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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Feb 16. 2020

정치에 대한 유쾌한 상상

영화 [정직한 후보] 리뷰

영화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을 못하는 정치인이라는 설정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인에 대한 생각 중 하나는 거짓말을 잘한다는 인식을 뒤집은 영화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서, 그동안 관객들이 느꼈을 정치에 대한 불만들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관람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것이 [내부자들]과 같은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그런 장면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3선 국회의원 ‘주상숙’이란 인물이,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화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간단한 스토리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영화는 판타지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판타지 요소가 개입된 이야기에서는 영화의 톤과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합니다. 거기에 코미디 장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필연적으로 배우의 능력이 중요한 영화이고, 이는 어느 정도 배우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영화 [정직한 후보]를 기대하신 분들의 대다수도 라미란 배우의 코미디라는 점을 기대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그 기대에는 충족을 하고 있습니다. 라미란이라는 배우가 있는 연기의 개성과 코미디는 상당히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유의 톤과 표정 그리고 한국의 아줌마라는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라미란 배우는 정치인이라는 직업을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준비하면서 참고한 정치인이 있냐는 질문에, 다른 정치인을 참고하기보다는 그녀가 연기한 주상숙이라는 인물에 더 집중하여서, ‘상숙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녀가 연기할 인물을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아닌 주상숙이라는 캐릭터 구축에 더욱 신경을 썼다는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고민은 영화에서 빛을 발휘합니다. 그녀가 연기한 주상숙은 영화의 모든 것입니다. 애초에 영화의 90% 이상에 그녀가 등장하기 때문에 그녀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부담이 무색할 만큼, 그녀는 본인 특유의 연기로 영화 내내 캐릭터를 잘 살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주상숙이라는 인물을 중점으로 그 주변 인물들과의 케미를 통해서 영화는 새로운 케미를 만들어냅니다. 특히나 김무열 배우가 연기한 보좌관 박희철과 윤경호 배우가 연기한 남편 봉만식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인물들 덕분에 주상숙이라는 인물의 개성이 더욱 돋보이고, 관객들 또한 편안하게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개 방식이 조금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이미 이런 방식의 이야기는 많이 있었고, 영화가 보여주는 웃음을 유도하는 방식이나 결말을 맞이하는 방식 자체는 기존에 봐왔던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클리셰들의 단순 나열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애초에 영화의 배경이 국회의원 선거이기 때문에 선거가 가지고 있는 과정과 반응들은 한정적이죠. 영화는 그 안에서 나름의 변화를 주기 위한 노력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현실 정치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야기들을 잘 녹여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항상 명목과 허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판에서 거짓말을 못하는 인물이 보여주는 기행들은 보는 관객들에게 흥미를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항상 ‘존경하는’을 달고 사는 국회의원이 누군가를 싫다고 하는 모습은 현실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이죠. 


이런 식으로 코미디에 대한 부분은 전체적으로 좋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코미디 자체가 좋다는 의미보다는 현실의 정치인들의 행보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재미있는 상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이런 정치인이 실제로 있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 및 코미디 외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부족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영화의 중반부 이후에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분위기가 떨어지는 점은 단점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코미디를 위해서가 아닌 영화의 스토리를 위한 과정이라면 어느 정도 감안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 속에는 정치적 비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존재했고, 주인공인 주상숙에게도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을 해결하는 과정이 그리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사실적인 해결이거나 다소 황당한 (재미있는) 해결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 [극한직업]이 중후반부에서도 코미디의 톤을 가져갈 수 있던 것은 인물들의 반전 과거라는 요소와 황당한 해결, 인물의 캐릭터를 최대한 이용한 스토리 전개가 그 이유였습니다. 

[정직한 후보]의 후반부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이야기들은 깔끔한 해결을 하지 못하고 끝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는 사건의 내막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라는 분위기로 지나가는 사건도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등장하여서 무언가 중요한 사건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 해결이 깔끔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이러한 점이 영화를 다 본 뒤에도 무언가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합니다. 



예상했던 만큼 라미란 배우는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장점을 잘 보여준 영화입니다. 라미란 배우의 코미디를 기대하시는 분들에게는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 혹은 정치를 향한 속 시원한 외침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영화입니다. 단순히 정치에 대한 유쾌한 상상 정도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면서, ‘저런 정치인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지만, 이렇게 영화를 통해서라도 볼 수 있는 것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영화에 가장 아쉬운 점은 '정직한 후보'라는 타이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설정은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치인'. 영화를 통해서 그런 모습을 보여준 정치인이 지지를 받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가지고 잘못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도 정치인의 자세이기 때문에 그러한 점을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다고, 그 사람의 잘못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것이죠. 그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다면, 주상숙이라는 인물이 마지막에 보여준 것처럼 정치인도 변화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해준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 지지를 통해서 다른 활동에서도 힘을 얻을 수 있고, 그분들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에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한순간의 립 서비스나 포퓰리즘으로 얻은 환심이 아니라 장기적인 지지가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의 결말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김무열 배우의 코미디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그동안 진지한 모습만 줄 곳 봐왔는데, 그에게도 코미디 유전자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주 오버스럽지 않고, 적당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코믹하게 느껴지는 점이 김무열 코미디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캐릭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멀끔하게 생긴 이미지에서 풍기는 조금은 코믹함들이 생각 외로 잘 어울려서 영화를 보는 내내 새로운 발견을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윤경호 배우는 영화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타인] 이후 비중 있는 작품들이 늘어가면서 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어느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으로 느껴집니다. 




영화를 연출한 장유정 감독의 전작은 [부라더]입니다. 두 영화의 가장 큰 공통점은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부라더]에서는 죽은 엄마에 대한 존재가 판타지처럼 작용되었죠. 


또 한 가지 공통점은 경직된 사회를 유쾌하게 그린다는 것입니다. 영화 [부라더]의 주인공들은 종갓집의 자손들입니다. 현실에서 종갓집은 상당히 경직된 사회로 주인공들과 극단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가장 큰 희생을 보인 사람인 '어머니'에 집중을 한 영화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 또한 종갓집이라는 풍습에서 조금 벗어난 인물이죠. [부라더]는 경직된 사회의 규칙과 벗어난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서 희생을 하며 살아온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직한 후보] 또한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라는 경직된 사회에서 능청스러운 입담을 가지고 있는 '주상숙'이라는 캐릭터를 이용하여 유쾌하게 풀어내는 모습입니다. 


장유정 감독은 어떤 대의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닙니다. 다만, 영화를 통해서 현실에서 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녀의 전작인 [김종욱 찾기]의 첫사랑을 찾는다는 설정 또한 현실의 우리들이 한 번쯤 꿈꿔봤던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장유정 감독은 현실에서 한 번쯤 상상해봤던 일을 영화로 만들어서, 유쾌한 반항 혹은 상상을 해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장유정 감독의 영화는 즐겁고, 편안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생각하는 영화라는 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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