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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Sep 02. 2018

[영화리뷰] 살아남은 아이

남은 자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게 된 성철과 미숙은, 자신의 아들이 목숨을 걸고 구하려고 했던 아이와 마주친다. 자신의 아들이 기현 때문에 죽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부모도 없이 혼자 남겨진 기현과 함께하며 시간을 보내며 상실감을 견대낸다. 그러던 중 기현에게 은찬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는 아들의 죽음 이후, 살아있는 부모와 그리고 그 친구들의 이야기다. 단순하게 보면, 남겨진 자의 아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생각보다 복잡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죽은 자를 기억하는 사람, 아이


누군가의 죽음은 누구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원수 같은 사람이라도 죽은 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자에게는 안 좋은 일에 대해,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자는 스스로 기억을 바꿀 수 없다. 죽은 자는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가 죽은 자의 이야기가 되곤 한다. 그들의 기억이 죽은 자의 이미지가 된다.


[살아남은 아이]에서 '기현'은 죽은 '은찬'의 마지막을 함께 했던 친구다. '은찬'이 자신의 목숨과 바꾼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기현'을 구하고 '은찬'이 죽었다고 살아남은 자들이 말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모의 입장에서 '기현'은 자신의 아들이 죽은 원인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은찬'이 죽을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구하려고 하는 '기현'이라는 친구는 어쩌면 '은찬'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은찬'이 남긴 마지막이 '기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부모도 없이, 혼자 남겨진 '기현'은 어쩌면 살아남은 아이라기보다는 남겨진 아이에 가까운 인물이다. 자신의 의지보다는 어쩔 수 없이,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은찬'의 아버지인 '성철'의 가계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런 '은찬'이 가엾은 '성철'은 '기현'에게 도배에 대한 일을 가르치며,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쩌면, 남겨진 아이에게 가르쳐줘야 할 최소한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아직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도 모르는 '기현'에게 '성철'은 스스로 인생을 살게끔 도와준 선생님 더 나아가서는 진짜 부모 같은 존재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과 가까운 사이였기에 '기현'은 그들에게 진실을 고백했는 지도 모른다. 모른 척 하고 살아가도 아무도 몰랐을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피해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이 영화의 진짜 시작은 1시간 정도 지난 뒤부터다. '성철'과 '미숙'이 '은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후부터 영화는 변화를 맞이한다. 그전까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과 그 슬픔을 위로하는 남겨진 자의 이야기라면, 진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남겨진 자가 죽은 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숙'은 '기현'에게 진실을 알게 된 후, 모른 척 지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성철'에게까지 모른 척할 수 없어서 그에게 이야기했다. '성철'은 바로 고소를 진행했다.


여기서, 두 인물이 서로 변환점을 맞이한다. 그전까지 '은찬'의 죽음을 맞이하는 두 인물의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성철'은 '은찬'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물론, 그도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슬퍼한다고 '은찬'이 돌아올 수도 없고, 슬픔에 빠져있는 '미숙'을 다독이고, '은찬'의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명예롭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처리할 일이 많았다. 남아있는 현실 때문에 자신마저 슬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이 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의 거짓말에 의해 아들의 죽음을 너무 쉽게 받아들 인 것은 아닌지, 혹은 아들이 억울한 죽음을 자신이 몰랐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이다. 아들의 유품을 정리하려던 '미숙'과의 대화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여태까지 잘 못해서, 지금이라고 잘하려고 하는 거야'

자신이 잘하려고 했던 일이, '은찬'을 더 잘못되게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또 한 번 자책감은 든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성철'에게 지난 일을 다시 들춰내서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한다는 가해자로 추정되는 부모들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가해자의 부모들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단순히, 자신의 자식이 범죄자로 몰리는 것이 싫어서 그런 것일까? 사실, '은찬'의 부모는 그들을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었던 것일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죽었는데,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면 그 어느 부모가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런 부모는 없을 것이다.


추가로 이 영화에서 어떤 것이 사실인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실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하지만, 우리가 '기현'의 이야기가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성철'과 '미숙'에게 보였던 태도는 진심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수의 침묵 속에 혼자 묵묵히 진실을 외치고 있는 '기현'. 아마, 그도 누군가의 죽음에 침묵했다는 죄책감과 자신에게 온기를 전해준 그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기 위해서는 아닐까 싶다.


우리가 유족을 대하는 태도?


현실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은찬'의 죽음에 대해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유족들이다. 반대로 물어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왜 죽었는지 정말 관심 없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있다. 영화에서처럼 의사자로 선정되어서, 그의 죽음이 헛된 일이 아니라고 인정해주고, 적절한 보상까지 이뤄진 상황이면, 된 거 아니냐라고 할 것이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에게도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말하기 전에 고인에 대한 애도와 안타까움을 전달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싶다.


영화 속에서 '은찬'이 죽은 후 부부가 모임에 간 적이 있다. 사실, 우리는 위로나 사과에 대해 박하다. 그리고 서투르다. 때문에, 자꾸 그들에게 물어본다.

'잘 처리되었어?', '잘 됐네. 이제 끝났네' 그들은 끝나지 않았다. 유품을 정리하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들이 자신의 자식을 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냥 품고 가는 것이다. 지나가는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릴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자꾸 신경 쓰였던 점이 있다. 바로, '미숙'에 대한 호칭이다. '은찬'이 죽었지만, 그녀는 '은찬 엄마'로 불린다. 그리고 본인을 '은찬 엄마'라고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식이 죽는다는 것은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찬'은 없지만 그녀는 똑같이 '은찬 엄마'인 것이다. 여태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아음 아프게 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평소와 똑같이 그들을 대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살아남은 아이]는 자식의 죽음에 대한 고통과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부모의 시선에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다. 내 주위에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세 명의 주연배우. 최무성, 김여진, 성유빈 배우의 연기는 정말 대단하다. 그들이 연기에 진실함이 느껴진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성철'과 떠나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혼자 남겨진 '기현'에 대한 연민을 느낀 '미숙'. 10대의 반항 및 불안함을 보여주는'기현'. 이 모든 인물들이 보여주는 결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말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어야만 했을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만 있던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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