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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May 26. 2020

혼자의 기억, 두 사람의 추억

영화 [카페 벨에포크] 리뷰

“나 다시 돌아갈래~”

이 대사가 등장한 영화 [박하사탕]은 2000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개봉한 영화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대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에는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영화를 연출한 이창동 감독의 연출, 설경구 배우의 연기를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대사가 주는 공감이 그 이유일 것이다. 단순히 영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명대사로 언급되는 정도를 넘어서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며, 예능을 포함한 여러 영상 매체에서도 이 장면은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이 장면은 많이 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왜 이 대사에 많은 공감을 하는 것인가. 이는 현재에 대한 불만족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이 불만족스러울 때, 과거 자신이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큰 걱정 없이 놀던 학창 시절, 뜨거운 열정으로 정열적인 사랑을 하던 과거를 포함한 과거 자신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현재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과거 어느 순간을 완벽하게 재연해준다는 사람이 등장한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는 이러한 질문으로 시작한 영화일 것이다. 





기억의 재연


영화의 주인공인 ‘빅토르’는 앞서 이야기한 상황과 비슷한 처지다. 크게 이룬 것이 없는 그는 아내에게 짐짝 취급을 당하며, 집에서 쫓겨난다. 그러다 아들의 친구인 앙투안의 초대로 핸드메이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영화는 이러한 설정이 가장 핵심이 된다. 시간여행이라는 막연한 판타지가 아니라 그것을 완벽하게 재연하여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것이다. 극 중 앙투안의 회사에서는 세트와 조명 및 연기자들을 동원하여 과거의 한 장면을 완벽하게 재연한다. 이러한 모습은 과거 [트루먼 쇼]를 보는 것 같다. [트루먼 쇼]에서는 모든 것이 세트였지만, 정작 주인공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카페 벨에포크]에서는 이 모든 것이 연출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이 재연극에 상당히 빠지는 듯한 모습이다.

이러한 설정에 괴리를 느낄 수 있으나, 영화는 앙투안의 캐릭터를 통해서 인물들이 이 상황에 빠지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앙투안은 지독한 인물로 표현된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사실적인 것을 고집한다. 영화 초반, 디테일을 살린다며 속이 좋지 않은 보조 출연자에게 술과 타바스코를 음식에 섞어서 먹이는 장면을 통해서 그가 연출하는 시간여행은 상당히 디테일하고, 나름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인물들이 시간여행에 매혹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꼭 이러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박물관이나 전시장에 과거 거리를 재연한 모습을 마주하게 될 때면, 우리는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이러한 상황이 단순 시각적인 요소에 의해서만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일 것이다. 영화에서 당시 시대의 정서를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담배일 것이다. 담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더불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금기시되어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담배를 낭만과 멋으로 생각할 때가 존재했다. 이런 식으로 현재의 정서로는 납득이 될 수 없겠지만, 당시의 정서를 통해서만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극 중 앙투안은 그것을 잘 캐치하여 세트를 만들었다. 이는 영화의 제작진들이 그러한 디테일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모습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를 이루는 것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재연은 재연


그렇지만 영화는 너무 과거로 빠지는 것을 적절하게 견제한다. 그를 보여주는 것이 세트의 천장이다. 생각해보면 완벽한 재연을 위해서는 천장까지도 완벽하게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천장은 따로 처리를 하지 않아서 일반적인 스튜디오의 천장과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세트의 벽이 실제가 아니라 시트지를 붙인 것이라는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 철저하게 빅토르의 기억으로 재연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꾸준히 언급하고 있다. 과거의 추억에 잠기는 것이 목표인 영화의 스토리를 생각해보았을 때, 이러한 모습은 그 목적과 반대되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영화의 전체 스토리로 보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것은 어디까지나 재연이라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이다. 즉, 현실과 재연에 확실한 선을 긋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극 중 빅토르는 시간 여행을 하는 세트에서의 모습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 여행이 현재의 빅토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이전까지 빅토르는 그림에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재능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이 부족한 인물로 표현된다. 한 마디로 자존감이 낮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시간 여행을 통해서 20대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동안만큼은 열정이 넘치는 인물로 변화한다. 과거만큼 그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매사에 긍정적인 기운을 얻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기억과 추억의 차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극 중 시간 여행이 빅토르의 기억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극 중 어떠한 장면을 보면, 빅토르가 ‘이때 비가 왔던 것 같은데?’라는 이야기를 한다. 사실은 그때는 비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 여행을 주도하는 앙투안은 비를 내려준다. 이는 모든 시간 여행이 빅토르의 관점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내가 겪었던 과거는 기록되어 있는 자료가 있지 않다면 나의 기억으로만 구성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서 영화는 빅토르 이전에 해당 회사가 과거 ‘마리 앙투아네트’의 식사를 재연하는 모습을 등장시킨다. 이는 기록이 되어있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에 비교적 정확한 기록을 가지고 재연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빅토르의 과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앙투안의 회사 또한 정확한 사실보다는 빅토르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만났던 마리안느와의 첫 만남을 재연하는 과정에서 마리안느에게 핀 조명을 주는 것과 음악을 등장시키는 것은 빅토르를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처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지만, 정확히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기억이라는 것은 그때의 감정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기억은 분명 어떠한 감정이 발생했을 때의 상황일 것이다. 

이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비슷하게 언급되었던 이야기다. 라일리가 전학을 왔던 첫날,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갑작스럽게 표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과거의 기억이 감정의 변화가 있었기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화의 감상을 이야기할 때도 재밌다, 슬프다, 무섭다와 같이 감정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영화도 그러한 점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든다. 극 중 시간여행의 목적은 의뢰인에게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선사하여, 그들에게 행복을 준다는 것이 그 목적에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실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회사는 고객의 기억을 꺼내는 것이 아닌 추억을 꺼내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 내에서도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두 주인공의 시선이 다르다는 것으로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빅토르의 경우 당시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한다.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처럼 말을 한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빅토르의 감정 위주의 경험, 아름다운 추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안 좋은 시절로 여겨진다. 결말부에 등장하는 마리안느와 빅토르의 대화로 이를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안느에게 그때는 담배 연기가 자욱하며 현시대처럼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없었던 시대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녀에게는 그 시대가 빅토르만큼 찬란했던 시절의 기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기억과 추억이라는 것이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빅토르의 입장에서는 마리안느와의 관계가 중요했다. 때문에 그 관계를 중점으로 본다면 현재의 빅토르에게는 과거의 기억이 추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현재의 빅토르가 마리안느와의 관계가 좋았다면 굳이 시간 여행을 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상황에 따라서 과거의 기억이 추억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리안느에게 그때의 기억이 안 좋게 인지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때의 기억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빅토르에게는 마리안느와의 첫 만남에서 느낀 감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누구를 사랑하는 것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빅토르는 마고를 사랑했던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시간 여행을 통해서 빅토르가 마리안느에게 빠졌던 순간을 재연하였다. 그 과정에서 마리안느를 연기한 마고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고 또한 그런 빅토르에게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영화는 왜 이러한 연출을 했는지에 대해서 나름의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우선 극 중에서는 빅토르가 처음 마고를 봤을 때는 그녀를 마리안느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런 것이 마리안느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비슷한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 즉, 마고는 마리안느를 연기한 것이다. 그렇기에 빅토르는 마고가 연기하는 마리안느를 사랑했던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그 시작은 그렇지만, 빅토르의 입장에서도 그것이 연출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것이다. 그 시작은 시간 여행을 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현실로 나온 모습부터 일 것이다. 어느 순간 빅토르에게 시간 여행은 현실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런 빅토르에게 마고는 과거의 마리안느가 된 것이다. 즉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여인이 된 것이다. 그 순간부터 빅토르가 사랑하는 사람은 마리안느를 연기한 마고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극 중 빅토르의 행동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를 통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 있다. ‘그는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 만났던 그녀를 사랑한 것일까? 혹은 그녀를 만났기 때문에 그때가 찬란하다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영화의 결말부에 마리안느가 하는 말이 어느 정도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생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그 정답 혹은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 [카페 벨에포크]는 슬픈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비참하거나, 인물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행복해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주인공과의 나이와 차이가 있기에 주인공들이 느낄 감정을 정확히 헤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결말부에는 눈물이 났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다. 안쓰러워서 우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눈부시게 행복하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왜 이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났을까? 살아가면서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찬란했던 시절을 보낸 두 사람에게 현재와 과거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두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나에게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렇기에 그 감정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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