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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May 26. 2020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보리 가족

영화 [나는 보리] 리뷰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를 끝까지 보셨다면, 이 이야기가 모두 가상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들은 이 이야기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자막일 것입니다. 특히나 이 영화의 자막은 대화를 전달하는 그 이상의 의미를 하고 있다. [나는 보리]의 자막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수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자막과 인물들의 말소리를 전달하는 자막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영화는 수어를 전달하는 자막에서는 어느 정도의 연출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영화에서 수어를 자막으로 풀어낼 때는 문장으로 그 의미를 전달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와 같은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하지만 [나는 보리]에서는 ‘<나> <너> <사랑해>’와 같이 조사가 없이 단어의 나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표현이 수어의 정확한 해석이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연출자가 수어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진유 감독은 코다, 농인의 부모를 둔 청인 자녀인 것입니다. 한 인터뷰를 통해 김진유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영화 속 보리에 자신의 많은 것을 투영한 것이 보입니다.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택시 기사님에게 길을 알려주는 것 모두 자신의 일이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극장에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했죠. 

최근 극장에서는 한국 영화의 영어자막, 베리어프리 등 다양한 형태의 상영이 이뤄지면서 농인들의 영화 관람도 이전보다는 나아진 환경을 제공합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이러한 형태의 상영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수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인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김진유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를 부모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자막 상영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조금 다른 감상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단어들로 이뤄지던 수어가 후반으로 갈수록 완성된 문장의 형태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는 보리의 부모님이 보리를 배려하는 부분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를 통해서 보리는 수어를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보리가 수어를 관찰하며, 그 의미를 알아가는 것도 알 수 있죠. 이는 보리가 부모님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 수어를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를 알고 있기에 보리의 부모님 또한 쉬운 언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표현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들의 대화에는 홈 사인(Home sign)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가까운 사람끼리 사용하는 간단한 수어를 의미합니다. 아마 이는 수어를 모르는 청인들은 알 수 없는 내용일 것입니다. 수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부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영화의 전체 메시지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영리한 연출입니다. 

지금까지 영화는 농인 부모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사건 또한 농인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점에 집중하고 있었죠. 하지만, [나는 보리]는 그것과 반대되는 상황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른 가족과 다르게 혼자만 청인인 것에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죠. 이러한 설정 자체가 영화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부분일 것입니다. 자신의 부모가 남들과 다른 것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족과 다르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죠. 이러한 부분에서 보리가 가족들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진심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심은 영화의 주요 사건들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죠. 


영화의 후반에는 고모가 보리의 가족들을 챙겨주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서 세밀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세하게 말씀드리지 않아도 영화를 보신 분들은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을 챙기는 인물이 결국은 보리라는 것입니다. 결국 아무리 누군가가 그들을 챙겨준다고 하더라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족들을 제대로 챙겨줄 수 있는 것은 가족의 구성원인 ‘보리’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 누가 보리만큼의 정우와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 흔한 남매의 다툼조차 없는 보리네 가족은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가족입니다. 그들에게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들을 수 없어도 볼 수 있고, 말할 수 없어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통한 행복이 넘치는 가족입니다. 영화가 끝나도 관객들은 그들을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행복한데 어떤 걱정이 있을까요?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보리네 가족은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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