사건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영화가 사용하는 배경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영화가 원하는 환경으로 주인공에게 여러 사건들을 줄 수 있는 수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적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억압받는 시대를 표현할 때,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시선으로 본다면, [조조 래빗]은 조조의 성장을 담은 이야기로 볼 수 있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환경 속에서의 어른들의 태도가 주요 배경이 되고, 그 속에서 조조가 자신의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될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그 가치관과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서, 영화를 보다 보면 왠지 모르게 스스로 반성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 드는 영화가 됩니다. 



영화의 시작을 보면 조조와 로지가 집 밖에 나서기 전에 로지가 하는 이야기가 있죠. 집 밖은 위험하다는 이야기. 영화를 본 뒤에 드는 생각은 이렇습니다. 로지가 했던 이야기인 ‘완전 위험한 세상’ 그것을 로지의 시선으로 본다면, 로지는 조조를 지켜야 함과 동시에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죠. 그리고 영화의 결말에 조조가 엘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로지가 조조를 성숙한 아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조조는 성숙한 것이 아니라 순수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 봤습니다. 만약 조조가 진짜 성숙한 아이라고 생각했다면,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영화 속 조조를 보면서 귀엽다고 생각하거나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죠. 대게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성숙한 아이들의 모습은 어른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의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유대인으로 나오는 엘사가 성숙한 아이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조조가 영화의 후반부로 가서는 진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쟁을 겪게 되면서 엄마를 잃고 혼자가 되었고,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엘사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겪는 조조. 그리고 관객들은 그런 조조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죠. 조조는 진짜 전쟁을 겪으면서, 조조는 더욱 성숙해진 아이로 성장했다는 표현보다는 변화되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 가. 스스로 답변을 해보자면, 아마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누군가의 가치관을 강요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는 있겠죠. 그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것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그 태도가 달라질 것이죠. 그것은 아이들의 사상을 넘어서 큰 책임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  그렇기에 영화 속 조조는 엘사가 유대인임을 알고도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죠. 조조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독일 소년단의 선배들이 토끼를 죽여보라고 했을 때, 해를 가하지도 못하고, 토끼에게 도망가라고 하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엄마도 나치의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말하지 못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사상으로 보자면, 엄마인 로지나 엘사 모두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실현될까 봐 두려운 것이죠. 대부분의 영화에서 본인의 죽음을 걱정하는 것을 그린다면, 이 영화는 조조라는 인물은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걱정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면, 엘사가 유대인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바로 신고를 했을 것입니다. 혹은 본인이 직접 처단을 하려고 생각했겠죠. 




그것뿐만이 아니라, 조조는 엘사를 마주하게 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유대인이라는 존재가, 자신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심지어는 엘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죠.  그러니 조조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에 얼마나 많은 혼란을 겪고 있을까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히틀러는 조조에게 나치의 정신을 강조하지만, 조조가 느끼는 것들은 그것과 다른 것이 조조를 흔들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을 통해서 조조가 변화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영화는 그러한 내용들을 신발끈이라는 가시적인 요소로 보여주게 되는 것이죠. [스폰지 밥]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도 볼 수 있지만, 신발끈을 스스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은 성장했다는 의미로 받아 들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중학생 때까지 신발끈 묶는 법을 몰랐습니다.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았고, 저 스스로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러한 일들이 일상생활에서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조조가 신발끈을 직접 묶지 못한 이유는 그것을 스스로 하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일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전까지는 그의 엄마인 로지가 조조의 신발끈을 묶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조조가 기댈 곳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겉으로 멋있어 보이는 나치에 빠져있을 시간이 있는 것이죠. 만약에 어려운 삶을 살았다면, 나치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을까요? 당장 내일 먹을 것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할 것이고, 그런 현실적인 걱정을 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가정환경에 있더라도, 그것은 조조가 걱정할 문제가 아닌 것이죠. 어른들, 그의 엄마이기도 한 로지의 몫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신의 사상을 떠나서 그런 책임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뒷부분에 더 이어가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조에게 나치에 대한 생각과 신발끈을 영화는 조조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전쟁을 보여줍니다. 여타 다른 전쟁영화처럼 현재의 전쟁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영화 내내 조조가 사는 마을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즉, 마을 외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마을에서는 그것을 체감하기는 어렵고, 하나의 마을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때, 조조는 전쟁이라는 현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조조는 죽음과 먼 곳에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이전에 조조는 광장에 목이 매달려 있는 시체들을 본 적이 있으며, 토끼의 죽음을 보았고, 자신이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류탄에 의해 죽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얼굴이 망가진 것에 실망하는 그런 인물입니다. 조조는 자신과 죽음이 그리 가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 생각은 현실 속 우리들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막상 겪기 전까지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공포로 다가올 때, 보험이라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사고를 대비합니다. 어쩌면 영화 속 조조에게 나치는 보험과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르죠. 강한 군인이 되어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야 말로, 어른이 되는 일이며, 전쟁터에 나간 아빠처럼 자랑스러운 인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조조의 우상인 히틀러처럼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봤을 것이죠. 그렇다면, 조조에게는 어떤 공포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라 볼 수 있을까요? 이는 나치가 유대인을 배척한 이유와도 비슷하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과거 독일에는 유대인들이 여러 분야의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히틀러는 유대인 때문에 독일이 어려워졌다고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명분 삼아서 히틀러가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주장했고, 그 주장이 힘을 받으면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게 된 것입니다. 결국 누군가에 대한 공포에서 의해서 히틀러는 권력을 잡게 된 것이라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영화에 대입해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조조에게 유대인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실제 마주하게 된 유대인은 공포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이었죠) 그들과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조조가 유대인과 직접 마주하게 되면서 이전에 가지고 있던 유대인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조조에게는 더 이상 나치라는 사상이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어느 순간까지는 유대인을 공포의 대상으로 인지를 하고, 그들이 자신을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그들을 해치게 된 것이죠. 영화는 이런 조조 내면의 갈등을 가상의 히틀러 캐릭터를 만들어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영화의 핵심. 영화의 분위기를 잡으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이 벌인 싸움은 상대방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혐오하고, 비하를 하면서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의 생각일 뿐이죠. 조조가 그렇습니다. 조조는 유대인을 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주변 사람의 말과 본인의 상상으로 유대인을 상종조차 못할 끔찍한 사람으로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공포 속에서 자신을 지켜줄 무언가가 바로 히틀러라는 상상 속 친구가 되는 것이죠.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조조가 믿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조조가 독일 소년단에 들어가고 싶어 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해를 위해서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좋을 것입니다. 저 또한 어릴 적에는 보이스카웃에 대한 동경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학교에는 컵스카우트(초등생 스카우트), 해양소년단, RCY, 아람단 등이 있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RCY를 선택해서, 활동을 꽤 했었습니다. 이런 연맹들은 아이들에게 소속감과 책임감을 부여하여, 자존감을 올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저 또한 RCY 보장을 (RCY에서는 6~7명 정도를 묶어서 ‘보’라는 단위로 나누었다) 맡아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활동을 조조에게 대입해본다면, 조조에게 독일 소년단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었을 것이라 볼 수 있죠. 다르게 말하면, 조조는 아무것도 모르고 독일 소년단을 좋아했던 것이라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나 조조의 엄마인 로지는 조조에 대해서 두 가지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직 어리니까 뭘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라는 것과 ‘진짜 나치에 빠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일 것입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나치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소년단의 대장이나 교관들에게 나치는 그들을 먹여 살리는 존재일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무언가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자신의 일에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물론, 그들 또한 나치의 사상에 동의를 하는 것 같습니다. 진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먹여 살리는 곳이라서 그렇다고 믿는 것인지 그런 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말이죠. 저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조조를 살리려는 모습을 보면, 그 또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는 두 가지 세력이 충돌하는 영화라 볼 수 있습니다. 독일 소년단을 포함한 나치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조조가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조조는 선배들에게 토끼를 죽여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조조는 그런 이야기에 당황하며 결국 토끼를 죽이지 못하죠. 이에 선배들은 토끼의 목을 비틀어서, 풀 숲에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쯤에 그 선배들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태도일 것입니다. 전쟁에 나간다고 했을 때는 조조에게 자랑하듯이 말을 했던 그들이었지만, 영화가 꽤 진행된 후에 다시 돌아오는 길. 조조와 마주친 그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로지가 그들에게 격려를 보냅니다. 로지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죠. 그들이 나치를 위해 싸웠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잘못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조조가 5~7년 정도 소년단 활동을 이어갔다면, 조조 또한 그러한 모습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ㅇ영화를 좌우의 이야기로 봤다면, 상하로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선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 속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가 어린아이라는 것과 이념적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누군가는 조조에게 이념에 대한 것을 설명하는 장면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제 기억에는 영화 속에 그런 장면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교육의 책임이 있는 로지는 조조에게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서 설명할 수도 있었습니다. 로지의 가치관에서는 조조가 속한 독일 소년단은 잘못된 곳이고, 조조를 개화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관을 주입할 수 있었을 것이죠. 하지만, 로지는 그것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정치 성향과 다르면,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죠. 독일 소년단의 대장 클렌젠도프는 나치로 잡혀 온 조조를 탈출을 시켜준 것처럼 말이죠.




영화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나치에 대해 비판을 할 의도는 없어 보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만약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직접적이고,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중심은 조조라는 아이의 행동입니다. 이미 머릿속에는 히틀러가 눌러앉아 있을 정도로 조조는 상당히 많은 부분 나치에 의해 지배를 받은 인물이라 볼 수 있죠. 조조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현실을 피부로 체감하게 됩니다. 유대인 엘사와의 만남, 로지의 죽음, 전쟁 등이 그것이죠. 영화는 이러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노출시켜서 사상이라는 것과 피부에 와 닿는 현실의 대비를 보여주고, 조조 스스로 깨달아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과정들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영화는 어른들의 책임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고, 그 책임이라는 것은 영화의 앞부분에서 이야기한 토끼 이야기와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토끼는 당근을 구하기 위해서 매일 목숨을 건다는 이야기를 하죠. 다르게 이야기하면, 삶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 목숨을 건다는 이야기라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겠죠. 그 책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는 어른들에게 주어진 책임은 아이들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몇몇 영화나 현실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목표는 무엇일까? 바로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킹스맨]에 나오는 밸런타인도, [어벤저스]의 타노스도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 사람들을 희생시킨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 이면에는 더 나은 삶이라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는 동의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악당이라고 무조건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기도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내일이라는 것은 넓은 범위로 보면 아이들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죽은 로지의 신발끈을 묶지 못하는 조조는 아직 혼자가 되기에는 어린아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현실을 겪고 나서, 자신이 해야 할 것이 분명해졌을 것이죠. 토끼처럼 살기 위해서 당근을 구해야 하고, 그 당근을 구하는 과정은 목숨을 거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 사회에서 말하는 책임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조조에게는 남은 것은 독일 소년단의 친구였던 요키와 엘사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엘사가 떠난다는 이야기를 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홀로 남겨질 조조가 안타까웠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영화는 그녀가 떠나지 않을 것 같다는 뉘앙스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은 신발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영화 내내 조조는 자신의 신발끈을 묶지 못합니다. 영화의 중반까지 로지가 묶어 주었고, 이러한 요소는 영화 내에서도 여러 번 언급될 정도로 꽤 중요하게 다뤄지는 듯합니다. 로지가 죽은 뒤에 조조는 그녀의 신발끈을 묶어주려고 하지만 실패하죠. 조조는 영화에서 딱 한 번, 신발끈 묶기에 성공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엘사의 신발끈을 묶어줄 때입니다. 영화에서 신발끈은 앞가림 혹은 책임에 대한 은유라고 해석해 본다면, 조조에게 살기 위한 책임감이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이것이 자신의 앞가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조조가 신발끈은 묶은 대상이 자신이 아닌 엘사라는 것이죠. 이는 혼자가 아닌 둘이라는 것에 더욱 의미를 두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신발끈은 항상 타인이 묶어주는 이미지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통해서 서로를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조조와 엘사 또한 서로를 책임지며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이죠. 적어도 전쟁이 끝난 그들의 모습은 희망이 느껴집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서로를 경계하며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죠.



[조조 래빗]은 생각보다 유쾌하고, 생각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무엇보다 [조조 래빗]이라는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가 등장하는 몇몇 영화들을 볼 때면, 어린이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지고, 어린이라는 것을 무기 삼아서 조금은 말도 안 되는 기행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있었는데, [조조 래빗]은 주인공이 어린이라는 점이 상당히 중요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주변 인물들도 상당히 적당한 캐릭터와 분량을 보여주죠. 결론적으로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균형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블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것은 뭔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큰 존재감을 보일 것 같지는 않지만, 영화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게 해 줄 그런 영화는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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