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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Jun 28. 2020

이해가 안된다면 제대로 보셨습니다

영화 [사라진 시간] 리뷰

영화를 보시고 ‘이게 뭔 소리야?’ 싶었죠? 그렇다면 영화를 제대로 보신 겁니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정진영 감독의 첫 작품인 [사라진 시간]은 본래 저예산 독립 영화로 제작되던 영화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조진웅 배우가 캐스팅되면서 상업 영화로 전환되었고, 궁극적으로 저 예산 상업영화로 편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존 상업 영화를 즐기던 관객들은 이 영화 또한 비슷한 영화라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영화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는 영화가 홍보했던 내용과 다른 방향의 영화라는 점에서 실망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진영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서 영화 [사라진 시간]의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장르가 없는 영화, 기존의 구성과 다른 영화, 혼란스러움이 당연한 영화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면 이는 영화의 연출 의도를 정확하게 느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의 의도가 영화 속에서 정확하게 느껴진다면 반 이상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 기준에서 본다면 영화는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을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영화의 초반에 등장하는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조진웅 배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초반 30분이 넘어가야 하므로, 일반적인 상업 영화를 기대하시는 분들은 여기서부터 혼란스럽거나 지루하게 느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생각해보니 이 부분이 맥거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거핀은 관객들의 시선을 끄는 큰 의미 없는 장치로 1962년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에 쓰이면서 보편화하였습니다. 영화 [싸이코]의 초반은 한 은행원이 은행의 돈을 훔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러다 한 모텔에서 죽임을 당하는데, 이때까지 관객들은 훔친 돈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궁금해합니다. 이후 사건의 수사가 시작되면서도 훔친 돈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결국, 앞에 등장한 은행원의 이야기는 본격적인 사건을 진행하기 위한 시작으로 사용된 것이죠.

영화 [사라진 시간]은 이와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초반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인물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인물에게 무게중심이 이동하게 되어,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죠.


주인공인 형구가 등장한 이후의 이야기부터는 영화의 구성이 전혀 다르게 흘러갑니다. 하나의 흐름이 아닌, 단편적인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러한 점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갈리게 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면 이후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면 영화를 재미있게 봤을 것이고, 이야기의 흐림이 다소 생뚱맞다고 느껴진다면 이 영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떡밥을 던지고 그것을 회수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영화와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실망을 줄 것입니다. 한 편으로는 그런 영화를 봐왔던 분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하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은 영화의 전개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우선 뻔하지 않은 영화라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흐름은 예상이 되는 구간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여서, 그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러한 연출이 정진영 감독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신인 영화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면 투자와 배급이 이뤄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상업 영화는커녕 독립 영화로 제작하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독립 영화의 색을 가지고 있는 영화가 상업 영화로 개봉했다는 것은 정진영 감독과 조진웅 배우의 인지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호불호가 심하더라도 다양한 한국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의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아사코]입니다. 두 영화 모두 방향을 알 수 없는 전개를 통해서 명확히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아사코]를 상당히 재미있게 본 편인데, [사라진 시간]이 [아사코]와 비슷한 전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아사코]는 하나의 커다란 사건을 바탕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사라진 시간]은 판타지적 요소가 섞여서 조금은 비현실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죠. 더불어 [아사코]가 인물의 선택을 예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면, [사라진 시간]은 그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화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주인공 형구가 겪는 고민이 될 것입니다. 이는 ‘나’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 영화의 주된 갈등은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무엇이 진짜 ‘나’인지 헷갈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않습니다. ‘과연 두 사람 중 진짜 형구는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영화가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은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또한, 결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죠. 이것을 영화에 대입해보면, 무엇이 진짜 형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무엇이 현실이고 꿈인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죠. 

하지만 영화는 결말 이전에 어떠한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타인이 보는 ‘나’와 자신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 고민하던 형구는 결국 타인이 보는 ‘나’의 삶을 선택하여 살아갑니다. 결국, 영화가 말하는 것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이야기를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구성으로 내놓았습니다. 한 편으로는 형구의 감정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구성이기도 합니다. 어떤 기대를 하고 영화를 본다면, 이 영화는 정확히 그 기대에 빗나가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영화는 그 어떤 인물의 의도대로 흘러가지도 않습니다. 결국, 의도대로 되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신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난해하고 복잡하여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영화를 보고 느꼈던 의문과 감정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영화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는 과정이 문화를 즐기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재미없고, 영화에 대해 모르거나 무식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에 대한 조건 없는 찬양을 보내는 사람이 허세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취향의 문제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느끼셨든 간에 여러분의 감상은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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