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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시 Sep 05. 2018

[영화] 용순



독특한 영화입니다. 보통 사춘기 소녀를 영화에서 다룰 때는 사랑스럽게 다루기 마련입니다. 혹은 아주 어둡게 다룹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밝은 분위기에서 사랑스럽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영화의 주인공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지게 하거나, 관객들의 그의 편이 되게끔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독특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사춘기 소녀 '용순'의 심리를 아주 제대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사춘기를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그것을 단순히 행복했던 추억으로 미화하거나, '그땐, 그랬지'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내용을 철저하게 용순의 시선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용순이 체육 선생님을 짝사랑하고 있는 것을 혼자 사귄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하는 것도 용순의 시선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용순이 짝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둘이 사귀는 사인지 헷갈리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것이 용순의 착각이라는 점은 체육 선생님과 주임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나타납니다. 






 




우유부단하거나, 현실적이거나


  주임 선생님은 체육 선생님에게 여자 고등학생들이 남자 선생님을 좋아하면 마치 사귀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식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번 방학이 끝나면 정교사 계약을 해준다며, 체육 선생님에게 이번 체육대회에서 성적을 내줄 것을 당부합니다. 그렇습니다. 체육 선생님이 용순에게 잘 해주었던 것은 자신을 위해서 그랬었다는 점도 이 지점에서 보입니다. 단순히, 자신의 학생이어서 혹은 용순이 정말 좋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다는 것이 이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또한, 이 술자리에서 체육 선생님은 주임 선생님에게 지속적인 아부 아닌 아부를 합니다. 별거 아님에도 주임 선생님을 칭찬을 합니다. 이러한 부분들도 체육 선생님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의 행보를 잘 보여주게 될 장면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체육 선생님에 대한 답답함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그는 상당히 우유부단한 캐릭터로 나오지만, 사실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내에서 그는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에게 용순은 해결해야 할 사건 중에 하나인 셈이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영어 선생님과 잘 되기 위한 방해물이기도 하고, 자신을 출세를 하게 해줄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용순에게 마냥 모질게 하기도, 잘해주기만 하기도 애매한 상황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체육 선생님이 생각을 하고 행동하려고 하면, 그보다 반박자 빠르게 용순이 행동합니다. 때문에 사건은 점점 커지게 되는 것이죠. 

 사실, 현실에서 사람들도 체육 선생님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큰일이 터졌을 때,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생각하는 시간 동안 자신의 목표를 위해 거침없이 돌진하는 용순의 추진력에는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라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돌진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금 덜 루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을 영화에서는 체육 선생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결을 하려는 자, 이야기를 하려는 자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용순과 체육 선생님의 치킨 장면입니다. 단순히 치킨 장면이라고 하면 영화를 안 보신 분들이라면 의아에 하시겠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어떤 장면인지 아실 겁니다. 이 장면에서 용순이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에 대해 고백을 합니다. 영화에서 용순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려 합니다. 자신의 영역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려는 행위에 대해 거칠게 저항합니다. 때문에, 문도 잠그고 다니고 누군가가 자신의 약점에 대해 건드리는 것을 상당히 싫어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항으로 표출됩니다. 

  용순이 체육 선생님에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마, 체육 선생님도 처음 들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하지만, 체육은 용순이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지금 있는 이 문제에 대해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용순에게 계속 되묻습니다. '뭐가 문제야?' 하지만 용순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렇습니다. 용순은 지금 체육 선생님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죠. 어쩌면 용순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장 자신의 문제 해결에 급급한 체육 선생님은 그런 용순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해결해야 할 일이 우선이니까요. 

 어쩌면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한 문제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이미 시간이 지나서 꽉 메어진 매듭처럼 푸는 데까지 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여서 매듭을 풀어야 하지만 사람을 대게 풀어지지 않은 매듭을 가위로 잘라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 가위로 잘라버린 매듭은 다시는 쓰지 못합니다. 그런 식으로 계속 가위로 잘라버리면 결국엔 매듭을 지을 줄조차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지는 않을지 걱정됩니다. 








 알게 되자, 이해되는 것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많이 듣는 대사가 있습니다. '고개 들어' 체육 선생님이 고개를 숙이고 뛰는 용순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고개를 숙이며, 뛰는 용순의 심리는 어땠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진행되다 보면 용순이 고개를 숙이고 뛰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를 체육 선생님에게 합니다. 이 지점에서 둘의 관계가 일방적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됩니다. 용순은 자신이 왜 고개를 숙이고 뛰는지에 대해 체육 선생님에게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들은 체육 선생님은 계속 용순에게 고개를 들고뛰라고 합니다. 용순이 고개를 숙이고 뛰는 것은 단순하게 습관이거나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용순이 고개를 숙이고 뛰는 것을 좋아합니다. 땅을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 마치 자신의 걱정들을 밟고 지나가는 것 같아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체육 선생님도 자신이 뛰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야기를 합니다. 숨이 찰 때까지 뛰면 머리가 단순해져서 걱정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둘은 어찌 보면 같은 이유도 다른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용순뿐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부분이 체육 선생님이 용순을 좋아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이것은 그녀에게 무관심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현실적인 캐릭터인 체육 선생님이 용순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현실의 이야기일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어느 누구나 사춘기를 지납니다. 하지만, 사춘기 청소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한 철의 여름처럼 무더웠던 시기가 지나면 추억으로 남는다고 하지만 그 추억은 미화가 되기 마련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세세한 감정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춘기 청소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용순이 영화에서 겪는 감정들은 대게 처음 겪는 감정들입니다. 많은 감정들이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이겠죠. 처음 겪는 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이 없습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아니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합니다.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그런 그들이 하는 행동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인지 진심으로 알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학생들의 행동을 보며 '결국 지나갈 일'이라도 치부하면서, 그들을 나무랄 것입니다. 영화에서도 그런 시선들이 다수 있습니다. 그런 시선들이 많이 질수록 용순은 더더욱 자신의 공간에 갇히게 되는 일이 됩니다. 

 용순의 새엄마가 처음으로 용순의 방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용순의 방을 둘러보면서, 용순의 현재 상태에 대해 짐작을 하게 됩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 혹은 거짓말. 용순의 방에 처음으로 들어오게 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의 편에 서주는 어른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아빠를 데리고 용순의 방에 들어가게 합니다. 아빠는 용순을 챙겨주면서 방 벽에 붙어있는 고장 난 선풍기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선풍기에는 노끈이 묶여있습니다. 그 노끈을 풀면서 과거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용순이 알고 있지 못했던 아빠의 이야기,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 

 자신이 몰랐던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용순은 처음으로 아빠를 챙기는 듯하게 들리는 말을 합니다. 그것도 아주 퉁명스럽게요. 상관없습니다. 자신이 몰랐던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용순은 아빠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에 대해 변화가 생깁니다. 과거를 흘려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고개를 숙이고 뛰던 용순은 과거가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것을 흘려보내면서 숙였던 고개를 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답답한 캐릭터. 어쩌면 이상적인 캐릭터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청소년 사춘기의 반항심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춘기에 겪게 되는 일들, 자신의 신체 및 감정의 변화, 환경의 변화들은 대부분 처음 겪는 일들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사춘기 자녀에게 무작정 '너 불만이 뭐야? 원하는 게 뭐야? 왜 말을 안 해?'라고 할 자격이 있을까요? 정작 우리들은 사춘기 학생들의 이야기가 안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에게 이야기를 요구하기만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누가 자신의 마음을 열겠습니까?

 단순히, 우리가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은 해주기 위해 노력을 해서 해줄 수 있게 되면 그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용순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도, 용순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어른들은 영화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현실에서도 조차 말이죠. 육상은 용순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영화 그 어디에도 용순은 육상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엇이든 끝까지 해보려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녀가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는 것이 체육 선생님이었던 것이죠. 그녀는 처음으로 좋아하는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해봤습니다. 그리고 알게 될 것입니다. 포기라는 것을 말이죠. 그렇게 그녀는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포기할 줄 알았을 때,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어선생님께 '피해 가지 않도록, 제가 잘 해결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체육 선생님은 진정한 성인이겠습니다. 이상적이지는 않더라도 현실에서는 말이죠. 

 어쩌면 영화는 용순의 패기를 부러워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춘기 소녀라도 그 어떤 누구도 용순처럼 자신의 뜻대로 막 휘두르고 다니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용기 있게 누군가에게 매달려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부러움이 포함될 수도 있겠죠. 흔히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둘리를 보면서 고길동이 불쌍해지면 어른이 된 것이라고. 영화 [용순]을 보면서 답답해하던 우리들은 어른이 된 것은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사춘기 학생들의 감정에 대해 다룬 영화는 과거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와 현재 청소년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줍니다. 청소년들은 어리숙함과 어른스러움을 가지고 있는 상당히 애매한 존재입니다. '어른스럽지 못하게 왜 이래?', '학생은 학생다워야지.'이 두 가지 말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 청소년입니다. 어른도 아닌, 아이도 아닌. 그래서 더욱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더욱 귀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현실적으로 보여준 [용순]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느껴집니다. 최덕문 배우도 이 영화를 찍으면서 '다큐멘터리' 같음을 생각하면서 연기를 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본다면 현재 자신의 상황에 대한 대변이 이루어질 것이고, 어른이 본다면 자신이 학생에게 대했던 행동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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