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하루 : 나는 왜 이 고통에 중독되었나

사진: Unsplash의Filipp Romanovski

by 따독맘

이미 기력이 다한 워킹맘의 첫 한숨


나의 아침은 아이들 준비와 내 출근 준비의 병행이다. 남편 덕분에 내가 먼저 빠져나오는 날이 많지만, 등교까지 시키는 날은 전쟁이다. 마음은 급한데 학교 갈 생각 없는 아이들을 보면, 집을 나서기도 전에 나는 이미 정신적 넉다운이다.


지옥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으면, 후~~~~~ . 아침에 눈떠 처음으로 숨을 돌린다. 하지만 곧바로 업무 시작. 완벽주의 탓에, 그리고 퇴근 시간이 늦어질까 봐 본격적으로 달린다. 내 성격에 맞지 않는 사교 활동(스몰톡 정도는 해야 하니), 이런저런 말 많은 회의를 전전하다 보면 화장실 갈 틈도 없다. 남초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화한 듯 하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가시를 세우고 긴장한다. 행여 찔릴세라 내가 먼저 뾰족하게! 그것이 가족을 책임지는 나의 생존 방식이다.





업무와 가장의 의무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점심 식사 후, 아이들 하교 시간이 되면 이제부터는 전화와의 전쟁이다. 첫째, 둘째가 번갈아 사정없이 전화가 온다.


- 엄마! 나 학교가 끝나서 집에 가고 있어! (그게 왜?)

- 엄마! 나 친구 누구랑 싸워서 너무 화가 나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 엄마! 큰일났어! 학원가야 되는데 책이 없어. (휴.....)

- 엄마 ㅠㅠ 발바닥이 너무 아파서 학원에 못가겠어 (엥????)


늘 비슷한 레퍼토리. 이번에도 의미없는 전화일 줄 알면서도 행여나 무슨 일이 생겼을까, 회의 중에도 전화를 받기 위해 들락날락거린다. '저 아줌마는 왜 이 시간만 되면 저럴까' 모두들 이상하게 보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대수랴. 나는 엄마인 걸.


몸은 회사에 있지만 내게 주어진 임무는 너무나도 많다. 알림장, 받아쓰기, 오늘 저녁 메뉴, 남편 도시락 반찬, 숙제를 안해왔다는 학원 원장님 연락, 내야 할 세금과 공과금. 업무와 동시에 초 단위로 처리해야 하는 임무들이 산더미처럼 느껴진다. 나는 회사원이기 전에, 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우리집의 가장이니까.



가끔 "먹고 사는데 지장없는데 무슨 걱정이냐", "긍정적으로 생각해." 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 말이 얼마나 야속한 지 비수처럼 꽂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먹고 사는데 지장없도록 이 모든 것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하나. 모두가 나만 쳐다보고 있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거운지, 이 무게를 모른다면 제발 함부로 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예쁜 난장판'이 펼쳐지는 집


퇴근 시간 즈음이면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집에서 나만 기다릴 가족이 보고 싶으면서도, 현관문을 열면 다시 시작될 육아와의 전쟁에 숨이 턱턱 막힌다. 아침에 못 먹은 빵이며 샐러드를 바리바리 챙겨 지옥철에 몸을 밀어 넣는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면 뛰어오는 아이들. 참 예쁘다. 하지만 곧바로 10초에 한 번씩 엄마를 불러댄다.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외투만 벗어놓고 움직인다. 눈앞에 펼쳐진 난장판 집구석... 하나씩 치우다 보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자책이 든다. 옷은 빨래통에, 과자 봉지는 쓰레기통에 천 번 만 번 가르친 것 같은데,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 듯 널브러진 쓰레기를 보면 울화가 치민다.


반찬 투정 심한 딸 비위 맞춘 저녁을 차려 한술 뜨려 하면, 또 시작되는 아이들의 이야기. 그래, 하루 종일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지 싶다가도, 나도 배고픔에 예민해진다. 그냥 대충 먹고 치우자 체념하며, 이제 각자의 할 일을 하자고 회유한다.





잔소리 대신 포기를 선언하는 밤


잠깐이라도 몸을 뉘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내가 누우면 아이들도 눕고 싶을 테니. 회사 책상에서 우리 집 거실 책상으로 자리만 옮겼을 뿐, 나는 여전히 앉아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 혼자다. 뒤늦게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앉는 아이들... 책 찾고 연필 찾는데 시간을 다 보내고 겨우 앉으면 그때부터 떠들거나 목이 마르거나 화장실이 가고 싶거나 셋 중 하나이다 ㅎㅎ


엄마가 많은 걸 바라니. 숙제만 제대로 해가자는 건데 그게 왜 그렇게 힘드니. 내 몸이 힘드니 길어지는 숙제 시간이 화가 나고, 이렇게 게으른 태도로 무엇을 하겠나 먼 미래까지 상상해가며 끝내 폭발하고 만다. 결국 해서는 안 될 말인 줄 알면서도, 엄마인 내가 먼저 포기를 선언한다. 내일 학원 선생님께 혼나는 건 또 나니까.






이 모든 것을 버티게 하는 가장의 무게


아침부터 이 시간까지 1초도 쉬지 못한 것 같다. 아이 옆에 누우면... 미처 처리하지 못한 회사일, 깜빡한 준비물, 쌓인 빨랫감, 대화할 시간이 없다며 서운해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하루를 보냈지만, 여전히 못한 것 투성이다. 회사 생활을 지속하려면 자기 계발이 필수인데 영어 공부는커녕 잠깐 걸을 힘도 없다. 이 버거운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는 동안, 나는 가장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아마저 포기하고 있었다.


내일 똑같이 반복될 하루가 무섭지만, 나라는 기둥이 무너지면 안 된다는,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의무감이 나를 더욱 짓누른다. 수면마취라도 한 듯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눈 뜨면 또 하루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할까? 당연히 아니다.


티는 안 나지만 조금씩 자라는 아이들, 맨날 노는 것 같지만 뭔가 배워오는 모습, 드물긴 해도 마음이 넓고 커진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이럴 때 나의 무거운 하루는 아주 잠깐 의미로 충만해진다. 아주 작은 성장이 모여 먼 미래에는 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역할 할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매일매일 넷이서 지지고 볶고, 짜증과 미움을 주고받지만, 결국 이 모든 순간이 우리 가족을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추억이 될 거라는 기대와 믿음. 그 기대가 마치 마약 같은 중독성을 가졌는지, 오늘도 나를 기계처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된다. 나의 이 고통스러운 일상이, 사실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장 치열한 헌신임을 알기에, 나는 발리로 떠나기 전 이 순간을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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